획일적인 신도시 동네 풍경의 이유[한은화의 공간탐구생활]
‘중정형 집’의 탄생은 역설적이게도 규제에서 비롯됐다. 판교가 시발점이 됐다. 200만가구 건설에만 집중했던 1기 신도시와 달리 2기 신도시 판교에서는 지구단위계획이 처음 도입됐다. 이른바 ‘토지 이용을 합리화하고 그 기능을 증진하며 미관을 개선하고 양호한 환경을 확보하며, 그 지역을 체계적ㆍ계획적으로 관리하기 위하여 수립하는 도시ㆍ군 관리계획’이다.
판교는 생태ㆍ친환경ㆍ공동체 도시 등을 목표로 경관 및 건축에 다양한 지침을 정했다. 담장도 그중 하나다. 판교는 집을 지을 때 담장을 설치하지 못하게 했다. 이웃 간에 친밀하게 교류하며 살라는 취지였다.
하지만 집 안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탓에 종일 커튼을 치고 사는 것이 현실이다. 박정현 건축평론가는 “물리적으로 공간을 공유하면 공동체가 생긴다는 것은 옛날 생각”이라며 “옛 동네처럼 오래 살며 쌓인 신뢰가 없는 신도시 단독주택지에서 담장을 없애라는 것은 판타지에 가깝다”고 말했다.
판교에 중정형 집을 다수 설계한 정수진 소장(SIE 건축사사무소)은 “판교의 경우 맞벌이하는 젊은 부부가 건축주인 경우가 많다”며 “아파트에 살다 단독주택을 짓는 건축주들은 프라이버시를 가장 고민하면서 마당 있는 삶을 누리고 싶어하는데 담장 없애라는 규제는 실제 생활패턴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도시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성남시로 주민 민원이 쏟아졌다. 현재 판교의 지구단위계획을 보면 높이 1.2m의 화관목(花灌木)류의 생울타리를 둘 수 있다. 즉 담장을 치려면 살아 있는 나무를 심어야 한다. 다음은 성남시 도시계획과 관계자와 일문일답.
Q : 왜 화관목류의 생울타리를 만들어야 하나.
Q : 문제가 뭔가.
Q : 왜 1.2m 높이인가.
‘공유 외부공지’ 규정도 논란이 많다. 판교의 경우 단독주택을 지을 때 땅의 한 면을 대지 경계선으로부터 2.5m 이격해 공유공지를 만들어야 한다.
집집마다 이런 공유공지를 만들게 한 이유는 지구단위계획에 명시되어 있다. ‘이웃과의 공유를 통해 넓은 외부공간을 확보함으로써 외부공간의 효율적인 활용과 이웃 간의 친밀감을 도모한다.’ 자기 땅을 조금씩 내놔서 이웃과 함께 쓰는 공간을 만들라는 취지인데 현실은 주차장으로 쓰인다.
책『아키토피아의 실험』에서 이영준 기계비평가는 “단독주택단지에 이사 오는 사람들은 이미 제한적 이웃 개념에 익숙한 사람들이기에 설사 골목길이 생긴다고 해서 집 앞에 상을 차려놓고 국수를 말아서 이웃과 나눠 먹을 사람들은 아니다”고 진단했다.
박철수 서울시립대 건축학부 교수는 “각 지자체가 지구단위계획을 기계적으로 베껴 쓰다 보니 계획의 목표 자체가 사라진 상태”라며 “십수 년 전에 만든 계획을 구색 맞추기용으로 반복해 쓰지 말고 옛 지구단위계획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살피고 좀 더 정밀하게 발전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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