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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4장. 미스터H (4-1/5)...지수의 피눈물

4장. 미스터H (4-1/5)...지수의 피눈물2018.05.01.

당산동 막다른 골목길. 가을 문턱 정오의 햇볕이 뜨겁다. 임차인들이 떠난 재개발 철거직전 건물들은 온기가 식어 싸늘하다. 상가 셔터는 동내 불량배들의 발길질에 허리가 구부러지고. 2층 유리창들은 온전한 것을 찾기 힘들다. 드나드는 바람에 모자이크 조각처럼 달라붙은 당구장 마크가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대낮인데 귀신이 튀어나올 듯 음산한 골목길 한 귀퉁이에서 흘러나오는 신음소리를 따라가면 지하실로 이어지는 계단과 만난다. 밀폐된 지하 공간은 마치 앰프처럼 악다문 어금니 틈 사이로 새나오는 얇은 소리를 증폭시킨다. 퍽. 퍽. 퍽... 지하실 회색 콘크리트 바닥은 습기에 젖어 검은색을 띤다. 곰팡내 나는 바닥을 두 발로 떡하니 디디고 체중을 실어 날리는 주먹이 지수의 얼굴에 부딪힐 때마다 유리창이 퍽퍽소리에 바르르 떨린다. 검정색 가죽구두에 검정색 기지바지를 입은 사내는 검정색 가죽점퍼를 입고 검정색 가죽 장갑을 꼈다. 축축한 지하실 바닥에서 스멀스멀 일어서는 저승사자 같다. 장갑은 지수의 아구에서 터져나온 붉은 피에 검은색을 내줬다. 거지 새끼를 사람처럼 만들어줬으면, 은혜를 갚아야지 이 새끼야. 퍽. 퍽. 퍽... 저승사자는 몇대를 때렸는 지 숫자가 생각나지 않을 때 쯤 간간히 한 마디씩 내뱉으며 주먹질을 한다. 피에 젖은 장갑이 미끄러운 지 간혹 왼쪽 손바닥으로 피를 닦아낸다. 바위 같은 주먹에 연타당한 지수의 입술은 부어올랐다 터지고, 피를 쏟고 쪼그라든 뒤 다시 부어올랐다. 광대뼈를 견디지 못하고 찢어진 살점은 연이어 날아오는 주먹에 터져 너덜너덜하게 짖이겨졌다. 눈누덩은 퉁퉁 부어오르고 흰자위까지 검붉은 선지빛을 띤다. 지수는 이제 날아오는 주먹을 피하지 않는다. 피할 수도, 피할 이유도 없다. 증오와 원망, 그리고 그리움이 뒤썩인 눈빛이 피눈물에 젖어 뚝뚝 떨어진다. 어이. 차 사장. 그렇게 때리면 사람 죽어요. 지하실 한 귀퉁이 의자에 앉아 시종일관 지켜보던 알마니 스트라이프 수트의 남자가 일어선다. 씩 웃어 올라가는 입꼬리를 뚫고 나오는 누런 금니가 사악한 기운을 뿜는다. 포마드 기름으로 단정히 빗어넘긴 복고풍 머리에 금테 안경을 낀 남자. 여드름 자국에 얼굴 곳곳이 패였지만 잘 가꾸어진 남자의 얼굴이다. 아무리 깡패지만 자기 새끼를 패 죽이면 되나. 안 그래 차 사장? 그 창녀같은 년이 진짜 차 사장 씨를 밴 건지는 몰라도 지 새끼라고 거두었으면 어찌됐든 잘 키워야지. 그러니까 너희 들이 천륜도 모르는 양아치란 소리를 듣는거 아냐. 창녀란 소리에 장경주를 쏘아 보는 지수. 힘없이 고꾸라진 고개를 꼿꼿하게 들면서 목에 핏대가 툭 튀어나올 듯 일어선다. 개 새끼. 눈깔에 힘주는 것 보소. 그래도 아들 새끼가 애비보다 낫네. 지 애미년 창녀라고 했다고 지금 눈깔을 씨부라리는 거 아니냐고. 쩍. 눈깔 풀어 이 개새끼야. 지수의 뺨을 후려갈기는 장경주. 