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진태의 요가로 세상 보기] 71. 망각의 강 레테의 상징은 억울하오, 까마귀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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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2.07.08. 오전 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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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마귀 자세 ‘카카 아사나(kaka asana)’는 쪼그리고 앉은 자세에서 발꿈치를 들어 발끝으로 중심을 잡고, 두 팔을 짚고 상체를 앞쪽으로 중심 이동시키면서 정강이를 팔 윗부분에 대고 전신을 들어 올린다. 팔과 복부를 강화하며 집중력과 균형 유지력이 향상된다. 시연 박미희.


검은색을 띤 동물 가운데서도 대표적인 날짐승이 까마귀다. 까마귀는 날개와 머리를 포함하여 온몸이 까맣다.

까마귀는 민가 주변이나 산간 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새다. 이 새는 신의 의지를 전달하는 신령스러운 능력과 죽음이나 질병을 암시하는 불길함의 상징이라는 양면성을 가지고 우리들의 정서에 자리하고 있다. 그런 믿음이나 설화의 성립에는 아무래도 시체 먹는 새라는 점이 가장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냄새를 기막히게 잘 맡기 때문에 죽은 사람이 있으면 멀리서 찾아온다.

또한 ‘가오가오’거리며 우는 소리는 축생 주제에 인간보고 꺼지라고 하는 게 건방지다 하여 흉조로 여긴다는 설도 있다. 물론 돌연변이로 태어난 흰 까마귀는 그런 거 없이 무조건 길조라 생각한다나. 이는 흰 까치나 흰 참새, 흰 비둘기 흰 독수리 등에도 적용되는 사항이다.

까마귀만큼 호오(好惡)가 명확히 갈리는 새도 없을 듯하다. 온몸이 새까매서 흉물스럽다고 배척하는 것을 넘어 울음소리는 죽음을 가져오는 흉조로 여겼다.

“까마귀가 열 번 울어도 까옥 소리뿐이다”란 속담은 미운 사람이 하는 짓은 모조리 밉다는 말이다. 반면 “까마귀가 검기로 마음도 검겠나”라는 말은 겉모습으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이다.

검은색의 까마귀는 우리 고대 신화에서 태양을 상징한다. 다리가 세 개인 삼족오(三足烏)가 바로 태양을 상징하는 신령스러운 동물인 것이다.

보통 새가 아니다. 한데 그 많은 짐승 중에서 하필 까마귀가 태양을 상징하게 되었을까? 여러 설이 있는데 그중에서 태양의 흑점에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 흑점에 까마귀가 비유되었다는 것이다.

제주도에 전승되는 서사무기 ‘차사본풀이’를 보면, 인간의 수명을 적은 적패지(赤牌旨)를 까마귀에 시켜 인간세계에 전달하도록 하였는바, 마을에 이르러 이것을 잃어버리고 까마귀 마음대로 떠들었기 때문에 어른과 아이, 부모와 자식의 죽는 순서가 뒤바뀌기도 하고, 이때부터 까마귀 울음소리는 죽음의 불길한 징조로 받아들여졌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까마귀가 울면 그 동네에 초상이 난다고 믿고 있으며, 까마귀 울음소리는 불길한 조짐으로 알려져 있다. 일본은 정반대의 개념으로 길조(吉鳥)라 여긴다. 우에노 공원에 들렀을 때 온 공원을 새까맣게 뒤덮으며 까악까악 울어대던 까마귀 떼가 생각난다. 일본인들이 예전에 우리가 까치를 대하듯 하는 모습이 기억에 남는다. 우리 같으면 재수 없다고 퉤퉤 하고 몇 번이나 침을 뱉었을 터인데 말이다.

고대 세계에서는 신령스러운 새로 한껏 대접받았던 까마귀가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가 된 것은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그리된 것으로 여겨진다. 조선시대에는 검은색을 천시하고 청렴과 결백을 상징하는 흰색을 숭상했던지라 이때부터 일본과는 달리 까마귀를 천시하는 풍토가 생긴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제시하는 학자도 있다.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속담은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라는 말이다. 이 말은 무엇인가를 잊는다는 뜻이다. ‘망각(忘却·forgetting)’한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망각은 우리에게 두려운 것으로 인식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신이 인간에게 준 얼마나 큰 축복의 선물일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망각이란 것이 없다면 과연 인간은 이 험한 세파를 견디며 잘 살아갈 수 있었을까?

