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n사설] 주한미군 철수론 허투루 듣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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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을 둘러싸고 한껏 고조되던 미.북 긴장이 한풀 꺾이면서 미국 조야에서 주한미군 철수론이 불거지고 있다. 스티브 배넌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16일(현지시간) "중국이 북한 핵 개발을 동결시키는 대가로 미국은 한반도에서 주한미군을 철수하는 내용의 협상을 고려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북) 군사적 해법은 없다"는 전제 위에서 "그런 딜은 요원한 것으로 보인다"고 스스로 그 가능성은 낮게 평가했지만, 미 고위 관계자가 주한미군 철수를 공개 언급한 것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미군 철수론이 북핵 억제를 위한 미.중 간 거래 카드로 거론되는 것 자체가 우려할 만한 일이다. 한반도 안보 현안에서 우리가 소외되는 '코리아 패싱' 현상의 가시화라는 점에서다. 그래서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기자회견에서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핵탄두를 탑재'하는 상황을 레드라인으로 규정한 것은 여러모로 사려 깊지 못했다고 본다. 북이 이미 보유 중인 핵이나 단거리 미사일은 용인할 수 있다는, 그릇된 신호를 줬다는 차원에서다.

워싱턴포스트는 16일 "(미.북) 평화협정 체결이 북핵 해결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애드벌룬을 띄웠다. 그러나 북핵 동결을 전제로 미.북 간 평화협상이 펼쳐진다면 달갑지 않는 사태 전개일 게다. 우리의 어깨 너머로 주한미군 철수가 거론된다면 그렇다. 1973년 미국과 북베트남 공산정권이 체결한 파리 평화협정이 진정한 평화를 보장하지 못한 데서 역사적 교훈을 찾아야 한다. 협정에 따라 남베트남(월남)에서 미군이 완전 철군한 이후 1975년 북베트남군이 사이공을 함락하면서 월남은 결국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졌지 않나. 물론 지금 경제력 등 총체적 국력에서 남한이 북한을 압도하는 터에 베트남식 비극의 재현을 걱정하는 건 기우일 수 있다. '미.북 평화협정→주한미군 철수→연방제하에서 북 주도 통일'이 북한 3대 세습정권의 숙원이긴 하지만, 한낱 미몽이란 뜻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북핵 폐기가 아닌 동결 상태에서 주한미군이 철수하면 우리에게는 악몽일 수밖에 없다. 혹여 세계 최강인 미국마저 핵무장한 북과 맞서는 걸 꺼려 평화협정 문서만 남기고 발을 빼는 사태로 비화한다면 말이다. 통일은커녕 우리가 북한의 '핵 인질'로 잡혀 분단이 고착화되는 시나리오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한반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협상이 한국을 우회한 채 미.북 간 거래로만 진행돼서는 결코 안 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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