여기 외국이니? 아니야, 우리 아파트 상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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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lose-up] 아파트의 부속물은 옛말… 단지內 상가 '천지개벽'
- 맛집·재즈 클럽까지 아파트 상가에
판교 아브뉴프랑·일산 벨라시타·수원 광교 아이파크 內 앨리웨이…
송파 푸르지오엔 워터파크까지…광장에선 서커스·콘서트 열려
- 역세권? 이젠 몰세권
아파트 코앞에 '몰' 들어서니 집값도 덩달아 오르는 효과
- 일반분양 안하는 상가
시행사가 분양 수익 포기하고 직접 운영 나서고 입점 설득… 길게 보고 브랜드 가치에 투자


지난 31일 오후 찾은 경기도 수원 광교신도시 '광교 아이파크' 단지 내 상가인 '앨리웨이 광교'는 유명 쇼핑몰을 연상시켰다. 골목길처럼 구불구불 펼쳐진 식당가는 맛집을 찾는 사람들로 북적였고, 중앙광장 옆 분수대에서는 어린이들이 뛰놀았다. 갤러리에서는 베네수엘라 출신 '빛 예술가' 카를로스 크루즈-디에즈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다. 거리에서 만난 행인 중에는 산책 나온 아파트 입주민으로 보이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잘 차려입은 나들이객이었다.





지난 6월 수원 광교신도시 아이파크 단지 내 상가인 '앨리웨이 광교'에서 열린 호주 서커스단 '스트레인지 프루트' 공연을 아파트 입주민 등 1만여 명이 관람하고 있다. 주 52시간 근로제와 워라밸 문화 확산에 따라 아파트 단지 내에서 여가를 즐기려는 사람이 늘면서 다양한 먹거리, 볼거리로 차별화에 나서는 상가가 늘고 있다. /네오밸류

아파트의 '부속물'로 인식되던 단지 내 상가가 바뀌고 있다. 부동산 중개업소, 미용실, 편의점 등 '뻔한' 상점은 줄이고 젊은이들의 감성을 자극하는 맛집과 문화 예술, 오락 시설로 중무장하면서 지역을 대표하는 '핫플레이스'로 떠오르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클럽·워터파크까지… 상가는 진화 중

앨리웨이 광교는 대기업 프랜차이즈 음식점이나 카페 대신 SNS에서 유명한 '동네 맛집'으로 채워져 있다. 정관 스님(백양사 천진암 주지)이 운영하는 사찰음식점 '두수고방'과 서울 성수동 유명 빵집 '밀도', 숙성 고기 전문점 '감성고기' 등이 대표적이다. 김소영·오상진 전 아나운서 부부가 운영하는 북카페 '책발전소'와 라이브 재즈바 '겟올라잇', 키즈카페 '앨리키즈'는 광교신도시 전역의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중앙 광장에서는 각종 공연과 콘서트가 수시로 열린다. 지난 6월 호주 서커스단 '스트레인지 프루트'의 공연이 열렸을 때에는 하루 만에 1만명 넘는 사람이 몰렸다.





다양한 음식점과 워터파크, 호텔을 갖춘 서울 송파구 문정동 '파크하비오 푸르지오' 단지 내 상가. /김연정 객원기자

서울 송파구 문정동 '송파 파크하비오 푸르지오' 단지 내 상가도 평일 저녁이나 주말이면 사람들이 몰려든다. 모 TV 프로그램에서 '정직한 식당'으로 선정된 음식점이 모여 있는 푸드코트 '착한 식당촌'이 단연 인기다. 영화관, 워터파크, 찜질방, 호텔까지 갖추고 있어 연인이나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하루종일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호텔에서 휴가를 즐기는 '호캉스족' 사이에서도 인기다. 호반건설이 판교, 광교에 만든 '아브뉴프랑'과 요진건설이 일산에 만든 '벨라시타'도 성공적인 아파트 상가로 평가받는다. 모두 특색 있는 식당과 광장, 전시장 등을 갖추고 있다.

분양 안 하고 임차인 가려 받아

인기 있는 단지 내 상가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상가를 개발한 시행사가 분양하지 않고 직접 운영한다는 점이다. 분양을 통해 단기간에 거둘 수 있는 매출을 포기하는 대신 임차인을 관리하며 제대로 된 상권부터 만드는 전략이다. 상권이 활성화되면 나중에 더 비싼 가격에 분양할 수 있고, 계속 보유하며 임대료 수입을 거둘 수도 있다. 좋은 상가를 낀 아파트의 인기가 높아지면 브랜드 가치에도 도움이 된다.





