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배층의 성향에 따른 불교의 성격

고려의 불교

이다지 한국사 : 전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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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불교의 나라 고려, 호족지배기에는 전반적으로 종파에 구애받지 않고 불교가 융성했다. 문벌귀족기에는 귀족을 중심으로 경전을 통한 이론적 깨달음을 중시하는 교종이 유행했고 무신집권기에는 실천과 수행을 강조하는 선종을 후원했다. 지눌과 의천이 통합사상을 주장하며 불교계의 폐단을 잠재우려 했음에도 권문세족기가 되자 부패의 온상이 되었다. 이후 신진사대부가 불교의 타락을 비판하며 성리학을 내세웠다.

고려는 불교의 나라였습니다. 불교도 시기별로 나눠서 볼게요.

호족지배기, 종파에 구애받지 않고 불교가 크게 융성하다

호족지배기에는 전반적으로 종파에 구애받지 않고 불교가 융성합니다. 태조 왕건은 불교를 적극 지원했습니다. 일단 고려를 세우는 데 많은 도움을 준 종교가 불교의 선종이었잖아요.

태조가 남긴 글인 훈요 10조만 봐도 불교와 관련된 행사인 연등회팔관회를 중시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연등회는 지금도 있어요. 부처님 오신 날 아시죠? 그때 도시 곳곳에 등을 띄우는데 연등회의 행사와 유사합니다.

광종 때부터는 과거제를 실시하는 데 승과가 있었어요. 그렇게 뽑힌 승려는 나라의 스승인 국사나 왕의 스승인 왕사가 되어 왕실의 고문 역할을 하였습니다. 지금으로 치면 승려고시가 있어서 대통령 옆에서 자문을 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생각하면 돼요.

어떻게 보면 왕보다 왕의 스승인 승려가 더 높은 지위를 가진 것처럼 보이죠? 형식적으로라도 승려를 우대하기 위한 고려의 제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가 절에 땅을 하사하고 스님들에게는 세금을 면제해주는 특권을 부여해주면서 불교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줬습니다. 불교에 대한 혜택이 어마어마하죠? 오죽하면 문종은 넷째 아들을 출가시켜 스님으로 만들었겠어요. 거의 ‘우리 집안에서도 승려 한 명은 있어야 하지 않겠어?’ 하는 느낌입니다.

문벌귀족기, 귀족 중심으로 이론적 깨달음을 중시하는 교종이 유행하다

문벌귀족기에는 불교 종파 중에서도 뭐가 유행하겠어요? 그렇죠! 귀족들이 선호했던 교종입니다. 경전을 통한 이론적 깨달음을 중시했었죠? 하지만 나라가 교종이니, 선종이니 쪼개져 있으면 안 됩니다. 지도자는 나라를 통일된 의견과 생각을 가지고 끌고 나가야 하잖아요. 그래서 당시 유명한 승려였던 의천은 이런 종파들을 통합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의천이 앞서 말한 왕의 아들이에요. 왕자 출신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선종보다는 교종 중심의 색채를 띠겠죠? 실제로 종파를 통합할 때도 교종을 중심으로 선종을 통합합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게 바로 천태종이에요.

이때 내세운 통합사상이 바로 ‘교관겸수’입니다. 교는 가르칠 ‘교(敎)’예요. 경전과 이론 중심의 교종을 뜻하죠. 관(觀)은 ‘보다’, ‘관통한다’는 뜻으로 갑작스러운 깨달음을 중시하는 선종을 뜻합니다. 굉장히 쉬워요. 어떤 글자가 앞에 나오는지를 보면 교종을 중시했는지, 선종을 중시했는지 구분할 수 있습니다. 교종(이론, 경전 연구)과 선종(실천, 수행)을 모두 강조하는 것이죠.

