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실험하다보면, 동물들의 얼굴이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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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7.11.12. 오후 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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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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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애니멀피플] ‘2017 러쉬 프라이즈’ 시상식 현장

대체시험 개발자 수여 ‘러쉬 프라이즈’

과학 분야 특별상 받은 이수현 박사

“동물과 사람 달라 예측 힘들어

동물 아닌 실험으로 정확도 높여”



2017 러쉬 프라이즈 과학 분야 특별상을 받은 이수현 박사가 올해 테마인 ‘칩 안의 장기’ 그림 앞에 서 있다. 이 박사는 동물실험 대체시험법 개발 공로를 인정받았다.
개 비글은 크기가 적당하고 성격이 온순해 각종 실험에 쓰인다. 쥐는 번식력이 뛰어나고 수명이 짧아 세대가 빨리 늘어나기 때문에 실험에 용이하다. 원숭이는 뇌부터 손가락, 발가락까지 인간과 가장 유사하다. 신뢰성이 높은 실험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원숭이를 실험에 많이 사용한다.

지난해 농림축산검역본부 실태조사 결과 국·공립기관, 대학, 의료기관, 일반기업체 등 동물실험기관 364곳에서 이용한 동물 숫자는 총 287만8907마리였다. 2015년과 견줘 37만1750마리가 늘었다. 마우스, 래트, 기니피그, 햄스터 등 설치류가 263만2964마리로 91.4%였다. 뒤이어 어류 11만7249마리(4.1%), 조류 5만4796마리(1.9%), 토끼 3만7373마리(1.3%), 돼지나 개 등 기타 포유류가 2만8872마리(1%)로 뒤를 이었다. 원숭이류도 2544마리나 됐다. 고통이 높은 동물을 5단계로 구분한다면 고통 등급이 높은 4~5단계 동물을 70% 가까이 사용한다.

동물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이들조차 동물실험을 통해 독성을 검사한 제품을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지는 않은지 동물실험 대체기술을 개발하는 이를 만났다. 세포 기반 바이오전문 ㈜바이오솔루션의 이수현(41) 박사는 12일 새벽(한국 시각) 영국 런던 웨스트민스터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러쉬 프라이즈 과학 분야 특별상을 받았다. 러쉬 프라이즈는 영국 화장품 브랜드 ‘러쉬’에서 동물실험 대체시험을 발전시키기 위해 이 분야 공로자들에게 주는 저명한 상이다. 이 연구원은 “한국의 대체시험법 연구를 응원하기 위해 상을 준 것 같다. 옳은 일을 하고 있다는 확신을 했다”고 수상 소감을 말했다.

‘2017 러쉬 프라이즈’가 런던 웨스트민스터 8노덤버랜드 애비뉴에서 열렸다. 각국의 수상자와 시상자 등 전 세계에서 200여명이 모였다.
인공 조직을 가지고 연구하는 장면. 이수현 박사 제공
이 연구원이 대체시험법 연구를 시작한 것은 2006년부터다. 당시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 면역독성과 주관으로 인공 피부를 이용한 동물 대체시험법 개발 연구를 주관했다. 이어 난치성 안구 질환 치료를 위한 인공 각막, 인공 결막을 개발했다. 살아있는 토끼의 목을 고정하고 속눈썹에 시험하는 약을 계속 발라 토끼를 고통스럽게 하는 실험(드레이즈 실험)이 아니라, 도축된 소의 각막을 이용한다. 또 병원에서 수술하고 버려진 사람의 조직에서 세포를 분리해 사용한다. 세포를 배양해 조직을 만든다. 컴퓨터시뮬레이션으로 화학구조만으로 독성을 예측하기도 한다.

“이전까지는 동물실험을 많이 하지도 않았고 하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다”고 겸손하게 말하는 그이지만, 그의 연구는 동물도 생명이라는 감수성이 기반이 됐다.

