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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 척’을 포기해 더 이쁜 10살 나윤이

[한겨레] [이주의 장면] 드라마 ‘듀얼’의 삭발한 이나윤

백혈병 앓는 역 맡아 실제 삭발

성인배우도 쉽지 않은 선택

‘외모 망가져보일까’ 몸사리는 분위기 속

신선하고 의미있는 울림



드라마 <듀얼>. 화면 갈무리


“근데 좀 덥다.” 아빠와 밥을 먹던 아이가 모자를 벗는다. 아이는 만성 골수성 백혈병이다. 항암치료를 하느라 머리카락이 다 빠졌다. 아빠는 그런 아이를 복잡한 심정으로 바라본다. 밝게 웃는 아이가, 아빠는 아프다.

(드라마 <듀얼>(오시엔) 1회의 한 장면)

그런 아이가, 시청자들은 놀랍다. 이 장면을 시작으로 <듀얼>은 매회 아이 장수연의 등장이 화제를 모은다. 극중 장수연을 연기하는 아역배우 이나윤은 실제로 삭발을 했다. 드라마에서 아이가 비슷하게 아픈 설정은 많았지만, 대부분은 모자만 쓰고 나왔다. 하지만 이나윤은 머리카락을 잘랐다. 그냥 모자만 쓰고 있어도 누가 뭐라지 않을 장면이었다. 장수연은 초반에 잠깐 나온 뒤, 범인한테 납치된다. 삭발한 머리가 자주 노출되지도 않는다. 이나윤의 소속사 에스엠씨앤씨 쪽은 “나윤이가 아빠를 생각하는 딸 역이 마음에 들어서, 삭발을 하는 걸 알면서도 스스로 출연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극중 장수연이 납치되면서 경찰인 아빠 장득천이 범인을 쫓고, 검찰이 움직인다. 사건의 중심에 선 중요한 역할인데다, 장르드라마의 사실성을 강조하려고 제작진은 처음부터 삭발을 전제로 오디션을 봤다고 한다. 이승훈 기획피디는 “대본을 쓸 때부터 실제 삭발을 염두에 뒀다. 오디션을 볼 때 삭발 공지를 했고, 그게 가능한 배우들만 만났다”고 했다. 10여명 정도가 후보였다.

드라마 <듀얼>. 화면 갈무리 아역배우들의 연기 열정은 대단하다. 그렇더라도 삭발은, 한창 예뻐 보이고 싶을 10살 여자아이가 하기 쉬운 결정은 아니다. 이 드라마가 끝날 때까지 이나윤은 머리를 기를 수 없고, 그래서 다른 드라마에 출연하기도 어렵다. 초등학생인 이나윤은 현재 가발을 쓰고 학교에 간다. 다행히 친구들이 드라마 때문에 삭발한 사실을 알고 가발을 모른 척해주고 있단다. 이승훈 피디는 “나윤이가 언제 삭발을 해보겠느냐며 즐거워했다”며 “오히려 머리카락을 자르는 날 나윤이 어머니가 가슴이 뭉클해서 눈물을 흘렸다”고 전했다.

불과 10살인 이나윤의 삭발 투혼이 화제를 모으는 것은 연예계에 시사하는 바가 크기 때문이다. 전문직업인인 성인 배우들조차 화면에 예쁘게 나오려고 리얼리티를 포기하는 상황이 수도 없이 벌어지는 탓이다. 종영한 한 아침드라마에서는 장례식장에 가는 장면에서 여배우가 가슴골이 깊게 파인 짧은 미니원피스를 입고 등장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몸싸움이 심하거나, 바다에 빠지는 등 ‘망가지는 장면’은 빼달라고 요청하기도 한다.

특히 리얼리티가 중요한 장르드라마에서조차 외모를 포기하지 않으려고 해 제작진과 갈등을 빚는 배우들도 있다. 오래전 방영한 드라마에서 한 여배우는 잠도 못 자고 너무 울어 얼굴이 지저분해진 상황인데도 아이라인을 지우지 않겠다고 고집해 제작진이 혀를 내둘렀다. 이 배우는 액션 장면이 힘들다고 대본 수정을 요구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나이 들면 주름지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팽팽해 보이려고 엄마 역, 할머니 역의 배우들이 얼굴에 필러를 심하게 주입한 탓에 근육이 움직이지 않아 시청자의 몰입을 방해하는 일도 드라마에서 심심찮게 벌어진다.

피디들은 왜 묵과할까? 한류열풍 이후 배우 중심주의가 된 드라마판에서 제작진은 ‘감히’ 배우들한테 무엇을 강제하지 못한다. 간부 출신의 한 드라마 피디는 “그랬다가는 주연배우와 갈등만 빚어진다. 하기 싫은 걸 강요하면 아프다는 핑계로 촬영장에 안 나오기도 한다”고 했다. 리얼리티를 얘기할 때 늘 거론되는 ‘자는 장면에서 화장’은 시간 부족으로 어쩔 수 없다고도 한다. 또 다른 드라마 피디는 “드라마 촬영은 늘 생방송처럼 진행되는데 자는 장면에서 화장을 지웠다가 다시 화장을 하게 되면 시간이 없어 펑크날 수도 있다”고 우스갯소리를 하면서도 “영화 <터널>에서 ‘배두나의 민낯’은 내용의 사실감을 높여 관객이 영화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며 “배우는 맡은 역에 맞는 연기를 선보일 때 가장 예뻐 보인다”고 했다. 이나윤의 삭발 투혼은 그래서 의미있고, 삭발한 이나윤은 그래서 예쁘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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