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세계대전

World War ll

21세기 정치학대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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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1939년 9월 1일의 독일군의 폴란드 침공에서 1945년 9월 2일 일본의 항복문서 조인까지 유럽, 대서양, 동아시아, 태평양지역을 전장으로 연합국과 추축국(樞軸國)이 전면적, 세계적으로 전개한 전쟁을 가리킨다.

이 전쟁은 기본적으로 미영소중 등을 중심으로 한 연합국과 일독이의 추축국간의 전투였지만 연합국의 내부에는 미영 등의 자본주의 대국과 소련과 같은 사회주의국의 대립 외에 민족독립운동이나 레지스탕스 운동 등도 독자의 목적으로 전쟁에 협력하였다. 이러한 다양한 주체의 전쟁목적을 통합한 것으로서 미영 정상은 1941년 8월에 영토 불확대나 민족자결, 시민적 자유의 옹호, 군축 등을 명기한 ‘대서양 헌장’을 발표하였다. 또한 이 헌장은 미일 개전 후에는 소련도 포함하여 연합국 전체의 공동선언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에 전쟁은 ‘반파시즘ㆍ민주주의 옹호’의 성격이 농후하였다.

전쟁의 전개과정은 우선 유럽에서는 1938년 9월 뮌헨 회담에서 영프 총리가 독일에 의한 체코 슬로바키아의 일부 할양의 요구를 용인하는 형태로 유럽의 평화를 유지하고자 하였지만, 히틀러(Adolf Hitler)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다음 해에는 폴란드 침공을 강행한 결과 유럽 대전이 발발하였다. 그 때 소련은 영프가 ‘유화정책’에 의해 독일군의 공격이 소련으로 향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 1939년 8월에 독소 불가침조약을 돌연 체결한 결과 공산당 등의 반파시즘 운동에 큰 타격을 미쳤다. 또한 유럽대전 발발 후에 소련은 폴란드 동부를 점령하여 제1차 세계대전 말기에 상실한 영토의 회복을 도모하였다.

한편, 폴란드 서부를 점령한 독일군에 대해 영프는 본격적인 공격을 회피하였기 때문에 한동안 ‘기묘한 전쟁’ 상태가 계속되었다. 그러나 1940년 4월이 되자 독일군은 북유럽이나 서유럽 국가로의 침공을 시작하여 6월에는 프랑스가 항복, 서유럽 대륙은 추축국 측의 지배하에 들어가 영국만이 고립적인 저항을 계속하였다. 이러한 독일의 융성에 자극을 받은 일본은 프랑스령 인도네시아에 침공함과 동시에 9월에는 미국을 가상 적국으로 하는 일독이 3국 동맹조약의 체결을 단행 하였기 때문에 유럽 전선과 아시아 전선의 결합 가능성이 나타났다. 또한 영국에 대한 상륙작전 에 실패한 독일은 1941년 6월에 계획을 바꾸어 대소전을 시작하였지만 일본은 남진에 집중하기 위해 그 직전인 4월에 일소 중립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추축국 측의 전쟁 수행에는 통일성이 없었다. 일본의 남진(南進)은 미국과의 대립을 심화하여 1941년 12월에는 미일전쟁이 시작되어 전쟁은 말 그대로 ‘세계전쟁’으로 확대되어 미국이 무기대여 등으로 연합국 측에 물자를 대량으로 지원하였기 때문에 연합국 측의 우세가 두드러졌다 특히 1943년 1월 스탈린그라드의 전투에서 소련군의 승리로 독일군은 철수하고, 동년 9월에는 이탈리아가 항복하였다. 또한 1944년 6월에 미영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하자 독일군은 동서에서 협공 당하여 패색이 농후해진 결과 1945년 4월말 히틀러가 자살하여 5월 8일 독일은 무조건 항복하였다. 일본도 8월 6일에 히로시마, 8월 9일 나가사키에서 미국군의 원자폭탄 공격을 받아 1945년 8월 15일에 무조건 항복하였다.

이 제2차 세계대전은 양방을 합하여 약 1억 500만 명이나 동원되어 5,000만 명이 넘는 사람이 희생되었으며, 그중 70% 정도는 민간인이었으며 홀로코스트와 전략폭격 등에 의한 것이었다. 특히 추축국(樞軸國)측의 전쟁범죄를 재판하는 국제군사재판이 뉘른베르크와 도쿄에서 전쟁후 개정되었다. 한편, 연합국은 카이로(1943.11), 테헤란(1943.11~12), 브레턴우즈(1944.7), 얄타(1945.2), 포츠담(1945.7~8) 등에서 전후의 국제질서체계형성을 주도할 준비를 정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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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의어
2차세계대전
참조어
군비축소 , 국제연합 , 제1차 세계대전 , 나치즘 , 히틀러(Adolf Hitler) , 베르사유조약 , 홀로코스트 , 민족자결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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