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닷컴] 글: 돔 패럴/편집: 김현민 = 이번 시즌 초반 득점이 멈추면서 프리미어 리그(이하 PL) 우승 경쟁에서 밀려났던 맨체스터 시티(이하 맨시티)가 다시 선두를 달리고 있다. 펩 과르디올라 감독은 어떻게 팀을 정상으로 돌려놓은 걸까?
과르디올라는 최고의 순간에도 기자회견을 즐기는 감독은 아니다. 지난 9월 레스터 시티와의 홈 경기에서 2-5로 패한 이후 기자회견장에 앉아서는 가능한 빨리 자리를 떠나고 싶은 듯 두 손으로 얼굴을 비비고 있었다.
"1-2에서 1-3이 되면서 평정심과 인내심을 잃었다. 분명 못하고 있지 않았음에도 못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라고 과르디올라 감독은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레스터전에서 맨시티는 리야드 마레즈가 이른 시간에 선제골을 득점했음에도 혼란스러운 모습으로 일관하다 무려 3번의 페널티킥을 내주며 무너졌다. 맨시티는 이전 시즌 챔피언스 리그 8강에서 올랭피크 리옹에 패해 탈락한 이후 실망의 안개 속에 빠져서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다.
코로나 사태로 짧은 휴식 이후 새 시즌을 시작하게 됐을 때, 과르디올라 부임 5년 차를 맞이하는 맨시티는 어딘가 고장이 난 듯했다. 5년은 과르디올라의 감독 경력에서 최장 기간 부임이다. 이래저래 불안 요소가 많았다. 레스터전 패배 당시만 하더라도 맨시티가 이후 공식 대회 20경기 무패 행진을 달리고 PL 우승 경쟁에서 7점이나 앞서 나간다는 상상은 하기 어려웠다.
# 보디가드
레스터에 무너진 지 이틀 뒤, 후벵 디아스가 구단 역대 최고 이적료(6200만 파운드)를 경신하며 입단했다. 오랫동안 주장으로서 팀을 이끌었던 뱅상 콤파니의 공백은 2019/20 시즌 내내 분명히 느껴졌고, 아이메릭 라포르트의 장기 부상과 니콜라스 오타멘디의 심한 기복은 수비진 구성을 어렵게 했다. 디아스 혼자 힘으로 수비진을 개선하는 건 무리로 보였다. 하지만 디아스는 예상을 넘는 활약으로 팀 전체를 바꿔놓았다.
곧바로 팀의 대들보가 된 디아스는 데뷔전을 치른 2020년 10월 1일 이래로 맨시티 선수 중 공식 대회 최다 선발 출전(26경기)을 기록 중이다. 유일한 교체 출전은 첼트넘 타운과의 FA컵 경기였는데, 맨시티가 0-1으로 뒤처지며 망신을 당할 뻔한 순간에 투입되어 3-1 역전승에 기여했다. 디아스의 출전 시간 2298분은 팀 내 최다에 해당한다.
디아스는 이 기간 공식 대회 전체를 기준으로 헤딩 클리어링 34회로 팀 내 1위인 데다가 공중 경합 승리(56회)는 로드리에 이어, 가로채기(32회)는 주앙 칸셀루에 이어 각각 팀 내 2위를 기록 중이다. 이에 더해 패스 2241회를 시도했고 93.4%의 성공률을 기록하며 두 부문 모두에서 팀 내 최다이자 최고를 달성했다. 자신 있게 후방에서부터 공을 전달해 공격 작업을 시작하는 디아스의 능력은 과르디올라 감독의 스타일과 딱 맞는다. 캐리(공을 갖고 5미터 이상 이동) 횟수도 470회로 리그 전체 2위를 기록 중이며, 5~10미터 전진 캐리는 177회로 리그 1위에 당당히 이름을 올리고 있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디아스는 그냥 잘하는 선수가 아니라 동료들도 잘하게 만드는 선수다. 90분 내내 동료와 의사소통을 하고 매번 어떻게 뭘 해야 하는지 지시한다. 디아스를 빼기가 불가능해졌다"고 말한 바 있다.
