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B-국악

모던 판소리 국악그룹 헤이브(HA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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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12.02. 07:40180 읽음

부산의 젊은 국악팀을 소개하는 시간. B-국악 포스트 5탄! 모던 판소리 헤이브(HAVE)

드디어 5번째 팀이다.  대중들에게 소개할 부산의 젊은 국악팀이 엄청 많은 줄 알고 시작한 작업인데, 실제로 음악적인 활동을 제대로 하는 팀은 별로 없다는 걸 알게 되는 과정이었다. 행사나 공연을 위주로 활동하는 팀이 대다수이고, 음원이나 음반 작업을 하는 팀이 거의 없다. 너무 아쉬운 부분이다. 부산에서 음반 작업을 하기가 쉽지 않은 건 맞지만, 그래도 활동을 하다 보면 당연히 창작곡이 나오기 마련이고, 그 결과물을 담아내는 과정이 필요한데 너무 많은 기대를 했나 보다. 앞으로 많은 부산의 젊은 국악팀들이 앨범을 발매하는 걸 보고 싶다. 그런 꿈과 희망을 가져보며, B-국악 5탄, 모던 판소리 헤이브(HAVE) 편을 시작하겠다. 

국악그룹 'HAVE'는 우리나라의 대표 성악장르인 '판소리'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피아노의 아름다운 선율 위에 얹어 담아낸 피아노와 판소리의 하모니로 우리들의 이야기를 노래하는 '모던 판소리'를 하는 국악 그룹입니다. 현시대에 우리가 가진 공통적인 감정들, 직장 생활의 고달픔, 사랑하는 사람과 공유하는 따뜻한 마음 또는 사랑의 아픔, 힘든 현실 속에서 마음에 품고 있는 희망과 꿈 그리고 우리 삶 속에서 느낄 수 있는 감정과 우리들의 이야기를 담아 피아노의 예쁜 선율에 <남도>의 굵은 성음을 얹어 표현했고, 여러 국악기를 더해 모든 사람이 즐겨들을 수 있는 대중적인 음악으로 국악의 대중화에 힘쓰고 있습니다.
-모던 판소리 헤이브 소개 글 중 발췌-

'모던 판소리' 일단 수식어가 좋다. 딱 보면 어떤 음악을 지향하는지 알 수 있다. 판소리의 현대적 재해석, '범 내려온다'의 메가 히트 이후로 판소리 팀이 많이 생겨난 게 물론 유행이라면 유행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류의 유행은 환영이다. 대중음악계를 한 번 살펴보라. 장르별로 비슷한 음악을 하는 팀이 얼마나 수도 없이 많은지 말이다. 우리는 그런 팀들을 모아서 '씬(SCENE)'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지칭한다. 펑크씬, 모던락씬, 메탈씬 등등 서양음악 팀들은 이미 넘치고 넘쳐 장르별로 온갖 씬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국악 장르는 왜 아직 모두 통틀어 '국악씬'이라고 불리고 있는가. 그만큼 국악팀들의 수가 적고 활동이 저조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한국의 전통음악인 '국악씬', 그중에서도 '판소리 씬'이 생겨나고 있다는 건 매우 환영할 일이다. 말이 길었다. 이제 헤이브(HAVE)의 음악을 한 번 들어보자.

굿거리장단을 사용했다! 다행이다. 처음부터 서양 리듬을 차용했다면 약간 실망했을 것 같다. 편곡을 매우 잘한다면 서양 리듬을 사용해도 좋을 수 있지만, 아무래도 한국 전통 멜로디(가락)는 한국 장단이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그런 측면에서 서양 악기의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고 국악기 비중을 높여 편곡한 점이 눈에 띈다.

팀 구성원을 살펴보니 대표 박세미(판소리) 김시은(작곡) 두 명으로 이루어져 있고, 상황에 따라 객원 연주자들로 무대를 꾸린다고 한다. 둘 다 부산대학교 국악과 14학번 동기로 학부 때부터 지금까지 친구로 잘 지내오며 함께 음악을 하고 있다고 한다. 음악을 들어보니, 김시은 님이 작곡과 편곡을 세련되게 잘 하는 듯하다. 일단 악기들의 밸런스가 좋고 듣기에 거부감이 없다. 소리의 선율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다른 악기들이 전체 곡의 배음을 풍부하게 만들어주고 있다. 키보드를 사용하는 국악팀의 경우 키보드 비중이 너무 높아 국악의 매력을 반감시키는 경우가 많은데, 헤이브는 그렇지 않다. 시작이 좋다. 자작곡임에도 수준이 높다. 다음 곡도 한 번 들어보자.

