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대통령 측근 정기현 작품
정, 문 지지 더불어포럼 대표 출신
“장기집권 노림수” vs “사실 아니야”
심사를 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이 100점 만점을 준 게 컸다. 임명 당시 문 대통령뿐 아니라 여권의 유력 차기 대권 주자로 꼽히는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친분이 작용했다는 풍문이 돌았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NMC 원장이 대단한 요직이 아닌 데다 인사청문회도 필요 없는 자리이다 보니 그냥 그렇게 잊혔다.
2018년 복지부 업무보고에서 정 원장의 “캠코더 낙하산”을 문제 삼았던 박인숙 전 의원(미래통합당)의 표현대로 “지금 돌이켜보니 대통령 측근에게 그냥 아무거나 한자리 준 게 아니라 이 정부는 처음부터 다 계획이 있었다”는 게 이제야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지금의 ‘의사의 난(亂)’을 촉발한 공공의대 정책과 정 원장의 NMC 원장 임명, 전혀 무관한 듯 보이는 이 두 점을 연결해야 이 정부의 공공의대 정책의 한 축을 이해할 수 있다. 그 점을 연결해 봤다.
‘의료사회주의자’로 일컬어지는 이른바 ‘김용익 라인’(서울의대 의료관리학교실 출신)이 문재인 정부의 의료정책 전반을 좌지우지한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누가 어느 자리에서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는 의료계도 정확히 모른다. 코로나19 방역을 둘러싸고 정부와 대한의사협회가 대립각을 세우는 과정에서 의료관리학 교실을 만든 김용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의 제자인 이진석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서울대 의료관리학 부교수)이 수면 위로 떠올랐을 뿐이다.
하지만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가 지난 1일 “공공의대 설립 정책을 철회하지 못하는 이유가 이권 때문이냐”고 문제 제기한 것처럼 이번 사태는 단순히 신념과 정치 구도로만 보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많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공공의대와 관련, 주목해야 할 사람이 정기현 국립중앙의료원(NMC) 원장이다. 2012년 대선은 물론 2017년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지지모임인 더불어포럼 공동대표를 맡았던 문 대통령 측근이자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신임 대표가 2014년 전남지사에 당선됐을 때 인수위에 이름을 올렸던 인물이다.
정 원장은 전북의대 출신으로 원장 취임 직전까지 순천에서만 소아과 진료를 봤지만, 서울대 의료관리학 교실에서 석사를 마쳐 김용익 사단으로 꼽힌다. ‘의사의 난’을 촉발한 지난 7월 당정 협동 ‘공공의대 설립 추진방안’은 지난 2017~18년 정 원장이 순천 현대여성아동병원장 시절 위원장을 맡았던 민관 합동 ‘공공보건의료 발전위원회’가 내놓은 ‘공공보건의료 발전 종합대책’과 거의 똑같다. 예컨대 복지부 산하에 국립공공의료대학원(공공의대)을 설립하고, 학생은 시·도별로 미래 공공의료 인재에 적합한 별도의 평가체계로 지역 전문가를 포함한 선발위원회를 구성해 선발하는데, 국립중앙의료원(NMC)을 교육(수련)병원으로 구축한다는 내용이다. 필수 공공보건의료인력은 공중보건장학제도를 통해 시·도지사 추천으로 선발한다는 것도 최근의 당정협의안과 유사하다.
정 원장의 임기는 2021년 1월이지만 의료계에선 벌써 연임을 기정사실로 하고 있다. 공공의대와 NMC수련병원, 그러니까 사람과 돈을 움직이는 자리를 정 원장이 다 관여한다는 얘기다. 정부가 추산하는 공공의대 건축비는 271억원, 연간 운영비만도 100억원이다. 목포든 순천이든 공공의대 유치를 기정사실로 하고 있는 전남도는 “의대 설립에 1000억원, 병원 설립에 30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면서 의대는 전액 국비, 병원은 30% 국비와 70%의 지방비로 마련한다는 안까지 내놨다. 정 원장은 이런 소문을 묻자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하면서 “2018년 공공의대 정책을 내놓을 당시 그림만 그리고 실행은 안 될 거라고 생각했다”고 했다. 정부도 큰 의지가 없었다는 얘기다.
이는 사실이 아니다. 2018년엔 야당 반대로 국회 복지위 문턱을 넘지 못했다. 박인숙 의원은 아예 의대 설립 이전에 엄격한 평가와 인증을 의무화하는 ‘공공의대 설립 저지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의사들이 파업까지 하며 저지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지난 4월 여당의 총선 압승 후 당정청은 의료계와 협의 없이 공공의대를 비롯해 의대 정원 증원과 첩약 문제, 원격의료까지 더해 의료계를 강하게 압박하고 나섰다.
전공의 1만여 명이 사직서를 내고 지난달 21일 파업에 돌입하자 복지부는 의사 집단 휴진 수사는 각 지방경찰청이 직접 지휘한다고 압박하면서 업무개시 명령을 내리고, 이에 불응한 전공의 10명을 고발하기까지 했다. 의대생 90%가 국시 응시를 취소했지만 시험 전날까지 시험 강행을 외쳤다. 교수들이 채점을 거부하자 군의관까지 동원해 채점하려다 결국 슬그머니 의료계에 양보하는 척 일주일을 미뤘다.
해결의 열쇠를 쥔 문 대통령은 “코로나 상황이 급박하기 때문에 정부의 입장에서 선택지가 많지 않다”며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잊지 말라”고 의료계에 경고의 메시지를 보낸 데 이어 2일엔 “코로나 헌신은 (의사가 아닌) 간호사”라며 노골적으로 간호사와 의사 편 가르기에 나섰다. 이번 파업 사태는 이런 배경에서 진행 중이다.
안혜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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