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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시 33 -고향산천/하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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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8. 27.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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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시 33  -고향산천


우리는 자연(自然)을 산하(山河)라고 한다.

자연을 순우리말로 '절로'라고 한다. 아무도 그러하지 않았는데 스스로 그러하다는 것이다.

초등학교 때 '자연'이라는 과목이 '사회'라는 과목과는 따로 있었다.

고등학교의 지리(地理)와 인문(人文)이라는 과목을 닮았는데, 

요즘 사회는 환경(環境)이라고 부르며 보호대상으로 곧잘 떠받들고 있는 것 같다.

環境(고리-환,지경-경)을 사전에서 살펴보니 '둘러싸고 있는 지경'으로서, '사람이나 동식물의 생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눈ㆍ비ㆍ바람 등의 기후적 조건이나 산ㆍ강ㆍ바다ㆍ공기ㆍ햇빛ㆍ흙 등의 초자연적(超自然的) 조건'이라고 한다. 아무튼 자연(自然)을 뛰어넘는 것으로 상태가 바뀐다는 것이 신기하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했던가?

여기에서 연(然)은 '그러하다'는 뜻으로 '개(犬)고기(月=肉)를 불(火)에 구워 먹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뜻이라니 '자연보호가'들은 또 뭐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는 자연(自然)을 산하(山河)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얼마나 큰 우리일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우리의 그림으로 자연히 산하를 그린다. 

김동인이 쓴 단편소설 '붉은 산'은 <삼천리(1932. 4.)>에 발표했으며, 삶의 터전을 잃고 이국에서 비참하게 살아가는 조선인 소작인들과 동족을 학대하고 괴롭히다가 그들을 위해 자기의 목숨을 기꺼이 바친 삵을 통해 민족의식과 조국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담아 우리에게 많이 읽혀지고 있다. 

이제는 북한만이 여전히 '붉은 산'이고 한국은 '푸른 산'이 되었다. 얼마전 '푸른 산'에도 솔잎혹파리가 소나무에 기생하여 얼마간 점점 붉어져서 부랴부랴 붉은 소나무들을 베어낸 적이 있다. 요즘은 참나무 병충해 마름병으로 붉어지다가 말라죽어가니 걱정이다.

자연(自然)을 산하(山河)로 그린다고 했는데, 아직 하(河), 곧 천(川)이나 강(江)은 그리지 않았다.

'고향산천'이라는 말도 있고, 직접 물을 집어넣어 '진경산수(山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조선중기 김인후(金麟厚)의 '청산도 절로절로 녹수도 절로절로 / 산 절로 수 절로 산수간에 나도 절로 / 그 중에 절로 자란 몸이 늙기도 절로 하리라'는 '자연가'도 있지 않은가? 

산과 물은 항상 짝을 이룬다. 우리나라 애국가에도 "동해물과 백두산이~"라고 하지 않는가?

산과 물을 뗄 수가 없다. 산은 물을 품어주고 물은 산을 감아돌아 항상 함께 한다고 한다. 

한 편으로는 산은 물을 품어주는데 물은 산을 떨치고 산을 후벼 판다고도 한다.

'산천은 의구하다(山川依舊: 옛 모습 그대로 변하지 않음)'하다고도 한다.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라고도 한다. 밤낮으로 흐르니 옛 물이 있겠느냐고 한다. 

산은 변함이 없는데 물은 변함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다시 바라보면 산은 변함이 있으되 물은 변함이 없는 것이 아닌가? 

산은 사시사철 다른 모습으로 다른 옷을 입는다. 산에 옛 나뭇잎과 옛 풀이 나던가?

그러나 물은 옛날에도 지금에도 하나로 이어 흐른다. 언제 끊겨 흐르는 적이 있던가? 

예부터 지금까지 하나로 이어져 있다면 예나 지금이나 한 몸인 것이고, 한 몸이면 변함이 없는 것이다. 

인걸은 물과 같지 않아서 어제의 마음과 오늘의 마음이 같지 않는가?

아무튼 자연(自然)은 산하(山河)이고, 우리의 근원이며, 고향이며, 인생이며, 사랑이다.

산은 나라이고 물은 역사이다.


