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3학년 때 어느 교수가 단자회사란 곳에서 신입사원 추천의뢰가 들어왔는데 초봉이 교수 월급보다 많다고 했다. 단자회사라니, 처음 듣는 회사였다. 무슨 업무를 하는지도 몰랐다. 막연히 월급이 많은 회사라고만 기억했다. 4학년 2학기가 되자 여기저기서 신입사원을 뽑는 공고가 났다. 그중의 하나가 나의 눈에 들어왔다. 바로 단자회사였다. 결국 돈에 눈이 멀어 기자가 아닌 단자회사 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재직 중에도 틈틈이 신문에 기고했으나 그뿐이었다.
글을 쓸 기회는 오히려 은퇴 후에 왔다. 지역문화재단에서 발행하는 월간지 편집장이 내게 고정 칼럼을 청탁한 것이다. 칼럼을 연재하며 글 쓰는 법을 좀 더 익혀야겠다는 생각이 났다. 지인의 권유로 동네 가까이에 있는 글쓰기 연구모임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한동안 글쓰기 공부를 같이했다. 2012년 보건복지부에서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에세이를 공모한 적이 있다. 마감 날 평소의 생각을 적어 응모했는데 운이 좋게 대상에 뽑혔다. 공모전 입상은 내게 큰 용기를 주었다.
글쓰기 모임을 통해 알았는데 우리 사회에는 의외로 작가가 되기를 원하는 사람이 많았다.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대로, 나이 든 사람은 나이 든 사람대로. 그런데 작가가 되려는 목적이 세대별로 좀 다르다. 젊은 사람은 그걸 직업으로 삼아 돈을 벌기 위함이라면 나이 든 사람은 생을 살며 얻은 자신의 경험을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어 글을 쓴다. 그들에게 돈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이들의 바람처럼 우리 인류의 역사는 이전 세대에서 받은 지혜에다가 자신의 경험을 가미하여 후세대에 전해주는 것이 반복되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글재주가 있는 사람은 젊어서도 자기 생각을 글로 잘 풀어쓰지만 일반인의 경우에는 좀 나이가 들어야 농익은 글을 쓸 수 있다. 그래서인가 최근 글을 쓰는 시니어들이 늘고 있다. 신문보도를 보니 공대에서 섬유공학을 전공하고 30년 이상 패션업계에 종사하던 사람이 나이 예순이 넘어 뇌 과학에 도전한 후 그 연구결과를 책으로 펴냈다. 그는 칠순에 박사학위를 받았는데 연구논문이 세계적인 SCI 저널에 실렸다.
의대를 졸업하고 오랫동안 외과 전문의로 일했던 의사가 은퇴 후 캐나다 밴쿠버 칼리지에 유학하여 그 연구결과를 캐나다 역사 100장면이란 책으로 엮었다. 많은 사람이 의사가 되기를 원하지만, 그에게 의사는 먹고살기 위한 직업이었을 뿐이다. 캐나다에 이민 간 지인에게 이 책을 소개했더니 교포들에게 너무나 귀중한 자료가 되었다며 고마워한다.
세계 최대 아이스크림 기업의 유일한 상속자였던 존 로빈스도 그런 사람 중 하나다. 그는 아이스크림을 비롯한 각종 유제품과 축산물에 대해 감추어졌던 진실을 폭로하여 아버지와 결별한다. 그리고 가족과 함께 외딴 섬으로 이주하여 월 1000달러의 적은 돈으로 생활하며 환경에 대한 자신의 신념을 책으로 엮었다. 책에는 우리 인류의 건강을 우려하는 그의 진심이 잘 나타나 있다.
위의 사례를 보면 글쓰기에 있어서 전공은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자신이 살아온 흔적을 남을 위하여 기록하고 싶다는 욕구만 있다면 충분하다. 시카고 병원에서 간호사로 40년 이상 근무한 시니어가 은퇴 후 찾아온 적이 있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 계획인지 물었다. 그는 아직 뚜렷한 계획은 없지만 여행도 하고 합창도 배우겠다고 한다.
그의 경험이 그냥 사장되는 것이 안타까워 책을 하나 쓰면 어떠하겠냐고 물었다. 그는 갑자기 무슨 책이요? 하며 내게 반문했다. 책이라곤 써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한국의 많은 간호사가 미국 간호사로 취업하기를 원하는데 마땅히 책이 없다고 한다. 당신이라면 그런 책을 쓸 수 있지 않냐?”라고 했더니 그건 자신이 잘할 수 있다며 눈을 반짝거렸다.
글쓰기는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까. 서점에 가면 글쓰기에 대한 책이 무수히 많다. 그러나 유명 소설가 스티븐 킹이 말했듯이 글쓰기에 대한 책은 저자에게 돈을 벌게 할지는 몰라도 독자에게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나도 여러 권 읽었지만 기억에 남는 책은 거의 없다. 글쓰기 책을 읽기보단 직접 글을 쓰는 것이 필요하다. 피아노를 능숙하게 치기 위해선 피아노 연습을 많이 해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처음부터 글쓰기가 어렵다고 생각되는 것은 잘 쓰려는 마음이 앞서기 때문이다. 그런 강박관념이 들면 오히려 글쓰기가 힘들어진다. 먼저 가벼운 마음으로 친구에게 얘기하듯 글을 써본다. 그리고 한참 생각한 후 다시 고쳐본다. 헤밍웨이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마지막 장면을 수십 번 고쳐 썼다. 유명작가도 처음부터 글을 잘 쓴 건 아니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한 편의 멋진 글이 완성된다. 정말이다. 오늘부터 한번 시도해보기를 권한다.
아름다운 인생학교 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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