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부동산 말고 꿀릴 게 없다”
부동산 정책 잘못했다는 참회록
문 대통령, 소득 줄고 성장률 추락
부동산은 치솟는데 지나친 자신감
1인당 GNI는 2018년 3만3434달러에서 2019년에 3만2047달러로 쪼그라든 데 이어 올해는 3만 달러 밑으로 주저앉을 분위기다. 국민소득을 좌우하는 성장률·환율·물가상승률 중 성장률과 환율이 맥을 못 추기 때문이다. 실질경제성장률은 2017년 3.2%→2018년 2.7%→2019년 2%로 3년 연속 곤두박질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2.1%로 전망했다. 성장판이 닫혀 버린 것이다. 여기에 환율까지 달러당 1220원대로 내려앉으면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붕괴된다. 소득주도 성장이라는 얼치기 생체실험으로 소득도 없어지고 성장도 사라져 버린 것이다.
문재인 정부의 처방은 딱 하나다. 현금 살포다. 이미 3차 추경에 이어 4차 추경까지 불사하며 재정 확대에 매달리고 있다. 하지만 이는 모르핀이나 스테로이드를 놓는 응급처방이나 다름없다. 근본적인 치유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중독되고 더 강한 모르핀과 더 많은 스테로이드를 처방해야 한다. 문제는 부작용이다. 사람들이 갈수록 무감각해지고 금융시장의 반응도 시들해지고 있다. 무차별 현금 살포는 마약이나 매한가지다.
노무현 청와대는 2004년 이렇게 경고했다. “경제 지표의 자의적 인용과 해석은 경제에 대한 잘못된 처방으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자기편에 유리한 지표만 인용하면서 정치적으로 달콤한 해석을 달고 있다. 청와대는 아예 “대통령께서 좋은 지표를 적극 발굴해 홍보하라고 지시했다”고 전했다. 경제 홍보가 넘쳐나면서 “경제 지표를 정치적으로 우려먹는다”는 비판까지 나온다. 다음의 3가지 통계만 짚어봐도 문 대통령은 불편한 진실은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좋은 빚만 보이고 나쁜 빚에는 눈 감고 …
문 대통령이 “국가 채무비율을 40%로 유지하는 근거가 뭔가”라고 몰아붙인 이후 정부 부채의 천정이 뚫려 버렸다. 청와대 전 대변인은 “곳간에 있는 작물들을 쌓아두기만 하면 썩어버린다”고 우겼다. ‘적극 재정’은 현 정부의 재정 철학이 돼 버렸다. 참모들은 맞춤형 논리 개발에 열심이다. 조세재정연구원은 “실효이자비용(국채 금리-명목 성장률)이 하락하면 재정 여력이 증가하는데 금리와 물가상승률이 낮아진 만큼 중단기 재정 여력은 충분하다”며 “따라서 국가채무비율은 걱정할 수준이 아니다”고 주장한다. 문 대통령이 요즘 신줏단지처럼 모시는 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평균 국가부채비율 110%다. 우리는 3차 추경을 포함해도 43.5%다. 재정 건전성을 잊고 마음껏 돈을 더 써도 된다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가 국가 부채비율이 건전하다고 재정을 퍼붓는다면 민간부채 통계에서는 섬뜩한 미래를 읽어내야 한다. 어떻게 가계대출을 줄여 경제위기의 뇌관을 미리 제거할지 고민해야한다. 하지만 그럴 기미는 전혀 없다. 현 정부에 유리한 빚 통계만 이야기하고 골치 아픈 빚 통계에는 눈을 감고 있다.
임금 올려야 소득주도 성장?
‘경제 성장에 비해 임금 상승이 더디다’ ‘기업의 이익을 임금으로 제대로 배분하지 않는다’는 게 소득주도성장의 이론적 토대였다. 좌파 경제학자들은 생산성 증가율보다 실질임금 상승률이 낮다면서 ‘임금 없는 성장’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집계하는 노동소득분배율은 지난해 63.8%로, 2000년 58.1%에서 추세적으로 개선되는 흐름을 나타냈다. 특히 지난해 노동소득분배율이 유난히 오른 것은 아이러니다. 임금이 안정적인 수준을 유지한데다 최저임금 지원금 등 사회보장부담금도 집중 살포된 반면 기업들의 실적은 크게 악화했기 때문이다.
OECD 최고의 아파트 공화국
문재인 정부는 취임 초기부터 “다주택자에게 고통을 안기겠다”고 했다. 하지만 다주택자는 웃었고 무주택자만 고통을 떠 안았다. “뉴욕 맨해튼보다 더 비싼 서울 강남 아파트”는 빈말이 아니다. 지난해 서울 서초구 반포의 한강 조망이 가능한 80㎡ 아파트가 24억5000만원에 거래됐다. 평당 1억208만원꼴이다. 뉴욕 맨해튼에서 허드슨 강이 내려다보이는 수리하이라인 아파트의 평당 가격 1억757만원에 버금갔다. 참고로 2018년의 1인당 소득은 미국이 6만2152달러, 한국은 3만2774달러다.
올해는 강남과 맨해튼의 판도가 아예 뒤집힐 조짐이다. 최근 뉴욕타임스(NYT)는 맨해튼의 부동산이 코로나 사태로 역대급 하락세를 보였다고 보도했다. 올 2분기에 거래된 맨해튼 아파트 중위가격은 지난해 2분기보다 17.7% 떨어진 1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12억 원이었다. 이는 올해 거래된 서울의 한강 이남 11개 구 아파트값 중위가격(11억 6345만 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강남 3구(강남·서초·송파) 아파트의 중위 가격은 무려 16억3000만원으로 맨해튼을 압도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부동산 말고 꿀릴 게 없다”고 했다. 뒤집어 말하면 부동산은 잘못했다는 참회록이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역대 최저 평균 성장률, 사상 최고의 부동산 상승률을 앞두고도 전혀 꿀릴 게 없다는 눈치다. 문 대통령의 자신감은 대단하다. “부동산 문제는 자신 있다”며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에서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한국 경제에 대해선 “총체적으로 성공으로 가고 있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발언 수위가 높아질수록 자꾸 공허해지는 느낌이다. 문 대통령이 절반 이상의 불편한 진실은 이야기하지 않고 있다.
이철호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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