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의 두 태양 “파리에서 같이 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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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9.27. 오전 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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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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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런던올림픽 체조 도마에서 금메달을 딴 양학선. 정시종 기자
한국 체조에는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두 명 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사상 처음으로 금메달을 딴 ‘도마의 신’ 양학선(29·수원시청), 올해 도쿄올림픽에서 시상대 맨 위에 오른 ‘도마 왕자’ 신재환(23·제천시청)이다. 1960년 로마올림픽에 처음 출전한 한국 체조는 반세기 동안 금메달을 따지 못하다가, 올림픽 챔피언을 둘이나 배출했다. 같은 시대에서 협력하고 경쟁하는 두 명의 도마 천재를 만났다.

신재환은 양학선을 ‘형’이라고 부른다. 그는 “학선 형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런던올림픽을 보며 금메달의 꿈을 꾼 신재환은 “내가 바로 ‘양학선 키드’”라고 했다.

올해 열린 도쿄올림픽 체조 도마에서 금메달을 딴 신재환. 정시종 기자
두 선수가 처음 만난 건 지난 2017년 신재환이 국가대표로 뽑혀 대표팀에 들어왔을 때다. 알고 보니 인연이 있었다. 양학선은 “광주체중 시절 도마 훈련을 가장 열심히 했다. 당시 코치님이 청주 내수중에 가셔서 재환이를 가르쳤더라. 나를 보고 꿈을 키운 재환이가 금메달까지 따서 무척 고맙다”고 말했다.

양학선과 신재환은 닮은 듯 다르다. 체조계 인사들은 양학선은 ‘타고난 천재’, 신재환은 ‘노력형 천재’라고 표현한다. 양학선은 공중에서 1080도, 즉 세 바퀴를 도는 ‘양학선’ 기술을 만들었다. 체공 높이와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야 가능한 고난도 기술이다.

양학선은 다른 선수보다 도움닫기, 도마를 짚는 시간이 빠르다. 그래서 더 높이 오르고 더 오래 공중에 머문다. 양학선은 “달리는 속도가 정말 빨라서 (휘젓는) 팔의 힘줄이 끊어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도 엄청나게 노력했다. 진짜 천재라면 신기술을 며칠 만에 해내야 할 텐데, 나는 최소 2주는 걸렸다”고 했다.

한국 체조에 뜬 두 천재
신재환은 양학선처럼 체공력이 뛰어난 건 아니다. 자신의 이름을 딴 신기술도 없다. 대신 어마어마한 훈련으로 약점을 극복했다. 신재환은 “도마를 뛰지 않으면 불안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훈련밖에 없었다”고 했다. 양학선도 “20대 초반 선수들은 몸이 좋을 때라 (그걸 믿고) 훈련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 그런데 재환이는 주말에도 혼자 나와서 훈련했다”고 전했다.

신재환이 도마 훈련에 매달릴 수밖에 없던 이유는 허리 부상 때문이다. 충북체고 재학 시절 허리 디스크로 철심을 박는 수술을 했다. 그 때문에 그는 허리를 잘 접지 못한다. 그래서 링, 안마, 평행봉 등 허리를 접는 동작이 많은 종목은 하지 못한다. 신재환은 “도마도 많이 뛰면 허리가 아프다. 그래도 후회하기 싫어서 나 자신을 혹사한다”고 했다. 양학선은 “재환이가 몸을 잘 써서 다른 종목을 해도 충분히 잘했을 텐데 (허리 부상이) 아쉽다”고 했다.

양학선도 부상에 많이 시달렸다. 주요 국제 대회 때마다 햄스트링, 아킬레스건, 오른손 부상으로 제대로 활약하지 못했다. 부상 트라우마가 심해져 심리 상담도 수차례 받았지만 극복하지 못했다. 도쿄올림픽에서도 금메달 후보였으나, 예선에서 제대로 뛰지 못해 탈락했다. 양학선은 “내 몸을 믿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너무 자주 다쳤던 양학선은 대표팀에서 ‘부상 상담가’로 활동했다. 신재환은 “학선 형이 부상으로 힘들어하는 걸 옆에서 보면서 나도 많이 불안했다. 허리가 아프고 햄스트링이 안 좋을 때, 학선 형과 대화하면서 마음을 다스렸다”고 전했다.

둘은 끈끈한 선후배인 동시에 치열한 라이벌이기도 하다. 신재환은 “솔직히 학선 형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이 있다. 같은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둘은 서로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스포츠는 정말 잔인한 것 같다”고 했다.

둘 사이의 ‘선’은 지난해 신재환이 월드컵에서 두 차례 우승하면서부터 생겼단다. 양학선은 “예전에는 재환이가 먼저 다가와서 기술에 대해 물어봤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재환이가 잘하면서 주변에서 나와 비교를 많이 했다. 자극받고 잘하라고 그랬겠지만, 서로 어색해졌다”고 전했다.

그렇지만 양학선은 묵묵히 신재환을 지지했다. 그는 “올림픽 결선 때 관중석에서 재환이를 크게 응원했다”고 했다.

신재환도 “학선 형이 목청 터져라 응원한 것을 들었다. 정말 감사하다”며 웃었다.

양학선과 신재환은 함께 시상대에 올라간 적이 없다. 두 선수는 다음 달 18일 일본 기타큐슈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동반 입상하기 위해 진천선수촌에서 훈련하고 있다. 그리고 3년 후 파리올림픽에서 함께 날아오르길 소망하고 있다.

양학선은 “도쿄올림픽 전에는 은퇴를 생각했다. 내가 후배들 앞길을 막는 것 같아서 미안했다. 그런데 양궁 오진혁 형, 사격 진종오 형 등이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용기가 생겼다. 2024년 파리올림픽까지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신재환에게 “함께 파리올림픽 결선에 올라가면 결과가 어떻게 될까”라고 물었다. 그는 망설임도 없이 “제가 진다. 학선 형은 이기기 힘든 존재”라며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 두 명이 같이 뛰는 것도 역사가 될 것이다. 형과 선의의 경쟁 펼치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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