“실험동물도 공장에서 찍어내듯 만들어 사용한다고 생각하는데, 오래 실험하다 보면 압니다. 단지 1번, 2번 개체가 아니라 동물 각각의 얼굴이 보여요. 그걸 알면서 실험하면 마음이 좋지 않아요.”

그가 대체시험법에 매진하는 이유는 꼭 동물에 대한 감수성 때문만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과학자로서 정확한 실험을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더 컸다. 1950년대 후반 동물실험의 결과 입덧 방지에 탁월하다던 탈리도마이드를 먹은 임신부가 기형아를 낳은 것처럼, 동물실험이 완벽하다고 해도 인간에게 적용될 때 부작용이 발생할 확률이 크기 때문이다. “습관적으로 동물실험을 하지만 같은 생명이라는 점 빼고는 동물과 사람이 다른 점이 너무 많기 때문에 사람에게서의 약 반응을 예측하기 어렵다”는 말이다.

대체시험법의 기술을 기업에서 많이 활용하려면 기업이 적극적으로 변화하고, 그러려면 소비자의 요구가 있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최근 화장품법 개정으로 올 2월부터 동물실험을 거쳐 만든 화장품을 국내에서 유통, 판매할 경우 최대 100만원의 과태료를 물어야 한다. 하지만 100만원이 무서워 동물실험 대신 익숙하지 않은 대체시험법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기업은 드물다고 그는 말한다. 또 중국시장에 진출하려면 동물실험을 의무적으로 해야 하므로 국내 움직임을 모른척하는 기업들도 많다고 한다.

“대형 화장품업체를 바꾸려면 시민들이 나서야 해요. 화장품뿐 아니라 의료기기, 생활용품같이 우리가 쓰는 모든 것이 동물실험을 통해 독성이 없다고 평가받고 개발되고 있어요. 우리가 예쁘고 편해지기 위해 동물을 죽이는 것을 몰랐다면 고민해주세요.”

그의 목표는 피부나 각막 분야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독성평가 시험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것이다. 한국의 모델이 국제 표준이 되는 날을 꿈꾼다.

‘2017 러쉬 프라이즈’ 과학 분야 특별상을 받은 ㈜바이오솔루션의 이수현 박사. 이수현 제공
휴메인소사이어티인터내셔널 트로이 사이들 이사는 독성학 전문가로, 러쉬 프라이즈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그는 “윤리적 소비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제니퍼 루이스 하버드대 생체모방공학 연구소의 박사는 3D프린팅으로 인공장기를 만드는 기술로 러쉬 프라이즈 과학 분야 본상을 받았다.


이 연구원이 수상한 러쉬 프라이즈는 올해로 6번째다. 매년 과학, 교육, 홍보, 로비, 신진 연구자 분야에서 동물 대체시험 활성화에 기여한 개인, 단체를 선정해 시상한다. 이날 러쉬의 상금 총 33만 파운드(약 4억9천만원)가 11개국 20개팀 수상자들에게 수여됐다.

과학 분야 본상은 인공 생체칩(Organ on a chip)을 조직하기 위해 ‘3디(D) 바이오 프린팅’ 기술을 개발하는 제니퍼 루이스 교수의 하버드대학 생체모방공학 위스연구소팀이 받았다. 이들은 사람의 심장조직을 프린팅할 수 있는 ‘칩 위의 심장(heart on a chip)’기술을 개발했다.

영국 핸드메이드 코스메틱 러쉬 로고. 러쉬 제공
심사위원인 동물단체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내셔널’의 독성연구팀 이사 트로이 사이들(Troy Seidle)은 “다른 기업은 아직도 환경, 동물, 인권에 대해 생각하는 수준이, (엔지오에게) 배워가야 하고 엔지오가 이끌어가야 하는 부분이 많아서 다른 기업과 일하는 부분이 수월하지 않다. 하지만 러쉬는 (엔지오 등과) 가치관이 같다”고 말했다.

런던/글·사진 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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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환경과 경제산업 뉴스를 씁니다. 책 <지구를 쓰다가>, <달콤한 나의 도시양봉>을 썼습니다. ecowoori@hani.c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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