기억하고 싶고 잊고 싶지 않은 소중한 기억들이나, 축복과 기쁨과 환희의 순간들도 많겠으나, 반대로 잊고 싶고 떨치고 싶고, 슬픔에 절망감에 휩싸이며, 모독감 모멸감에 몸부림치던, 믿고 의지했던 지인으로부터의 배신감에 치를 떨던 기억들 등등 잊고 싶은 기억들이 또 얼마나 많은가? 오히려 더 많으면 많았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망각의 여신이 레테(Lethe)이다. 저승에는 그녀의 이름을 띤 망각의 강 레테가 흐르는데 이 레테 강의 강물을 마시면 이전의 기억을 모두 잃게 된다고 한다. 죽어서 저승에 가는 망자들은 누구나 이 강물을 마셔야 한다.

망자가 저승으로 가려면 모두 다섯 개의 강을 건너야 하는데, 슬픔의 강 아케론, 탄식의 강 코키투스, 불의 강 플레게톤, 증오의 강 스틱스, 그리고 망각의 강 레테다.

저 망각의 강 레테를 건너 이승의 일을 잊고 저승으로 건너가며, 저승의 일을 잊고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난다. 망각은 새로운 생명을 받는 것처럼 우리에게 새로운 날을 맞이하게 한다.

누군가는 말한다. “내게 하루는 저 망각의 강을 건너는 일이며, 내게 한 해는 더 큰 망각의 강을 견디는 일이다”라고.

또 보이오티아의 레바데아에 있는 트로포니오스의 신전 앞에는 레테(망각)와 므네모시네(기억)라는 두 개의 샘물이 흐르는데, 이 신전에 신탁을 구하러 온 두 사람은 두 샘물을 차례로 마셔서 이전의 기억을 지우고 신탁을 명심했다고 한다.

레테는 기억을 없애줄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함으로써 진실을 감추고 은폐한다는 의미도 있다. 진리, 진실을 뜻하는 그리스어 아레테이아(aletheia)는 레테와 같은 어원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한다.

레테와 관련된 신화는 후대의 철학과 예술에 많은 영감을 불어넣었다.

플라톤은 국가에서 영혼의 세계에 있던 인간은 다시 새로운 육신을 얻어 환생할 때 이 강물을 마셔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야 저승의 일들에 대한 기억이 모두 사라진 채, 이승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마신 강물의 양에 따라 기억은 완전히 소실되기도 하고, 어렴풋이 남아 있기도 하다.

단테의 신곡에도 레테 강에 대한 언급이 있다. 신곡의 주인공 단테는 꿈에 그리던 베아트리체를 만나 천국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레테 강물을 마시고 죄와 지옥의 기억을 모두 지운다.

괴테의 파우스트 2편에서는 정령 아리엘이 파우스트로 하여금 레테의 강물에서 목욕하도록 하여 1편에서 저지른 죄와 악마와의 결탁 사실을 모두 잊게 만든다.

보들레르는 ‘레테’라는 제목의 시에서 망각을 사랑스럽고도 잔인한 여인에 비유한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신곡 ‘바알’에서 주인공 바알은 술을 혼자 마시며 혼잣말을 할 때 술병을 ‘레테’라고 부르며 대화하듯 말한다.

전염병이 돌 때 까마귀가 울면 병이 널리 퍼진다고 하며, 길 떠날 때 까마귀가 울면 재수가 없다고 한다. 이러한 관념에서 불길한 징조를 나타내는 속담으로 ‘돌림병에 까마귀 울음’, ‘식전 마수에 까마귀 우는 소리’ 등이 생겼다. 또한 귀에 매우 거슬리는 말을 할 때 “염병에 까마귀 소리를 듣지”라고 한다. 이러한 예들은 고대의 까마귀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여 불길한 새로 받아들여졌음을 보여준다.

한국에서는 불길한 징조로 기피하는 새지만, 외국에서는 길조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 중 하나가 까마귀의 높은 지능 때문이다. 까마귀는 그 이름 때문에 건망증과 문맹(文盲)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까마귀는 머리가 나쁠 것으로 알려져 있어서, “까마귀 고기를 먹었나?” “까마귀 고기를 먹으면 머리가 나빠진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까마귀의 지능은 꽤 높은 편이다. 실제로 머리가 가장 좋은 새 1위에 랭크된 적도 있을 정도다. 까마귀는 돌고래, 침팬지와 함께 거울에 비친 모습이 자신임을 인지하는 몇 안 되는 종(種)의 생물이며, 심지어는 거울을 이용해 먹이를 찾기도 한다.

