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어떻게 강간미수가 아니죠?" 성폭력 피해 20대 여성 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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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11.18. 오후 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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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자취방서 강간미수피해…수사당국 강제추행 판단 억울
검찰, 가해자에 기소유예 처분
전문가들 "피해사실 명확…기소유예 납득 어려워"
강간죄 성립 요건에 '동의 여부' 적용해 법 개정해야
피해 여성이 아시아경제에 공개한 한 정신과 진단서.사진=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아시아경제 한승곤 기자] 대학 선배 자취방에서 술에 취해 성폭행 미수 피해를 당했지만 강간미수가 아닌 강제추행으로 고소가 진행되고 해당 혐의에 대해서는 기소 유예 처분이 난 사건이 뒤늦게 알려져 논란이 예상된다.

피해 여성은 "왜 강간미수가 아니냐"며 수년째 정신적·육체적 스트레스를 호소하다 정신병원에 다니며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특히 '피해 정도가 중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본 검사의 판단에 대해서도, 성폭력 사건이 왜 피해자 중심이 아니냐며 분통을 터뜨렸다.

아시아경제가 피해자를 어렵게 만나 △그간의 사건 경위 △담당 변호인 의견 △경찰의 수사 상황 △검찰의 처분 등을 종합해 전문가들과 검토한 결과, 강제추행이라는 범죄사실이 인정됐음에도 기소유예 처분이 나온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강간죄 처벌은 피해자의 동의 여부를 고려하고 있지 않아, 사실상 법을 보완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날 선배 자취방에서 무슨 일 있었나


사건 내용을 종합하면 A(26·여)씨는 2016년 평소 호감이 있던 모 대학 같은 과 선배 B(27·남) 씨 자취방에 놀러 갔다.

자취방에 들어가기 전 인근 편의점에서 술을 구매한 두 사람은 방에서 술을 마시며 대화를 이어갔다. 그러다 A 씨가 가해자에게 짧은 입맞춤을 했다.

그러자 B 씨는 갑자기 A 씨의 가슴과 엉덩이를 강제로 만지기 시작했다. A 씨가 강하게 저항하자 B 씨는 A 씨의 다리를 강제로 벌린 뒤, 피해자 속옷 위로 자신의 신체 주요부위를 비비는 등 A 씨가 거듭 거부해도 강제로 성관계를 하려고 했다.

지속하는 성폭행 시도에 A 씨는 "내 몸 만지지 마" 라며 소리치는 등 계속해서 강하게 저항했다. 욕을 하고, 가해자 이름을 부르며 소리를 지르고 뺨을 때리는 피해자 저항에 B 씨는 결국 성폭행 시도를 멈췄다.

이후 성폭행 위험에서 벗어난 A 씨는 해당 범행에 대해 저항하는 등 기진맥진했고, 또 만취한 상황이라 자취방에서 그대로 잠들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A 씨는 자신의 스타킹이 바닥에 놓여 있었지만, 왜 스타킹이 그렇게 되어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강간미수 아닌 강제추행 고소…검찰은 가해자 기소유예


A 씨는 이후 성폭력 상담 기관인 해바라기 센터에서 상담을 한 뒤 가해자에 사과를 받기 위해 연락을 했지만, 가해자는 피해자 기준에서 만족할 만한 별다른 입장을 보이지 않았다.

성폭력 트라우마와 알 수 없는 죄책감, 자신을 비난하는 학교 소문에 시달리며 고통 속에 살던 A 씨는, 결국 사건 발생 3년이 지나 지난 4월 가해자를 고소했다.

A 씨를 둘러싼 또 다른 피해는 이 과정에서 발생했다. 당시 A 씨를 상담한 해바라기센터 경찰은 A 씨에 대해 '강제 추행'이라고 판단했고, 경황이 없는 A 씨는 '강간 미수'가 아닌 '강제 추행'으로 가해자를 고소했다.

결국 검찰은 '강제 추행'으로 기소된 가해자를 조사한 경찰의 피의사실을 검토했고, 가해자에 대한 범죄 사실이 명확하다면서도 가해자를 재판에 넘기지 않는 '기소 유예'처분을 했다.

아시아경제가 취재한 검찰의 기소유예 이유를 살펴보면 담당 검사는 이 사건에 대해 △사안이 가볍지 않으나 서로 호감을 느끼고 있던 점 △피해자가 먼저 입맞춤을 하자 피의자가 강제로 신체접촉을 해 그 범행 경위에 참작할 사정이 있는 점 △피해자가 당시에는 남녀 사이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해 고소하지 않은 점 △이 사건 범행으로 피해 정도가 매우 중하다고 보기 어려운 점 △해당 검찰청 시민위원회에서 본건 심의 결과 기소유예 처분이 타당하다고 의결한 점 등을 들어 검찰은 기소를 유예했다.


전문가들, 기소유예 납득 어려워…강간죄 처벌 요건 개선해야


피해 여성 담당 변호인은 검사의 기소유예 사실을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변호인은 "(가해자가 성관계를 시도할 때) 피해 여성이 명시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혔고, 가해자도 인정했다"면서 "그럼에도 검사가 기소유예 처분을 내린 것은 적절해 보이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또 "강간미수 적용 논란과 별도로 강제추행 역시 처벌 대상이다. 그런데 기소를 유예하겠다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변호인은 향후 계획에 대해 "검찰의 항고를 낸 상태이며, 가해자에 대해 민사소송도 제기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검찰의 기소유예가 이례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검찰 출신 이승혜 변호사는 "강제추행 사실관계가 모두 인정되어 범죄사실이 모두 인정됐고, 피해자와의 합의가 없음에도 기소유예가 됐다는 게 이례적이다"라면서 "다만 검찰시민위원회가 기소유예 의견을 보일만한 어떤 사정이 있지 않았을까 싶고, 시민위원의 판단을 존중하려 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강간죄 성립 요건에 동의 여부를 보지 않는 우리나라 법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강간죄 성립 요건의 경우 영미법에서는 동의 여부를 강간죄 처벌 기준으로 본다"면서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 상대방 의사에 반해 폭행이나 협박을 할 경우를 기준으로 강간죄 성립 여부를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현실에서 인식의 차이가 발생한다"면서 "그렇기 때문에 강제추행으로 판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특히 "(해당 법률은)성인지감수성과도 연관이 많이 있다"면서 "다만 여성들 뿐만 아니라 남성들도 이 문제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피해 여성은 가해자에 처벌이 내려지기를 호소하고 있다. 피해자는 "가해자에게 합당한 처벌이 내려졌으면 좋겠다"고 짧게 말했다.



한승곤 기자 hsg@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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