'디아스 효과'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건 바로 존 스톤스다. 지난 시즌까지만 하더라도 수비진의 혼란 속에서도 많은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던 선수였으나 이번 시즌엔 확고한 주전으로 자리잡고 있다. 스톤스와 디아스가 합을 맞춘 PL 11경기에서 맨시티는 10승 1무, 1실점을 기록했다. 심지어 공식 대회 전체로 범위를 확장하더라도 둘이 동시에 선발 출전한 13경기에서 단 1실점만 허용한 맨시티이다. 그 1실점조차 첼시 원정에서 3-1로 승리할 당시 이미 승부의 추가 기운 상태에서 후반 추가 시간, 칼럼 허드슨-오도이에게 허용한 것이었다.
# 아티스트
하지만 맨시티의 압도적인 경기력은 단순히 디아스를 비싸게 영입해서 얻어낸 것만이 아니다. 지난 가을부터 겨울 사이에 과르디올라 감독은 또다른 문제를 안고 있었다. 이전 세 시즌 동안 PL에서 102골, 95골, 106골을 득점하며 막강 공격을 자랑하던 맨시티가 이번 시즌 초반 골을 넣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스터에 당한 참패가 맨시티의 첫 번째 전환점이 됐다면, 두 번째 전환점은 작년 12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이하 맨유) 원정에서의 지루한 0-0 무승라고 볼 수 있다.
게리 네빌은 당시 '스카이 스포츠'를 통해 "경기장 안에서 치열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감독들도 이기려는 의지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만일 두 맨체스터 팀 중 하나의 감독이 조세 무리뉴였다면 죽일 듯이 비판하고 있을 것이다. 충분히 좋지 못하다고, 지루하다고, 버스를 세웠다고 비판할 경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레스터에 패한 이후 과르디올라 감독은 디아스를 영입한 동시에 로드리와 한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더 배치하곤 했다. 상대 역습 시에는 측면 공격수들이 중앙까지 커버하면서 수비를 도왔다. 레스터전 이후부터 맨체스터 더비까지의 아홉 경기에서 맨시티는 4승 4무 1패를 기록했는데, 이 기간 5실점은 리그 최소 기록이었다 (토트넘도 5실점이었으나 맨시티보다 한 경기를 덜 치른 상태였다).
문제는 해당 기간 맨시티가 기록한 12골은 크리스탈 팰리스와 함께 공동 9위에 해당했고, 심지어 팰리스는 맨시티보다 한 경기 적은 8경기를 치른 상태였다. 득점 빈도는 맨시티가 68분당 1골로 리그 11위에 그치고 있었다. 뉴캐슬(65분당 1골)보다 못한 기록이었다. 창의적인 패스는 케빈 데 브라이너가 주로 맡고 있었다. 이 기간 도움 5개를 기록했는데, 다른 맨시티 선수들은 모두 2개 미만의 도움을 기록하고 있었다.
이러한 경향이 맨체스터 더비 이후에도 이어진 것으로 보였다. 맨시티는 그 다음 경기에서 웨스트 브롬과 1-1로 비겼다. 점유율은 압도했지만, 후반 추가 시간까지도 득점 기회를 많이 만들지는 못했다. 그러나 이 경기에서 일카이 귄도안은 고삐가 풀린 듯한 모습으로 전진을 시작해 골을 터트렸고, 지금까지도 공격적으로 꾸준한 활약을 펼치고 있다.
웨스트 브롬과의 경기부터 지금까지 귄도안은 PL 10경기에 출전해 7골을 득점했다. 이 기간 리그 전체 선수들 중 최다 득점 기록인 것은 물론이고, 귄도안의 선수 경력 전체에서도 한 시즌 리그 최다 득점 기록이 됐다. 공을 터치하는 지점 자체가 이전 시즌과 비교해 확연히 위로 올라갔고, 과르디올라 감독으로부터 "마무리 슈팅에 특별한 감각이 있다"는 칭찬도 들었다.
귄도안은 이번 시즌 PL에서 웨스트 브롬과의 경기 이전까지 볼 터치의 70%를 중원 지역에서 했고, 공격 지역 볼 터치 비율은 20%가 채 되지 않았다. 웨스트 브롬과의 경기부터 지금까지는 볼 터치의 51%가 중원 지역, 41%가 공격 지역으로 형성되고 있다. 그 덕분에 득점만이 아니라 기회 창출(22회)도 늘어났다. 이 기간 맨시티 선수들 중 오직 데 브라이너(23회)만이 귄도안보다 더 많은 기회를 만들었을 뿐이다.