까마귀는 사람의 얼굴을 구분하는데, 한 번 자신을 공격한 사람을 기억했다가 두고두고 덤벼들어 공격하기도 한다. 일본 오키나와에서는 2004년 관광객이 자전거 바구니에 둔 지갑을 까마귀가 훔쳐 간 사건이 발생했다. 까마귀가 머물던 나무 아래에는 지퍼가 열린 지갑이 발견됐고 찢어진 지폐도 발견됐다. 또 일본에서 까마귀가 기차역 승차권 자동 발매기 앞에서 승객의 신용카드를 훔친 뒤 이를 발매기에 넣어 표를 끊으려고 시도하는 게 목격되기도 했다.

얼마 전 일본 국립 종합연구대학원 대학연구팀은 성문(聲紋) 분석기를 통해 까마귀가 최소 40여 개 정도의 까마귀 어(語)를 구사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까마귀는 자동차 바퀴를 호두까기 기계로 이용하기도 한다. 호두를 도로 위에 떨어뜨려 자동차가 지나가면 호두를 부서뜨리도록 한다. 특히 교차로에 호두를 떨어뜨리고 신호가 바뀌기를 기다렸다가 보행자들과 같이 걸어가 알맹이를 수거해 가기도 한다.

이솝 우화에서는 물병의 물을 마시기 위해 돌을 물에 넣는 까마귀가 등장한다. 실제로 2009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 연구팀이 떼까마귀를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까마귀들은 물병 속에 떠 있는 벌레에 부리가 닿지 않자 이를 먹기 위해 돌을 물병에 넣는 행동을 보였다. ‘물에 물체를 넣으면 그 부피만큼 물의 부피도 늘어난다’는 아르키메데스의 원리까지 이해한다는 말이다.

남서 태평양 프랑스령 섬이자 유명한 관광지인 뉴칼레도니아에 사는 뉴칼레도니아 까마귀는 지능이 좋기로 유명하다. 부리가 닿지 않는 깊은 구멍에 고기를 넣어두고 먹이까지는 닿지 않는 짧은 막대를 상자 가까운 곳에, 먹이까지 닿는 긴 막대를 상자 먼 쪽에 놓아뒀다. 그러자 까마귀는 짧은 막대로 긴 막대를 꺼낸 뒤, 다시 긴 막대로 구멍 속의 먹이를 꺼내 먹었다.

문제해결 능력이 원숭이보다 앞섰다는 평가를 받았다. 날아다니는 영장류라는 별명이 붙은 이유다. 뉴칼레도니아 까마귀는 철사를 휘어 고리를 만드는 등 스스로 사용하기 편하도록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기도 한다. 또 지퍼를 열고 먹을 것을 꺼내 먹기도 하며, 지붕이나 눈 내린 산에서는 등으로 눈썰매를 타기도 한다. 훈련을 시키면 앵무새처럼 사람의 말을 따라 하기도 한다.

티베트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조장(鳥葬)을 하는데, 그때 시체를 뜯어 먹으러 오는 새는 독수리와 까마귀뿐이다. 죽은 자의 뼈와 살을 물고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티베트인들은 까마귀를 신령한 새, 영조(靈鳥)라고 한다.

인삼을 솥에다 찌면 홍삼이 되듯이 까마귀가 용광로에 들어가 단련을 받으면 삼족오라고 하는 신조(神鳥)로 거듭난다는 말이다. 삼족오는 고대 신화에 나오는 태양 안에 산다는 세 발 달린 상상의 까마귀인데, 고구려 벽화와 유물에서 그 문양이 꾸준히 나타난다.

일본도 1930년부터 일본 축구협회 엠블럼으로 삼족오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고구려의 상징을 일본이 도용했다고 흥분한 적이 있었지만 일본의 고분벽화에도 삼족오가 등장하니 일본도 삼족오를 사용할 수 있는 명분이 있다 하겠다. 이는 동북아 지방의 공통된 공유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삼족오 문화는 중원에서 동북으로 전파된 문화와 서쪽에서 초원을 타고 동으로 이동한 문화가 고구려에서 만나 화려한 꽃을 피우고 다시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날아갔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따라서 삼족오를 고구려 전유물처럼 생각한다는 것은 잘못이다”라고 역사학자 정형진은 말하고 있다.

