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집 600채 갖고 사기 칠 수 있는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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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7.08. 오전 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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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노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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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금과 매매가의 차이가 작은 점을 이용해 빌라 수백채를 사들인 다주택자가 보증금을 갖고 잠적하는 대형사고가 터졌다. 

세입자들은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글을 올리고 집단소송을 진행하지만 현실적으로 전세금을 돌려받을 방법은 없어 보인다. 최소 수백명이 전재산이나 다름없을 전세금을 떼인 상황인데도 여전히 서울 변두리 동네에는 ‘500만원으로 빌라 한채를 살 수 있습니다’라며 홍보하는 현수막이 나부낀다.

정부가 다주택자 보유세를 강화하고 추가 대출을 완전히 틀어막으면서 앞으로 이런 피해는 더욱 확산될 것으로 우려된다. 피해자 대부분은 전셋값이 낮은 집을 찾아든 신혼부부나 사회초년생이다.

이런 말도 안되는 사기가 가능했던 건 명백한 제도의 허점이다. 전세 세입자가 사는 집은 집주인이 주택담보대출을 받을 수 없다. 만약 주택담보대출이 있는 집일 경우 세입자가 입주하는 동시에 근저당권 말소가 진행되는 게 일반적이다. 

은행의 선순위채권을 막기 위해서다.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받은 전세금을 대출상환하겠다는 특약을 설정하지 않을 경우 정상적으로 공인중개사에게 중개를 맡기기가 힘들다. 이런 사람에게 정상적인 대출이 어떻게 가능했을지도 의문이다.

하지만 피해자들에 따르면 갭투자자 이모씨는 전세금을 받아 새로 집을 사고 A세입자 전세금으로 B세입자 전세금을 상환하는 돌려막기를 해 600채 이상을 운영했다. 심지어 주택 임대사업자로 버젓이 등록하고도 잠적해버렸다.

이씨가 보증금을 갖고 잠적한 건 최근의 부동산상황이 나빠진 데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전셋값이 떨어지면서 세입자들에게 전세금을 돌려줄 능력이 없어진 이씨의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종합부동산세나 재산세를 감당할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것이라는 게 부동산 전문가들의 얘기다.

묵시적 갱신을 이용해 계속 거주하거나 계약기간이 종료된 후 경매를 진행해 전세금을 회수하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전세자금대출이 있는 경우 대출연장이 필요하기 때문에 은행의 동의를 얻기가 어렵다. 경매는 현실적인 방법이지만 빌라의 경우 감정가가 낮게 나와 일정 부분 손실이 예상된다.

전셋집을 전전해본 사람이면 이해할 것이다. 전세금을 단 하루, 아니 이사 당일 약속시간보다 한두시간만 늦게 돌려받아도 이해당사자 간 거래가 올스톱된다. 사는 내내 불안에 떠는 것이 전세 세입자의 설움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김상훈 자유한국당 의원이 지난해 국토교통부 자료를 분석한 결과 주택 임대사업자 등록 기준 임대주택을 500채 이상 가진 개인은 3명이다. 임대주택수가 많은 상위 10명의 보유주택을 합하면 4599채다. 1인당 평균 459채를 가졌다. 기약 없는 전세금을 기다려야 하는 세입자가 앞으로 수천명이 나올지도 모른다. 국가재난 수준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00호(2019년 7월9~1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김노향 기자 merr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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