PL 최고의 선수로 꼽히는 데 브라이너의 부상 공백이 당장 느껴지지 않는 데는 귄도안의 공이 크다. 부드럽게 공간 사이로 움직이며 뒤로 물러선 상대 수비를 위협하는 모습은 레알 소시에다드로 떠난 다비드 실바의 공백까지도 느껴지지 않게 한다.
# 원더키드
조직력과 선수들의 위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과르디올라 감독의 스타일에서 선수 개개인의 활약은 독립적으로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과르디올라가 귄도안에게 단순히 박스 근처로 더 올라가서 알아서 해보라는 식의 지시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어디까지나 의도적인 위치 조정으로 변화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더 큰 변화는 측면에서 만들어졌다.
과르디올라는 "맨시티의 경기 방식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전 시즌의 모습으로 돌아가서 측면 공격수들이 더 전진하고 더 넓게 벌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코로나 사태로 인한 체력과 휴식 부족 등 여러 이유로 경기 방식을 조정했던 건데, 선수들의 컨디션이 나아지면서 원래대로 돌아간 것이다. 결국 측면 공격수들의 움직임을 조정한 결과 많은 면에서 경기를 더 안정적으로 지배할 수 있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변화에서 가장 성공적인 모습을 보인 선수는 바로 필 포든이다. 과르디올라는 포든을 여러 공격 포지션에 다양하게 기용해왔고, 맨유 원정에서는 벤치에 대기하도록 했다. 그러나 포든은 최근 맨시티가 리그 9연승을 달리는 내내 왼쪽 측면 공격수로 고정되어서 선발 출전하고 있다.
측면에 반대 발 공격수를 기용하던 시즌 초반 전술을 버린 것이다. 왼발을 쓰는 포든을 왼쪽에 배치하고, 오른발을 쓰는 라힘 스털링을 오른쪽에 배치하면서 상대 수비의 간격을 넓힐 수 있었다. 그 결과 더 넓은 공간이 만들어지고, 그곳으로 귄도안이나 베르나르두 실바 같은 선수들이 침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귄도안과 마찬가지로 레스터전 이후부터 맨체스터 더비까지, 그리고 그 이후의 기록들로 나눠서 포든의 활약상을 살펴보자. 맨시티가 수비를 조정하던 레스터전 이후부터 맨체스터 더비까지의 기간에 포든은 리그 8경기에 출전해(선발 2경기) 세 번의 기회를 창출했다. 90분당 1회밖에 되지 않는 기록이다. 그런데 맨체스터 더비 이후로는 기회 창출이 18회로 늘어났다. 경기당 3.2회에 달한다.
이번 시즌 PL에서 포든이 결장했을 때 맨시티의 경기당 슈팅은 13.6회인데, 포든이 출전했을 때는 18.2회로 늘어난다. 포든의 활약이 가장 빛났던 순간은 브라이튼을 1-0으로 꺾었을 때의 결승골이다. 주전 공격수 세르히오 아구에로가 부상으로 계속 자리를 비운 상황에서 득점 부담을 덜어주고 있는 선수 중 하나가 바로 포든이다.
과르디올라 감독은 포든의 에너지와 드리블 능력, 슈팅 기술이 맨시티의 공격에 중요한 요소라고 판단하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포든을 여전히 8번 포지션(중앙 미드필더)으로 보고 있더라도 말이다. 그 8번 포지션은 이전까지 오른쪽 풀백으로 뛰던 선수가 아주 잘 메워주고 있다.
# 와일드카드
과르디올라 감독은 지난 달 인터뷰 도중 주앙 칸셀루에 대해 "지난 시즌에 입단해서 처음엔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우리가 줄 수 없는 부분을 기대하고 있더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 지금 당황하고 있는 것은 칸셀루가 아닌 상대 팀이다. 칸셀루가 전진해 있는 모습에 놀랄 수밖에 없다.