판소리 수궁가를 모티브로 한 헤이브의 자작곡으로, 취직을 꿈꾸던 야망 있는 토끼가 별주부 덕분에 취직하게 되는데, 취직을 꿈꿔왔었지만 평탄하지 못한 회사 생활에 힘들어하는 토끼의 심정을 담아 현대적으로 표현한 퓨전 판소리이다.  - 소개 글 중 발췌-

이곳은 소리꾼 박세미 님의 역량과 진가가 드러나는 곡이다. 난 당연히 원래의 수궁가 가사를 부르고 거기에 맞춰 배경음악만 다르게 연주할 줄 알았는데, 완전히 새로운 곡 만들었다. 수궁가의 현대적 재해석, 왜 본인들의 음악을 '모던 판소리'라고 하는지 이해가 된다. 이 곡은 드럼을 사용했는데, 그래도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 소리가 중심이 되어 곡을 이끌어 가기에 소리에 집중하느라 다른 악기들을 별로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만큼 판소리의 힘이 잘 느껴지는 곡이다. 3분 내외의 곡으로 편곡한 것도 마음에 든다. 굉장히 대중적이다. 처음 듣는 사람들도 재밌게 듣고 또 듣고 싶어 할 것 같다. 나도 지금 이 곡만 5번째 듣고 있다. 다음 곡도 한 번 들어보자.

다들 잘 아는 춘향가 안의 '사랑가'이기에 큰 기대는 안 하고 들었다. 산뜻한 굿거리장단에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 살짝살짝 들어가는 대금 소리, 소박한 악기 구성 위에 얹어지는 걸쭉한 판소리, 전형적인 퓨전국악 같다. 곡에 임팩트를 주기보다는 밸런스 잡아 대중적이고 듣기에 좋다. 현대풍 사극 드라마의 OST로 사용한다면 좋을 것 같은 음악이다. 나 같은 국악 덕후가 듣기에는 조금 아쉽지만, 일반인들에게는 가장 추천할 만한 트랙인 것 같다. 정말 듣기 참 좋은 모던 판소리 곡이다. 이제 마지막으로 한 곡만 더 들어보자.

판소리 흥보가중 돈타령을 모티브로 하여 헤이브가 작곡한 곡으로, 각자의 환경에 과시하거나 한탄하지 말고 서로서로 도우며 함께 나아가자는 내용을 담은 곡이다.  -소개 글 중 발췌-

개인적으로 이 트랙이 제일 마음에 든다. 작곡가 김시은 님의 스타일을 알겠다. 서정적인 작곡, 편곡에 능한 분인 것 같다. 제목만 보고 '흥보가'의 재해석이길래, 행사를 위한 신나고 펑키 한 스타일의 곡을 예상했는데 내 예상을 보기 좋게 뒤엎어주셨다. 곡의 구성이 좋다. 서정적인 피아노 선율로 시작해서 소리를 중심으로 곡을 이어가다가, 마지막 부분에는 대금과 피리를 이용해 감정의 폭발을 이끌어 낸다. 가사가 잘 들려서 너무 좋다. 판소리의 핵심은 한과 사연을 담은 가사 전달에 있지 않은가. 판소리의 중심을 잃지 않으면서 현대적 감성으로 잘 표현해 내는 것, 그것이 모던 판소리 헤이브(HAVE) 팀의 특징이자 강점인 것 같다. 그리고 전통 판소리 가사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완전히 창작해서 만든다는 점이 너무 예상 밖이라 놀랐다. 이 글의 서두에 언급했듯이 부산에서 활동하는 많은 팀이 행사를 염두에 두고 활동하다 보니, 사람들이 알고 따라 부르기 좋은 곡들을 연주하는 것이 대부분인데 헤이브는 그렇지 않았다. 온연히 자신들의 음악 세계를 드러내고 대중들과 정면으로 승부하려 한다. 이렇게 당차고 실력 있는 부산의 젊은 국악팀을 이제야 알게 되다니. 아쉬움도 있지만, 지금이라도 알게 된 것이 어딘가. 앞으로 더 왕성한 창작 활동과 공연 활동을 기대하면서 글을 마칠까 한다. 모던 판소리 헤이브(HAVE)의 앞날을 응원한다. 얼씨구! 지화자!


모던 판소리 헤이브 @haveibnida
헤이브의 음악이 궁금하다면 @지화자!


* 본 글은 ()부산문화재단의 예술인 파견지원사업 도움을 받아 쇼플렉스와 함께 제작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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