호반건설이 판교신도시 '호반 써밋 플레이스' 단지에 프랑스 느낌으로 꾸민 상가 '아브뉴프랑'. /호반건설

앨리웨이 광교는 광교 아이파크를 개발한 네오밸류가 점포 100여 곳의 소유권을 모두 갖고 있다. 손지호 네오밸류 대표는 "적절한 임차인을 찾고 입점하도록 설득하느라 2년 넘는 시간을 투자했다"며 "단지 내 상가를 사람들이 모여드는 커뮤니티의 장으로 만들면 아파트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준비했다"고 말했다.

아브뉴프랑과 파크하비오도 시행사인 호반건설과 다함하비오가 모든 상가를 보유하고 있으며 임차인 관리도 직접 한다. 호반건설 관계자는 "분양하면 100억원을 번다고 가정했을 때, 직접 운영하면 10년이 걸려도 그 돈을 벌기 어렵다"며 "수익만 따지면 분양하는 것이 낫지만 회사의 중장기적인 브랜드 가치와 신사업 발굴 차원에서 투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몰세권' 효과, 집값에도 긍정적

상가가 잘되면 집값에도 도움이 된다. 대형 쇼핑몰 주변 아파트를 사람들이 선호하면서 집값도 오르는 이른바 '몰(mall)세권' 효과와 같은 이치다.

지난해 입주한 광교 아이파크는 2015년 분양 당시 전용면적 84㎡의 분양가가 5억원대 중후반이었는데 올해 3월 8억9700만원에 거래됐다. 근처에 있는 광교더샵, 광교호반베르디움도 비슷하다. 그 사이 광교 전반적으로 집값이 오르기는 했지만 북동쪽으로 1㎞ 정도 떨어져 있는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 아파트들의 시세는 광교 아이파크보다 2억원 이상 싸다. 영덕동 아파트들도 2009~2014년 사이 입주한 새 아파트다.

파크하비오 푸르지오 전용 84㎡는 2016년 10월 7억원대에 거래됐지만 지금은 12억원이 넘는다. 송파구 L공인 관계자는 "입주 초기에는 건물이 답답하게 지어졌다며 불만을 갖는 사람도 있었는데 상권이 활성화되고 집값이 오르면서 지금은 입주민들의 만족도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김희정 피데스개발 연구소장은 "주 52시간 근무제와 워라밸 문화 확산의 영향으로 요즘 도시 사람들은 집 근처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한다"며 "단지 내 상가는 앞으로도 아파트의 중요한 경쟁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판교·광교엔 있는데… 서울엔 이런 상가 왜 드물까?]

서울시 중구 A아파트는 입주한 지 10년 넘게 지났지만 상가엔 여전히 공실(空室)이 넘쳐난다. 마트와 식당이 모여 있는 출입구 근처는 그나마 사람이 드나들지만, 조금만 구석진 곳으로 가면 인적이 끊기고 상가는 대부분 동대문 의류 상인들의 창고로 쓰이고 있다.

서울 도심은 유동 인구가 많기 때문에 아파트 단지 내 상가도 잘될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최근 서울에 지어진 아파트 상가 중 상권이 활성화된 사례는 의외로 찾기 어렵다. 서울 새 아파트는 대부분 재건축·재개발 단지이기 때문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의 사업 주체는 기업이 아닌 조합이다. 조합은 자금 여력이 없고 직접 상가를 운영할 전문성도 없기 때문에 대부분 아파트 분양이 끝나는 대로 상가도 쪼개서 분양한다. 분양이 끝난 후에는 개별 상가 소유자들이 임차료를 많이 주는 임차인을 우선적으로 받는다. 그러다 보니 편의점, 통신사 대리점 등 유동 인구 유입에 별 도움 안 되는 업종으로의 쏠림 현상이 나타난다. 유동 인구가 늘지 않으면 상권이 형성되기도 어렵다. 권강수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는 "재건축·재개발 아파트 상가는 입지가 좋음에도 사업 주체가 조합이라는 한계 때문에 상권 관리가 안 되는 경우가 많다"며 "도심 아파트 상권은 도시계획 측면에서도 중요하므로 잘 관리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순우 기자 snoop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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