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 10살도 안 된 아이가 신부?…한 장의 사진이 낳은 가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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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7.16. 오후 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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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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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멘 난민 비난에 팔레스타인 합동결혼식 사진 활용…사진 속 여자어린이는 화동

[인터넷 카페 캡처]


(서울=연합뉴스) 김희선 기자 = 최근 난민 문제가 사회적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과거 해외 인터넷에 돌았던 난민·이슬람 관련 가짜뉴스가 국내로 무분별하게 유입돼 확산하고 있다.

'가자지구의 합동결혼식', '예멘의 합동결혼식', '어린 신부' 등의 제목을 달고 인터넷에 퍼진 사진도 그중 하나다.

20대로 보이는 남성들과 하얀 드레스를 입은 어린 여자아이들이 손잡은 채 줄지어 있는 이 사진은 국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이슬람 국가의 조혼 풍습을 보여주는 사진으로 소개됐다.

한 인터넷 카페의 게시글은 사진 속 광경이 "이스라엘 내 무슬림 거주지역인 가자지구에서 거행된 450쌍의 합동결혼식"이라면서 사진 속 주인공들은 신랑과 신부이며, 신부는 전부 10살 미만의 어린아이라고 설명한다.

또 다른 카페의 게시글은 사진 속 멀쩡해 보이는 신랑들은 모두 소아성애자라고 비판하면서 조혼, 중혼, 아동성애가 이슬람의 풍속이라고 주장한다.

예멘에서의 합동결혼식이라는 제목으로 같은 사진을 소개하면서 예멘 난민에 대한 반감을 부추기는 게시글도 눈에 띈다.

세계 곳곳에 여전히 조혼 악습이 남아 있고, 이슬람권에서 행해지는 조혼 사례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비판받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유니세프가 지난 3월 발간한 통계에 따르면 세계 평균 조혼율(20~24세 여성 중 18세 이전에 결혼한 이들의 비율)은 21%이며, 최빈개도국의 평균 조혼율은 40%에 달했다. 니제르(76%), 중앙아프리카공화국(68%), 차드(67%), 남수단(52%), 부르키나파소(52%), 말리(52%), 기니(51%) 등 아프리카 빈국의 조혼율이 특히 높았고, 예멘(32%)도 세계 평균치를 웃돌았다.

하지만 이 사진은 2009년부터 해외 인터넷에 돌았던 가짜뉴스 속 사진으로 조혼 풍습이나 예멘과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당시 반이슬람 사이트를 중심으로 가자지구의 20대 남성과 어린 여자아이들이 결혼하는 장면이라는 설명을 단 사진과 동영상이 빠르게 확산했지만, 해외 언론에 의해 가짜뉴스임이 판명됐다.

사진 속 행사를 제대로 보도했던 기사와 가짜뉴스를 점검한 외신들에 따르면 이 사진이 2009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서 열린 합동결혼식 축하 행사 속 장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사진 속 여자아이들은 신부가 아니라 신랑 혹은 신부의 친척(조카 혹은 사촌동생)이다.

당시 가자지구의 무장 정파 하마스 지도자들은 합동결혼식을 여러 차례 열었는데, 이 역시 하마스가 주선한 결혼식 축하 파티였다.

행사에 참여한 하마스 관리의 설명에 따르면 전통적으로 신랑·신부의 친척인 어린 여자아이들은 신부처럼 하얀 드레스를 입고 행사에 참여해 일종의 화동 역할을 한다.

사진과 함께 퍼진 동영상 속에는 신부 복장을 한 여자아이들이 아랍어로 친척의 결혼식에 왔다고 말하는 장면도 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커플 중 대부분은 이미 다른 곳에서 종교적 예식을 치렀고, 사진에 등장하지 않는 신부 중 일부는 당시 하객과 함께 앉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또 신부는 대부분 18세 이상의 성인이라는 것이 하마스 관리의 설명이다.

당시 행사 현장을 취재했던 영국 방송 스카이뉴스의 기자 팀 마셜은 사진 속 여자아이들을 신부라고 주장하는 인터넷상의 가짜뉴스를 악의적인 유언비어라고 비난하는 글을 블로그에 올리기도 했다.

그는 이 사진과 관련된 가짜뉴스들은 "이슬람 문화를 정확히 모르는 이들이 만들어낸 이슬람 혐오적인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들은 이 사진을 보고 마치 이슬람권의 모든 결혼식이 어린 여자아이와의 조혼이라고 믿는 듯했다"며 이는 터무니 없는 유언비어를 믿는 사람들이 있고 이것이 그들의 편견을 강화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hisunn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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