산도 깊으니 물도 깊겠다. 배를 타고 산천을 둘러 보니 모두가 자연이다. 물 흐르듯 세월따라 살아온 나그네의 감회도 깊다. 강기슭에 내려 돌아가는 배를 바라다 보며 인생길 지나온 길 가야할 길을 겹쳐 밟고 선 나그네의 시름이 이어진다. 


*

자모기(慈姥磯) -자모산밑 물가 자갈밭

 /하손(何遜)/남조(南朝)제(齊)양(梁)


暮煙起遙岸(모연기요안) 멀리 강 언덕에 저녁 안개 피어오르고,

斜日照安流(사일조안류) 저문 햇빛이 고요한 물결에 비쳐든다.

一同心賞夕(일동심,상줄/즐길-상석) 함께 마음을 같이 한 저녁,

暫解去鄕憂(잠해거향우) 잠시 고향을 떠난 시름을 푸네.

野岸平沙合(야안평사합) 들 언덕과 모래톱이 구분되지 않고,

連山遠霧浮(연산원무부) 잇닿은 산들은 멀리 안개 속에 떠 있네.

客悲不自已(객비부자이) 나그네의 비애는 저절로 멈출 수가 없으니,

江上望歸舟(강상망귀주) 강기슭에서 돌아가는 배를 바라본다.


*

1) 姥(모) : 할미. 늙은 여자. 늙은 어머니. 노모(老母).

2) 磯(기) : 물가. 강가의 자갈밭.

3) 慈姥磯(자모기) : 자모산(慈姥山) 자락의 물가. 배를 띄운 것으로 봐서 계곡물 수준은 넘어선 것 같다. 자모산은 건강(建康)[지금의 남경시(南京市) 강녕현(江寧縣)]서남쪽에 있으며, 산의 남쪽에 자모묘(慈姥廟)가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4) 暮煙(모연) : 저녁 무렵의 연기. 저녁 안개.

5) 遙岸(요안) : 멀리 보이는 강 언덕.

6) 斜日(사일) : 저녁때가 되어 서쪽으로 기울어진 해. 사양(斜陽). 저문 햇빛.

7) 安流(안류) : 조용히 흐르는 물결.

8) 一同(일동) : 모두. 함께. 벗들과 함께 있음을 뜻한다.

9) 心賞(심상) : 마음을 같이 하다. 즐거운 마음을 갖다.

10) 暫(잠) : 잠시.

11) 去鄕憂(거향우) : 고향을 떠난 시름. 고향을 떠나서 생긴 시름.

12) 野岸(야안) : 들 언덕.

13) 平沙(평사) : 모래톱. 모래펄. 모래밭.

14) 合(합) : 보통은 ‘합하다’, ‘합쳐지다’의 뜻이나, 여기에서는 (저녁 안개 때문에) ‘구분이 되지 않는다’ 정도로 풀면 된다.

15) 連山(연산) : 죽 잇대어 있는 산.

16) 客悲(객비) : 나그네의 슬픔. 나그네의 비애.

17) 自已(자이) : 저절로 멈추다.

18) 歸舟(귀주) : 고향으로 돌아가는 배. 낚시하러 나왔다가 들어가는 배.


* 하손(何遜 466?~519?)

남조(南朝)의 제(齊)․양(梁)간에 활동한 시인이자 문장가, 자는 중언(仲言), 중신(仲信)이라는 설도 있다. 시성(詩聖) 두보도 이 선배 시인을 존경하여 ‘시를 위해 고심했던 음(陰)․하(何)를 열심히 배운다.’고 했는데, 여기 나오는 ‘음’은 음갱(陰鏗)이라는 진(陳)나라의 유명한 시인이었고, ‘하’는 바로 하손을 가리킨다. 그는 풍경 묘사에 뛰어났는데, 경물(景物) 속에 정감을 기탁해내는 이른바 정경교융(情景交融)이란 중국 고전시가의 원숙한 경지를 보여주었다.


* 음갱(陰鏗 ?~?): 남조 진(陳)나라의 시인으로, 자는 자견(子堅)이다. 그의 시풍도 하손과 비슷하여 풍경 묘사에 뛰어났으며, 생몰년 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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