그러나 이 통합은 물리적인 통합이었습니다. A(교종)와 B(선종)가 결합했는데 새로운 C가 탄생한 게 아니라 A+B로 형식적으로만 어색하게 손을 잡고 있다는 거예요. 그러니 의천이 죽은 뒤 교단은 다시 뿔뿔이 흩어져버리고 통합은 깨집니다.

무신집권기, 실천과 수행을 강조하는 선종을 후원하다

무신이 집권하면서 문신과 결탁했던 교종은 약화돼요. 성향상으로도 무신과 교종은 안 맞아요. 칼잡이들에게 앉아서 경전 읽기를 시키다니요! 자연스럽게 무신들은 실천과 수행을 강조하는 선종을 후원해줍니다. 그러니 통합운동의 구심점도 이젠 교종이 아닌 선종이에요. 이걸 이끈 스님이 바로 지눌입니다.

지눌의 통합사상은 바로 ‘정혜쌍수’와 ‘돈오점수’입니다. 이게 웬 외계어인가 싶으시죠? 포기하지 마세요! 쉽습니다. 마찬가지로 앞글자가 뭘 뜻하는지만 알면 게임 끝이에요.

‘정(定)’은 정하다는 뜻으로 마음을 잡는 걸 뜻해요. 글이 아닌 마음을 중시하는 종파가 뭐죠? 맞아요, 선종입니다. ‘혜(慧)’는 지혜라는 뜻으로 이론적인 공부를 뜻하는 교종을 뜻하죠. ‘쌍수’는 두 가지를 함께 수행한다는 뜻이에요.

즉, 어지러운 마음을 바로잡아 깨달음을 추구하는 것과 지혜를 바탕으로 경전 연구를 하는 것은 함께 해야 한다는 거죠. 선종을 중심으로 교종을 통합하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돈오점수는 뭘까요? ‘돈오(頓悟)’는 갑자기 깨달음을 얻는 거예요. 당연히 선종이죠. ‘점수(漸修)’는 점진적으로 경전 연구를 하면서 수행하는 것으로 교종을 뜻합니다.

지눌의 통합은 교리를 통합하는 화학적 통합이었습니다. A와 B가 만나 통합된 C가 탄생한 거죠. 그게 바로 조계종입니다.

실제 우리나라 불교의 양대 종파가 조계종과 천태종이에요. 통일신라 시기만 해도 나뉘어 있던 종파가 고려 시대에 드디어 합쳐진 거죠.

지눌, 타락한 불교를 바로잡으려 하다

하지만 창창하게 보이는 불교계에도 근심은 있었습니다. 불교가 많은 특혜를 받다 보니 초심을 잃고 타락하기 시작한 거죠. 경제 파트에서 살펴봤죠? 사원에서 술도 빚어내서 팔고 난리도 아니었잖아요. 이걸 바로잡으려고 한 사람도 바로 지눌입니다.

원래 깨끗했던 불교의 모습으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면서 모임을 만듭니다. 이걸 모여서 맺는다고 해서 결사라고 해요. 수선사에서 모여 교리도 공부하고 수행도 했다고 해서 수선사 결사라고 합니다. 수선사는 현재의 송광사예요.

쉽게 생각하면 스터디 모임 같은 거예요. 모여서 불경도 연구하고요, 함께 노동도 합니다. 지눌은 기본적으로 선종계의 인물이잖아요. 교종에서도 이런 불교 정화 모임을 가집니다. 그 중심에 선 스님이 바로 료세고요, 백련사에서 모였어요. 뭐라고 부를지 다 아시겠죠? 백련사 결사라고 합니다. ‘절 이름+결사’를 붙이면 돼요!

순천 송광사 보조국사 지눌 진영

지눌의 제자 혜심, 유불일치설을 주장하다

또 지눌은 아주 훌륭한 제자를 두었습니다. 혜심이라는 제자인데요, 중요한 사상을 내놓습니다. 저는 이런 생각을 가끔 해본 적이 있어요.

