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가 아동학대 신고하자, 경찰 “고발장 작성해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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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선 작동않는 ‘학대방지 시스템'
지난달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지적장애를 가진 A(14)군이 부모와 병원을 찾았다. 담당 의사인 B씨는 A군이 신장 이식이 필요할 정도로 병세가 심각한데, 부모가 병원에 제때 데리고 오지 않아 이상하게 생각하던 차였다. 의사는 A군을 바로 입원시켰다. 그런데 같은 병실의 환자에게서 “A군 부모가 아들에게 심하게 욕하는 걸 봤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B씨는 아동 학대를 의심하고 112에 신고했다. 의사는 현행법상 아동 학대 ‘신고 의무자'다. 하지만 의사의 신고를 받은 경찰은 “우리가 출동할 사안이 아니다. 아동 주거지 경찰서에 전화하라”고 답했다고 한다. B씨는 결국 A군의 집 주소를 찾아, 관할 경찰서에 다시 전화했다. 이번엔 경찰이 “병원에서 고발장 작성하세요”라고 했다고 한다. B씨는 “경찰이 의사에게 자꾸 책임을 떠넘기는 것 같아 의료 현장에선 신고 자체를 꺼리게 된다”고 했다.

조선DB

한국 사회는 의무 신고제, ‘위기 아동 가구' 자동 추출 시스템 등 아동 학대 감시망을 갖추고 있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게 현장의 얘기다. 본지가 인터뷰한 의사, 경찰, 지자체 공무원, 아동 보호 기관 상담사 등 아동 학대 감시자 20여 명은 ‘제2·제3의 정인이 사건'이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자신을 입직 9년 차 경찰관이라고 밝힌 C씨는 지난 3일 익명 게시판 앱 ‘블라인드’에 “학대 아동을 부모와 분리시켰다가, 갖은 소송을 당하고 결국 정직 3개월 징계를 받았다”는 글을 남겼다. 그는 “몸에 남은 멍, 6차례의 면담을 토대로 아이가 학대당했다고 판단하고 부모와 분리했다”며 “(부모에게서 고소당하자) 나를 감싸주는 윗사람은 한 명도 없었고, 얼마 안 있다 직위 해제를 당했다”고 했다. 그는 2년 가까이 쉬면서 재판을 받은 끝에 선고 유예 판결을 받았다고 했다. 이어 “2년간 재판 비용과 생활비를 감당하느라 모은 돈을 다 쓰고 1억 넘는 빚도 생겼다”며 “(아이들아) 미안하다. 아저씨는 더 이상 (아동 학대 수사를 담당할) 용기가 안 난다”고 했다.

작년 6월쯤 한 아동 보호 전문 기관은 장애 학교 교사에게서 아동 학대 의심 신고를 받았다. D(당시 9세)군의 몸에서 멍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상담 결과 D군은 부모로부터 학대를 당하고 있었다. 하지만 기관은 D군을 부모에게서 분리할 수 없었다. 전국 장애인 시설 20여 곳에 연락했지만 “자리가 없다” “코로나로 곤란하다”며 받아주는 곳이 없었기 때문이다. D군은 아직도 부모와 지내고 있다. 기관 관계자는 “이러다 큰일이 벌어지면 고스란히 우리 책임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지난달 23일, 서울의 한 주민센터 마을복지팀 주무관은 아동 조사를 위해 가정을 방문했지만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는 “강제 조사권이 없어 아이 얼굴도 제대로 못 본 채 현관문 잡고 서서 간신히 3분여 대화한 게 끝이었다”고 했다. 다른 주민센터 주무관도 “코로나로 지난달부터 영상통화도 가능하다는 공문이 내려왔는데, 고작 30초 하는 경우가 태반”이라고 했다.

[조유진 기자 jinjo2299@chosun.com] [장근욱 기자 muscle@chosun.com] [신지인 기자 amig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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