측면 수비수에게 창의적인 움직임을 요구하는 건 과르디올라 감독에게 새로운 일이 아니다. 바이에른 뮌헨에서도 하피냐, 다비드 알라바, 필립 람 같은 선수들을 안쪽으로 배치해 공격 시에는 중앙 지역에서 수적 우위를 점했고, 수비 시에는 공을 잃었을 때 역습에 대처할 수 있게 했다.
맨시티에서도 파비안 델프, 올렉산드르 진첸코가 이와 비슷하게 움직였다. 과르디올라가 측면 수비수에게 맡기는 최우선 임무는 수비형 미드필더를 돕는 것인데, 칸셀루는 이를 아주 잘 해내고 있다. 이것이 귄도안의 고삐가 풀린 원인 중 하나다. 게다가 칸셀루는 측면 공격에서도 좋은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번 시즌 기존 맨시티 주전 오른쪽 측면 수비수인 카일 워커와 칸셀루의 볼 터치 지점을 보면 과르디올라가 두 선수를 어떻게 다르게 활용하는지 알 수 있다. 워커는 후방 빌드업에 전적으로 관여하지만, 볼 터치의 54%가 오른쪽 측면이다. 이는 전통적인 측면 수비수의 모습에 가깝다.
반면에 칸셀루의 볼 터치 범위는 넓게 퍼져 있다. 왼쪽 측면을 소화한 경기도 있어서 그렇지만, 187회의 볼 터치(12.5%)를 하프라인 위에서부터 상대 박스 앞까지의 중원 지역에서 했다. 이 중원 지역에서 워커의 볼 터치는 97회(7.6%)에 불과하다. 칸셀루는 오른쪽에서만 뛰지 않았음에도 오른쪽 측면 공격 지역 볼 터치(231회)에서 워커(228회)에게 근소하게 앞서며, 왼쪽 측면에서도 공격 지역 볼 터치가 162회에 달한다.
간단히 말해서 칸셀루는 경기장 전역을 누비며 공수 모두에 기여하고 있다. 이번 시즌 PL에서 칸셀루는 패스 시도(1108회), 소유권 회복(88회) 모두 팀 내 3위를 기록 중이다. 돌파 시도(49회)와 기회 창출(31회)은 팀 내 공동 2위, 태클 시도(32회)는 단독 2위, 가로채기(24회)는 단독 1위다. 측면 수비수인 칸셀루를 변화시킨 것이 과르디올라의 가장 큰 전술적인 성취 중 하나라는 평가도 존재한다.
# 멘토
과르디올라가 위기를 다소 편안하게 넘길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그와 적극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후안마 릴로 코치의 존재 덕분이다. 릴로 코치와의 인연은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르셀로나 선수로 뛰던 시절인 1996년 9월, 과르디올라는 릴로가 지휘하던 레알 오비에도에 2-4로 패한 뒤 강한 인상을 받아 경기가 끝나고 릴로를 찾아간다. 그때부터 우정이 생겨났고, 과르디올라는 릴로 밑에서 뛰며 멕시코의 도라도스 데 시날로아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게 됐다. 릴로는 요한 크루이프와 함께 감독으로서 과르디올라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꼽힌다.
과르디올라는 "아직 우승을 이룬 건 아니지만, 순위를 끌어올린 건 릴로 코치의 영향 없이 불가능한 일이었다. 릴로는 정확한 순간에 내게 필요한 조언을 해준다. 내가 못 보는 걸 보고, 경기를 읽는 특별한 감각이 있는 아주 드문 사람이다. 특히 위기에 빠졌을 때 나를 침착하게 해주고 팀의 상황을 제대로 볼 수 있게 해준다. 릴로의 영향은 내게 너무나 중요했다. 내게 필요한 사람"이라고 밝혔다.
첼시를 압도했던 승리, 그리고 리그컵에서 맨유를 꺾은 경기는 과르디올라와 릴로의 비전이 환상적으로 공유된 결과였다. 전문적인 최전방 공격수가 없는 상황에서 귄도안이 전방 공간으로 움직이도록 하고, 칸셀루가 경기장 전역을 누비며, 디아스와 스톤스가 후방을 단단하게 지키는 동시에 공격의 시발점이 되도록 한 것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
번역: 이용훈(스태츠퍼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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