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던 남편, 내 앞에 무릎 꿇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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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3.18. 오후 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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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은 목사의 ‘아스팔트에 핀 부흥의 꽃’ <21>
전태식 목사와 이경은 목사가 2016년 2월 충북 청원진주초대교회에서 개최된 제9회 아바드리더 콘퍼런스에서 오케스트라 공연 후 인사하고 있다.

‘남편을 세우고, 아내를 힘 있게 하며, 자녀를 성공 시키는 꿈이 이루어지는 교회.’ 순복음진주초대교회 슬로건이다. 시편 128편에 기록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가정에 임하는 복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다. 이것은 아바드리더시스템의 주제이기도 하다.

하나님은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에게 각각 지켜야 할 도리를 가르쳐 주셨다. 가장 먼저 남편에게는 자기 아내를 사랑하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제 몸 같이 하라”고 하셨다.(엡 5:25, 28) 아내가 마음이 아픈지, 추운지, 고픈지 자기 몸처럼 보살피며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 쉬운 것 하나 실천할 때 아내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자기 아내를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고 말씀하셨다.(벧전 3:7) 지금이야 시대가 달라졌다지만, 한국은 전통적으로 남존여비 사상이 강했다. 어떤 일에도 그저 묵묵히 참는 것을 아내의 미덕이요 도리라고 받아들였던 여인네들의 삶, 우리 어머니만 해도 그러했다. “참을 수가 없도록 이 가슴이 아파도… 여자이기 때문에 참아야 한다기에…”라며 참고 또 참는 모습만 보여주셨다.

어려서부터 그렇게 교육받으며 자랐기에 결혼생활 역시 그러했다. 남편은 ‘남자는 하늘, 여자는 땅’이라 생각하는 가부장적 가정에서 자란 경상도 토박이였다. 친정에서도 무조건 남편 말에 순종해야 한다고 교육받아왔던 나는 남편 말에 무조건 순종하는 게 집안을 편하게 하는 길인 것 같아 고분고분 따르며 지냈다.

남편은 하나님을 만나고 난 후부턴 말씀을 알기에 예전처럼 힘들게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강단에서 설교할 때마다 의기양양하게 외치곤 하였다.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엡 5:22)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고전 11:3)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골 3:18)

하나님 말씀을 명령으로 받아 남편에게 순복하면서도, 왠지 억울한 맘에 속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하와를 만드실 때, 아담 갈비뼈가 아니라 차라리 발가락뼈로 만드셨다면 이런 말씀이 이해라도 되지요. 공평하신 하나님이시라면서 왜 여자들에게만 이렇게 가혹하십니까.’

그러다 하나님께서 한 말씀을 깨닫게 하셨다. 조용히 남편 목사님에게 물었다. “목사님, 여기 베드로전서 3장 7절에 이런 말씀이 있는데, 이게 무슨 뜻일까요. ‘남편 된 자들아…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니라.’”

한참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던 남편은 적잖게 충격을 받은 듯했다. 남편은 무엇보다 기도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아무리 기도해도 아내를 귀히 여기지 않고 마음을 상하게 하면 기도가 막힌다니 왜 놀라지 않겠는가. 게다가 나는 누구보다도 남편에게 복종하는 아내였으니 말이다.

이후 남편은 강대상에서 이 말씀을 선포하기 시작했고,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애썼다. 어쩌다 나의 마음을 상하게 한 일이 생기면, 반드시 먼저 용서를 구했다. 한번은 말씀을 전한 후, 통성 기도하는 시간이었다. 기도 중에 인기척이 느껴져 눈을 떴는데, 기도 인도를 하던 남편이 강단에서 내려와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아니, 왜 이러세요.” “내가 당신 마음 상하게 한 것 미안해요. 용서하세요.” 그리고 내 머리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한 후, 다시 강대상으로 향했다. 내게 잘못한 것이 있는데, 나중에 사과할 수도 있지만, 말씀이 생각나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고 했다. 말씀에 즉각 순종하는 그 모습이 얼마나 마음을 울렸는지 모른다. 그 모습에 남편을 더욱 존경하며 섬길 수밖에 없었다.