‘우리가 부처라고 부르는 존재, 그리고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존재, 알라라고 부르는 그 절대자들이 실은 모두 하나인 것은 아닐까? 단지 부르는 이름이 다른 건 아닐까?’ 하는 생각. 모든 종교의 근본을 파고 들어가 보면 다 똑같은 소리를 하잖아요.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한 사람이 바로 혜심이에요. 그는 유불일치설을 주장합니다. 유교와 불교가 근본적으로는 일치한다는 거죠. 스님이지만 굉장히 포용적인 모습입니다.

고려는 불교 중심의 국가였기 때문에 이런 대스님의 발언은 후에 성리학을 수용할 수 있는 사상적 토대가 되었습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정말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고 해봐요. 그런데 아주 존경하는 목사님이 우리 교회가 추구하는 바와 불교에서 추구하는 것이 똑같다고 하는 거예요. 그럼 불교에 대한 거부감이 사라지겠죠? 수용성이 높아지게 만든 겁니다.

신진사대부, 권문세족기의 부패한 불교를 비판하다

그런데 권문세족기에는 불교계의 폐단이 결사운동에도 불구하고 걷잡을 수 없이 심해집니다. 권문세족들이 지은 죄가 커서인지 절에 열심히 공양을 드리면서 토지도 기증하고 온갖 혜택을 준 거죠. 그러니 사원은 대토지를 소유하고 고리대금과 상업 활동으로 백성들을 등쳐먹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신진사대부들이 이런 썩어빠진 불교계의 폐단을 비판하면서 성리학을 새로운 사상으로 내세우기 시작한 거예요. 오죽하면 신진사대부의 대표적인 인물인 정도전은 불교가 하는 말은 모두 잡소리라며 『불씨잡변』이란 책을 펴냈겠어요.

부처님의 말씀을 기록한 대장경을 간행하다

다음은 부처의 말씀을 기록한 대장경과 관련된 얘기를 해볼게요. 현종때 처음 대장경을 간행했기 때문에 이를 초조대장경이라고 합니다. 당시 고려는 거란의 침략에 맞서 부처님에게 거란을 물리쳐줄 것을 기원하기 위해 대장경을 간행하기 시작했습니다. 초조대장경은 몽골의 침입 때 불타버리고 인쇄본 일부만 남아 있습니다.

대방광불화엄경소권 48
의천이 화엄경을 주해한 주소본 120권 중 한권

또 의천은 속장경을 편찬했는데, 교장도감을 설치하여 고려, 송, 요에서 간행된 대장경의 주석서들을 모아 교장을 편찬했습니다. 이제 불교의 문화유산을 찾아 떠나볼게요.

고려의 절

고려 전기에는 주심포 양식, 후기에는 다포 양식으로 만들어지다

불교의 가장 근본이 되는 공간이 절이죠. 절은 불상을 모시고 승려들이 거주하면서 불도를 닦는 공간입니다. 절은 순 우리나라 말이에요. 기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절을 많이 하는 곳’, ‘절을 하면 모든 것이 절로 된다’는 뜻도 있어요.

절은 아주 중요한 건축유산이기도 하죠. 대부분 목조건축인데요, 전기와 후기의 양식이 다릅니다. 전기는 주로 주심포 양식이고요, 후기는 다포 양식이에요. 무슨 말인지 모르시겠다고요? 이걸 알기 위해선 ‘공포’를 알아야 합니다. 무섭다는 공포 말고요, 지붕과 기둥 사이에 있는 나무 쪽을 의미해요. 지붕이 워낙 무거우니까 이걸 안정적으로 받치기 위한 장치입니다.

고려 전기의 대표적 양식인 주심포는 지붕과 기둥 사이에 하나의 공포만 있는 거예요. 반면 고려 후기의 다포는, 많은 다(多) 자가 들어간 것처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공포를 놓은 겁니다. 주심포에 비해 화려하게 보이기도 하고 Ctrl+c, Ctrl+v처럼 똑같이 공포가 반복되는 게 기계적인 아름다움도 있고요.