중국의 산해경에는 서왕모가 신선사상과 결합하게 되고 서왕모의 심부름꾼을 하는 새로서 삼족오가 등장한다.

명나라 말기 이시진의 본초강목에는 까마귀 습성에 대한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까마귀는 부화한 지 60일 동안은 어미가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지만 이후 새끼가 다 자라면 먹이 사냥에 힘이 부친 어미를 먹여 살린다.’

반포지효(反哺之孝), 반포보은(反哺報恩)이라는 말은 까마귀가 자라서 자기를 길러준 부모에게 먹이를 구해준다는 데서 유래했는데, 극진한 효도를 의미한다. 실제로 새끼 까마귀는 두서너 살 무렵, 성적으로 성숙하게 될 때까지 부모 곁에 머문다. 수컷 까마귀의 경우 스스로 가족을 꾸릴 준비가 된 지 한참이 지난 후에도 부모 곁에 머물기도 한다. 그러면서 새로 태어난 새끼, 즉 동생들을 돌보기도 한다. 먹이를 가져다주고 둥지 청소를 돕는 것이다.

조선 후기 시인 박효관은 교훈가란 시조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그 누가 까마귀를 검고 흉하다 했는가/반포보은이 이 아니 아름다운가/사람이 저 새만 못함을 못내 슬퍼하노라.”

이렇게 보면 까마귀야말로 겉은 검어도 속은 흰 새다. 겉으로는 흰 체하면서 속은 검다 못해 시커먼 인간보다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또한 까마귀에 관한 다른 일화도 동서양에는 많다. 까마귀는 페르시아에서 발생하여 로마에서 그 전성기를 맞았다. 미트라교에서 ‘태양 신’의 길 안내자 역할을 했다.

또한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아폴론을 수행한 아리스테나스도 까마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알렉산더 대왕과 관련된 일화에도 까마귀가 등장한다. 기원전 1세기 그리스 역사가 디오도로스의 세계사에는 알렉산더가 기원전 313년 사하라를 여행할 때, 모래 언덕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었는데, 돌연 나타난 까마귀 두 마리의 길 안내를 받아 신전으로 가는 길을 찾았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북유럽 신화에서 전쟁의 신인 오딘에게 세상의 모든 정보를 수집해서 보고하는 임무를 맡은 것도 까마귀였다.

히치콕 감독의 영화에 소개될 정도로 까마귀를 불길한 새라고 생각했다. 선지자 엘리야는 구약성서의 중요한 인물인데 그는 용기와 신앙심을 겸비한 사람으로 이스라엘의 아합왕과 이세벨 왕비 같은 강력한 적들에게 맞서 정면 대결을 하였다. 아합의 눈을 피해 황야로 숨은 엘리야를 돌본 동물도 까마귀였다.

삼국유사 권5 ‘남지승운보현수조’에도 까마귀가 지통이라는 중에게 영취산에 가서 남지의 제자가 되라는 말을 전했다. 남지에게도 지통이 올 것을 알려 주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까마귀는 사람의 앞일을 예언하거나 해야 할 바를 인도하여 주는 새로 나타나고 있다.

또 까마귀는 태양의 정기로도 인식되었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연오랑 세오녀’ 설화는 우리의 태양신화라고 할 수 있는데, 주인공의 이름에 까마귀라는 오(烏)자가 들어 있다. 포항 남구 호미곶에 가면 그 조각상을 볼 수 있다.

한 해의 운세를 보는 데 까마귀를 사용한 예도 있었다. 아랍인들은 까마귀를 예언의 아버지라 부르며, 오른쪽으로 나는 것을 길조, 왼쪽으로 나는 것을 흉조라 믿었다. 반면에 그리스도교에서는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저지르게 하는 악마의 새로 상징되고 있다.

영국에서는 길조라 여겨 킹스 버드(King's Bird)라고 부를 정도이다. 실제로 영국에 가보면 한국의 비둘기 수준 정도로 까마귀가 많다.

까마귀는 전신 흑색의 날개나 기분 나쁜 울음소리, 날카로운 눈빛 등의 특징에서 신비적인 인상을 주기 때문인지 일본에서는 오래전부터 신의(神意)를 전달하는 영조(靈鳥)라 생각하였다.

