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아이도 어른이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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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인데 요즘 제 아이가 낯설어요.”

고학년 학부모와 상담하다 보면 이런 고민을 털어놓는 경우가 많다. “아이와 소통하고 싶어서 기껏 ‘요즘 어때?’ 물으면 귀찮은 목소리로 ‘아, 별일 없다니까’ 하고는 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린다니까요.” 야속한 아이의 등만 쳐다보면서 한숨을 내쉬는 날이 점점 늘어간다. 도대체 내 아이는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는 걸까? 무슨 생각을 하면서 사는 건지 도통 알 수 없어 답답하다.

이현아·'그림책 한 권의 힘' 저자

영화 ‘보이 후드’를 보면 미국 아이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혼한 아빠와 2주에 한 번 만나는 사만다와 메이슨은 아빠가 살갑게 질문을 던져도 “몰라요” “좋았어요” “그냥 뭐” 3종 세트를 앵무새처럼 반복한다. 참다 못한 아빠가 길가에 끼익 차를 세우고 솔직한 심정을 쏟아낸다. “잠깐만, 부모 자식 간의 대화가 이래서는 안 돼. 날 그런 아빠로 만들지 마. 2주마다 애들 차에 태우고 입에 발린 얘기나 하며 이것저것 사주는 친아빠 난 싫어. 대화를 하자고!” 잠깐 차 안에 정적이 흐른 후, 눈을 끔뻑이던 메이슨이 되묻는 말을 우린 밑줄 쫙 긋고 가슴에 새겨야 한다. “왜 우리한테만 물어봐요? 아빠는요? 뭐 했어요? 누구 만났어요? 애인 있어요? 요즘 뭐 해요?”

건강한 관계의 기본은 쌍방 소통에 있다. 내가 아이의 마음을 궁금해하는 것처럼 아이도 내 마음이 궁금하다. ‘아직 어려서 모를 거야’ 속단하며 어린애 취급하는 어른, 자기 마음은 보여주지 않고 이것저것 묻기만 하는 어른에게 아이들은 진솔한 이야기를 꺼내주지 않는다. 아이를 한 명의 동등한 인격체로 존중하고 내가 먼저 솔직한 이야기를 꺼내면 ‘아, 저렇게 이야기하면 마음이 전해지는구나’ 하면서 아이의 섬세한 감각은 우리가 건넨 대화의 온기를 온몸으로 흡수하고 배운다.

[이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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