세계적인 기법, 배흘림기둥을 적용하다

또 하나 특징이 배흘림기둥입니다. 이는 기둥의 중간 부분을 굵게 하고 아래로 가면서 점점 가늘어지게 만드는 법입니다. 흔히 중간 부분이 뚱뚱해서 지붕의 무게를 더 많이 받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잘못된 정보이고요, 이 기둥은 건축물을 더 안정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한 기법입니다.

직선으로만 되어 있으면 가늘고 불안해 보이니 뚱뚱하게 만든 거예요. 배흘림기둥은 세계적인 기법입니다. 고대 그리스는 물론이고 중국과 일본의 건축에서도 흔히 쓰였거든요.

고려의 전각

전각, 절 안에 불상을 모신 곳

전각은 절 안에 불상을 모신 불전입니다. 전각 이름은 ‘절 이름+불상 이름+전’으로 이뤄집니다. 예를 들어 석가모니를 모시는 전각은 대웅전이라고 해요. 대웅이 석가모니를 뜻합니다. 극락전은 극락을 담당하는 부처가 누구죠? 맞습니다. 아미타불을 주로 모시는 불전이에요. 아미타전이나 혹은 무량수전이라고 합니다.

주심포 양식으로 지어진 전각

주심포 양식으로 지어진 대표적인 건축물이 바로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등이 있습니다.

봉정사 극락전
수덕사 대웅전

특히 부석사 무량수전은 통일신라 때 의상과 선묘의 사랑 이야기를 전할 때 얘기했었죠? 이 전각의 현판은 고려 공민왕이 쓴 글씨예요. 나중에 여행 가서 보면 과거의 공민왕과 만나실 수 있습니다.

부석사 무량수전

다포 양식으로 지어진 전각

다포 양식의 전각으로는 성불사 응진전이 있습니다. 그런데 북한 쪽 황해도에 있어서 가볼 수는 없습니다. 많이 아쉽죠? 다포 양식을 확인해보려면 경복궁 근정전을 통해 보면 됩니다.

고려의 석탑

고려의 다각 다층탑, 부처의 사리와 상응하는 보물을 보관하다
부처의 사리와 그에 상응하는 보물을 보관하는 석탑을 살펴볼게요. 우리 역사상 불교가 가장 번성했던 고려 시대는 왕실은 물론이고 지방에 근거를 둔 호족들도 석탑 건립에 참여했어요. 통일신라의 석탑은 어떤 특징이 있었죠? 통일의 안정성을 보여주는 3층 석탑이 많았죠.

고려 시대 석탑은 다각 다층탑이 많습니다. 대표적인 석탑은 오대산 월정사 팔각 9층 석탑이 유명합니다. 팔각형 석탑은 고려 시대 석탑 유형이니 꼭 기억해두세요.

월정사 팔각 9층 석탑

고려 후기의 경천사 10층 석탑은 원나라의 석탑 양식을 모방하여 만들었는데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고 있습니다.

경천사 10층 석탑

고려의 승탑

선종 승려들의 몸에서 나오는 사리를 보관하다
고려 시대에도 승려들의 사리를 보관하는 승탑이 있었습니다. 승탑은 선종과 교종 중 뭐와 관련이 있다고 했죠? 맞아요, 선종입니다. 실천 수행을 중시하는 선종 승려들의 몸에서 사리가 많이 나오니 승탑이 유행한 거죠. 고달사지 승탑이나 지광국사 현묘탑이 유명합니다.

고달사지 승탑

고려의 불상

불상 이름 읽는 방법

불상의 이름을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실은 원리만 알면 적용하는 건 굉장히 쉽거든요. 공식이 있습니다.