중국에서는 검은 까마귀는 불길한 새로 여기지만, 붉은색이나 금색으로 그린 까마귀는 태양과 효도를 뜻한다.

신라시대 소지왕이 대궐에서 왕을 시해하려 숨어든 자객을 발견하여 처형한 일이 있는데, 그 사실을 미리 알려주어 화를 면하게 한 동물도 까마귀였다.

우리 전통음식의 하나인 약밥도 이 설화에 근거할 정도로 까마귀는 우리에게 친숙한 동물이다.

오징어란 말의 뜻은 ‘까마귀 잡아먹는 도적’이란 뜻의 오천어(烏賤魚)에서 유래했는데, 오징어가 바다 위에 먹물을 뿜어대며 떠 있는데 까마귀가 물 위에 쉬러 왔다가 쪼아대자 재빠르게 긴 두 팔로 까마귀를 안고 물속으로 들어가 버렸다는 이야기에서 나온 이름이라고 한다.

칠월 칠석날에 까마귀와 까치가 오작교를 만들어 견우와 직녀로 서로 만나게 했다는 설화도 전해진다.

까마귀와 관련된 그림에는 1954년 이중섭이 그린 ‘달과 까마귀’가 있다. 노란 보름달이 뜬, 맑고 검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검게 세 가락으로 그려진 전깃줄에 앉은 까마귀가 인상적이다. 1890년 고흐의 명작 ‘까마귀가 있는 밀밭’도 예사롭지 않다.

울산 태화강 ‘삼호 대숲(십리 대숲)’에는 겨울 손님 까마귀가 날아든다. 떼까마귀 떼와 갈까마귀 떼가 집단을 이뤄 월동을 한다. 군무(群舞)를 펼치는 태화강 까마귀는 이 지역 생태 관련 자원으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까마귀 자세, 카카 아사나(kaka asana)는 먼저 쪼그리고 앉은 자세에서 발꿈치를 들어 발끝으로 중심을 잡고, 두 팔을 두 다리 안쪽에 짚고, 상체를 앞쪽으로 중심 이동시키면서 정강이를 겨드랑이 근처 팔 윗부분에 댄 채 바닥에서 전신을 들어 올린다.

팔과 복부를 강화시키며 집중력과 균형 유지력이 향상된다. 깜빡거리는 기억력도 함께 좋아졌으면 하는 바람도 곁들여 취해보면 좋은 자세이다.

[망각의 강, 레테 / 최진태]

삶의 기쁨 환희 축복 감사 순간 많지만은/고통 눈물 슬픔 절망 잊고픈 순간들이/오히려 더 많다는게 인생로정 문제로다

하루를 견디는건 망각의 강 건너는일/한 해를 살아감도 망각의 강 헤쳐갈 일/이 정도면 참으로 힘든 노곤한 삶 아닌가요

기억은 앞장 서네 고통주는 일 앞에선/정말로 필요할 땐 우릴 떠나 찾게하고/시시비 떠나서라도 과거 집착 도움 안돼

고뇌 선물 하는 일엔 과거 기억 퍽도 자상/기쁨 환희 주는 일엔 애써 외면 태만하니/기꺼이 내 정신건강 내 스스로 챙겨야 해

과거를 붙잡고서 과거 기억 얽매여서/상처받고 고통받는 어리석음 범치말길/회한 자책 그만 접고서 충실하세 이 순간에

과거는 흘러갔다 죽은 과거 묻어 버려/받은 은혜 감사하고 보답키 위한거면/평생토록 잊지말고서 두고두고 기리세

묵은 수렁 빠져들어 헤어나지 못해서야/과거가 현재시간 가두는게 되어서야/다가 올 새 날을 맞아 새 푸대를 준비하세

낌빡이는 기억일랑 자책하지 마시옵길/적당한 망각일랑 오히려 보약되니/뇌 건강 정 걱정되면 한발서기 요가수련을

신이 주신 망각 선물 누리면서 살아가세/몸 건강이 정신 건강 찾아주는 방법일 수/하타요가 명상요가랑 함께 수련 권한다오

레테의 강물 가득 마시면서 새로 나세/온전한 심신건강 나 스스로 다져갈 일/신의 선물 오, 망각일랑 은혜롭게 받드리라



최진태 부산요가지도자교육센터(부산요가명상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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