개척교회 당시, 노총각 집사님의 결혼을 추진한 적이 있는데, 결혼 전 내게 물어 왔다. “어떻게 하면 존경받는 남편이 될 수 있습니까.” 나는 말했다. “집사님, ‘내가 남자다’하지 말고 말이든 행동이든 아내 앞에서 실수하지 마세요.”

얼마나 지났을까. 한창 신혼 재미에 빠져있을 법한데, 나를 찾아온 집사님은 눈물을 글썽이며 말했다. “남편 노릇 하는 게 이리 힘든 일입니까.” 남자라며 자존심 내세워 아내를 무시하지 않고, 아내에게 흠 잡히지 않으려 매사에 조심하는 것이 어찌 쉬운 일이겠는가.

이런 노력이 꽃을 피워, 이후 그 아내가 저녁마다 남편에게 큰절하며 대야에 물을 떠 와 발을 씻겨준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존경받는 남편이 되는 꿈을 이룬 것이다.

남편들이여, 하나님께서 가르쳐 지키게 한 말씀을 기억하자. 아내를 사랑하되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제 몸처럼 사랑하자. 그리고 아내를 귀히 여기자.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아내에게 진심 어린 존경과 섬김을 받는 남편으로 설 수 있을 것이다.

▒ 아바드리더시스템이란
다윗이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승리 확신한 이유

하나님이 원하시는 용사의 조건 중 하나가 무엇인가.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소년 다윗은 바로 이런 용사였다.

사무엘상 17장을 보면 블레셋 사람들이 군대를 모으고 이스라엘을 치러 오자 사울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에 대해 항오를 벌이고 있었다. 그때 블레셋 사람의 진에서 무장한 거인 장수 골리앗이 나와 서서 이스라엘 군대와 하나님을 모욕한다. 사울과 온 이스라엘 사람은 그의 말을 듣고 놀라 심히 두려워해 도망했다.

그러나 골리앗의 말을 들은 소년 다윗은 어떻게 말하는가.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삼상 17:26) 다윗은 한낱 양치는 목동에 불과했다. 골리앗은 외모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상대였다. 하지만 다윗은 두려워하거나 물러서지 않았다. 오히려 골리앗은 용사요 다윗은 싸움할 수 없는 소년이라 말하는 사울에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그 입에서 새끼를 건져내었고 그것이 일어나 나를 해하고자 하면 내가 그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 죽였었나이다 주의 종이 사자와 곰도 쳤은즉 살아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한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리이까 그가 그 짐승의 하나와 같이 되리이다.”(삼상 17:34~36)

다윗이 골리앗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확신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는 평소 사자나 곰으로부터 양 떼를 지키는 일상에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훈련돼 있었다. 다윗과 골리앗이 싸울 때 골리앗은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나아왔다. 하지만 다윗은 무엇으로 나아갔는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삼상 17:45)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아간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이는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함이다. 아무리 많은 일을 하고 어떤 큰일을 해도 무익한 종의 자세로, 모든 영광은 오직 하나님께만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 하지 않는 것이다.

전쟁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의 승패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시는가에 달려 있다. 르비딤에서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싸울 때 승리는 싸움에 능한 아말렉의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전쟁의 결과는 어떠했는가. 하나님은 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게 하심으로 이스라엘이 승리하게 하셨다.(출 17:8~16) 이처럼 자신의 힘이 아닌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과 능력으로 주의 일을 감당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윗은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직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 담대히 골리앗에게 나아갔다. 그렇다면 다윗과 같은 믿음의 자세가 가져다주는 결과는 무엇인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승리를 주실 것이라는 다윗의 믿음대로였다. 거인 골리앗은 다윗 앞에 엎드러졌고 이스라엘은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우리는 주의 일을 하면서 어떤 자세로 임하고 있는가. 다윗처럼 죽기를 각오하고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나아가는가. 아니면 나의 뜻을 내세우며 나의 힘과 능력으로 하려 애쓰고 있는가. 용사는 하루아침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훈련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윗과 같이 훈련된 믿음에 이르도록 끊임없이 훈련하며 오직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힘만을 의지하는 진정한 용사의 자세로 범사에 승리하는 우리가 되자.

이경은 목사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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