‘불상명 = 언제(어디)+무엇+누구+자세’

예를 들어 금동연가 7년명 여래 입상은, 연가 7년(언제)에 금동(무엇)으로 만든 여래불(누구)의 상인데 입상이니 부처가 서 있는 모습인 거죠.

고려 초기, 평화의 상징인 철불과 호족의 개성을 담은 불상을 만들다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

고려 시대 불상은 초기와 중기로 나눠볼 수 있어요. 초기 불상은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철불, 두 번째는 개성이에요.

철불은 뭐로 만들었을까요? 당연히 철이겠죠? 이건 독특한 것입니다. 보통 불상은 돌을 조각해서 만들었잖아요.

철불은 평화의 상징입니다. 고려 초기엔 전쟁이 끝난 걸 기념하고 싶었어요. 다시는 ‘철’로 만든 무기로 서로를 해치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무기를 거둬 녹인 후 불상을 만든 것입니다. 대표적인 게 경기도 광주의 춘궁리 철불이에요. 춘궁리 철불은 앉은 키만 3미터가 넘습니다.

두 번째 특징인 개성은 호족과 관련이 있습니다. 고려는 이전 시대에 비해 지방 호족의 힘이 막강했잖아요. 그러니 호족의 힘을 보여줄 수 있는 개성 넘치고 거대한 불상을 마을 입구에 세운 거죠.

대표적인 게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입니다. 관촉사(어디)에서 돌로 만든(석조, 무엇) 미륵보살(누구)의 서 있는 모습(입상, 자세)을 나타낸 불상이란 뜻이죠.

보면 알겠지만 머리가 굉장히 커요. 눈도 가로로 쭉 찢어진 모양새가 매우 개성적입니다. 이 불상은 크기가 무려 18미터에 달하는데, 국내최대의 석조 보살상이에요.

고려 중기, 신라의 불상과 유사하게 만들다

고려 중기는 문벌귀족기입니다. 어느 나라를 계승하는 의식이 두드러진다고 했죠? 맞아요. 신라입니다. 그래서 이때 대표적인 불상인 소조 아미타여래 좌상은 신라의 불상과 굉장히 유사합니다. 고려는 정말 지배층만 꽉 잡으면 되는 거 이제 아시겠죠?

철조석가여래좌상

여기서 잠깐! 보살, 귀하고 자비로운 성격을 표현하기 위해 여자로 묘사되다

불상의 주인공이 바로 부처와 보살입니다. 불교에선 깨달은 자 모두를 부처라고 부른다고 했죠? 부처는 고유명사가 아니라 일반명사예요.

보살은 부처가 되기 이전의 단계로 많은 사람들에게 깨달음을 전파해주기 위해 부처가 되는 것을 잠시 멈춘 존재입니다. 부처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부처 못지않은 존재인 거죠.

이 부처와 보살은 불상에서 구분이 돼요! 보살은 여성처럼 묘사돼요. 실제 성별이 여자는 아니지만, 귀하고 자비로운 성격을 표현하기 위한 것입니다.

관세음 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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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이다지는 MBC [마이리틀텔레비전], KBS [역사저널 그날] 등에 출연하며 특유의 입담과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로 화제를 모았다. 공부와 거리가 멀어 보이는 외모와 다르게, 이화여자대학교 사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2014~2015년 EBS 누적 수강생 64만 명의 인기 강사다. 2014년에는 수능 비인기 과목인 세계사로 EBS 사회탐구 영역 대상을 수상했다. 세계사와 한국사 강의를 전담했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교과서까지 집필한 역사 전문가. 키워드와 흐름, 스토리로 일구어내는 수업은 역사를 싫어했던 학생들도 ‘역덕(역사 덕후)’으로 입문하게 만든다. 행정안전부에서 주관하는 공직박람회에서 한국사 특강을 2년 연속 전담했고, 탈북 청소년들을 위한 특강 및 연합인포맥스의 [경제콘서트 WHY]에 출연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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