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환은 양학선을 ‘형’이라고 부른다. 그는 “학선 형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런던올림픽을 보며 금메달의 꿈을 꾼 신재환은 “내가 바로 ‘양학선 키드’”라고 했다.
양학선과 신재환은 닮은 듯 다르다. 체조계 인사들은 양학선은 ‘타고난 천재’, 신재환은 ‘노력형 천재’라고 표현한다. 양학선은 공중에서 1080도, 즉 세 바퀴를 도는 ‘양학선’ 기술을 만들었다. 체공 높이와 시간을 충분히 확보해야 가능한 고난도 기술이다.
양학선은 다른 선수보다 도움닫기, 도마를 짚는 시간이 빠르다. 그래서 더 높이 오르고 더 오래 공중에 머문다. 양학선은 “달리는 속도가 정말 빨라서 (휘젓는) 팔의 힘줄이 끊어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도 엄청나게 노력했다. 진짜 천재라면 신기술을 며칠 만에 해내야 할 텐데, 나는 최소 2주는 걸렸다”고 했다.
신재환이 도마 훈련에 매달릴 수밖에 없던 이유는 허리 부상 때문이다. 충북체고 재학 시절 허리 디스크로 철심을 박는 수술을 했다. 그 때문에 그는 허리를 잘 접지 못한다. 그래서 링, 안마, 평행봉 등 허리를 접는 동작이 많은 종목은 하지 못한다. 신재환은 “도마도 많이 뛰면 허리가 아프다. 그래도 후회하기 싫어서 나 자신을 혹사한다”고 했다. 양학선은 “재환이가 몸을 잘 써서 다른 종목을 해도 충분히 잘했을 텐데 (허리 부상이) 아쉽다”고 했다.
양학선도 부상에 많이 시달렸다. 주요 국제 대회 때마다 햄스트링, 아킬레스건, 오른손 부상으로 제대로 활약하지 못했다. 부상 트라우마가 심해져 심리 상담도 수차례 받았지만 극복하지 못했다. 도쿄올림픽에서도 금메달 후보였으나, 예선에서 제대로 뛰지 못해 탈락했다. 양학선은 “내 몸을 믿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며 고개를 떨어뜨렸다.
너무 자주 다쳤던 양학선은 대표팀에서 ‘부상 상담가’로 활동했다. 신재환은 “학선 형이 부상으로 힘들어하는 걸 옆에서 보면서 나도 많이 불안했다. 허리가 아프고 햄스트링이 안 좋을 때, 학선 형과 대화하면서 마음을 다스렸다”고 전했다.
둘은 끈끈한 선후배인 동시에 치열한 라이벌이기도 하다. 신재환은 “솔직히 학선 형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선이 있다. 같은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 둘은 서로를 의식할 수밖에 없다. 스포츠는 정말 잔인한 것 같다”고 했다.
둘 사이의 ‘선’은 지난해 신재환이 월드컵에서 두 차례 우승하면서부터 생겼단다. 양학선은 “예전에는 재환이가 먼저 다가와서 기술에 대해 물어봤다. 그런데 지난해부터 재환이가 잘하면서 주변에서 나와 비교를 많이 했다. 자극받고 잘하라고 그랬겠지만, 서로 어색해졌다”고 전했다.
그렇지만 양학선은 묵묵히 신재환을 지지했다. 그는 “올림픽 결선 때 관중석에서 재환이를 크게 응원했다”고 했다.
신재환도 “학선 형이 목청 터져라 응원한 것을 들었다. 정말 감사하다”며 웃었다.
양학선과 신재환은 함께 시상대에 올라간 적이 없다. 두 선수는 다음 달 18일 일본 기타큐슈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동반 입상하기 위해 진천선수촌에서 훈련하고 있다. 그리고 3년 후 파리올림픽에서 함께 날아오르길 소망하고 있다.
양학선은 “도쿄올림픽 전에는 은퇴를 생각했다. 내가 후배들 앞길을 막는 것 같아서 미안했다. 그런데 양궁 오진혁 형, 사격 진종오 형 등이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고 나도 용기가 생겼다. 2024년 파리올림픽까지 도전하고 싶다”고 했다.
신재환에게 “함께 파리올림픽 결선에 올라가면 결과가 어떻게 될까”라고 물었다. 그는 망설임도 없이 “제가 진다. 학선 형은 이기기 힘든 존재”라며 “올림픽에서 한국 선수 두 명이 같이 뛰는 것도 역사가 될 것이다. 형과 선의의 경쟁 펼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