아 이 씨발. 애를 도대체 얼마나 팻길래 살이 너덜너덜하네. 내 손에 살이 붙겠다 붙겠어. 쩍. 쩍. 쩍... 차지창을 비아냥거리며 장경주는 계속해 지수의 뺨을 날린다. 살점이 떨어져나가는 고통에 온몸이 나른해지는 데 장경주를 쏘아보는 지수의 눈빛엔 오히려 날이 선다. 퍽. 퍽. 퍽... 매타작은 맞는 놈이 설사 연기라도 몸부림을 쳐야 때리는 맛이 나는 법이다. 맞는 쪽이 기가 죽지 않으면 때리는 놈이 기가 질린다. 장경주는 오기가 나 주먹질을 시작한다. 퍽. 퍽. 이 개새끼. 아직도 네가 무슨 짓을 했는 지 감이 안오지. 어 이 새끼야. 퍽. 퍽. 퍽... 기자 나부랭이 하나 처리 못하고 형사를 죽여 이 사단을 내냐고 이 새끼야. 장경주의 주먹은 전혀 아프지 않다. 입술이 터져 비틀어지고 살점이 떨어져 너덜해진 마당에 몇대의 주먹을 더 받아낸다고 달라질 게 없다. 지수를 정작 아프게 한 건 장경주의 옆에 무기력하게 서 있는 차지창이다. 차지창에게 버림받은 어머니는 술독에 빠져 지내다 지수가 일곱살 때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순간 어머니가 지수의 손에 남겨준 건 차지창이란 이름과 주민번호가 적힌 사진 한장이었다. 지수는 열다섯살에 원장 아들을 칼로 찌르고 고아원에 불을 질렀다. 원장 아들이 지수가 친누나처럼 의지했던 원경을 겁탈하려 했던 것이다. 원경은 지수보다 한 살이 많았고 원장 아들은 지수보다 한 뼘이 컸다. 원경의 증언 등이 참작돼 지수는 소년원에서 3년을 지내고 출소했다. 사복을 입고 나온 지수는 곧바로 차지창을 찾았다. 자신과 어머니를 버린 비정한 아버지에게 망가진 아들의 모습을 보이는 건 지수 나름의 복수였다. 차지창은 세살때 마지막으로 본 아들을 첫 눈에 알아봤다. 우수에 찬 눈매와 골격이 그 나이때 자신을 빼다박았기 때문이다. 일그러진 부정은 15년 만에 만난 아들을 거두어 살인 청부업자로 만들었다. 한참 주먹질을 하던 장경주는 분이 풀린 것인지 지친 것인지 손수건을 꺼내 주먹에 묻은 피와 살점을 닦는다. 아이 씨발 내 주먹이 까진 줄 알았네. 야 이 새끼야. 참 이 새끼 이름이 뭐라고 했지? 차 사장 이 새끼 이름이 뭐냐고 내가 묻잖아. 지수입니다. 높낮이가 없는 목소리.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두손을 모으고 선 채다. 어 그래. 차지수. 이 개새끼야. 내 말 잘 들어. 너는 오늘밤 평택항에서 배를 타고 중국으로 가는거야. 이 땅에 다시는 발 붙일 생각 하지마. 지금 너 때문에 몇 사람이 위험해진 줄 알아? 너희 부자겠지. 장중경과 장경주. 뭐? 너 지금 뭐라고 했어. 쏘아본다. 지금 네가 걱정하는 거. 그거 너희 부자 뿐이잖아. 불어터진 입술이 굳은 피에 붙어 채 떨어지지 않는다. 어 그래. 너 말 잘했다. 이 새끼. 그럼 내가 이 판국에 너희 부자까지 걱정하리? 지금 그 얘기 하는거야? 야 차지창이. 너 지금 이 새끼 하는 말 들었지. 거지새끼들 거두어서 사람처럼 살게 해주니까 이제와서 주인을 물겠다는거 아냐. 이래서 머리검은 짐승 은 거두는 게 아니라고 옛 어른들이 말씀을 한 거야. 이 씨발. 흥분한 장경주 주변을 두리번 거리더니 구석에 놓인 각목을 발견한다. 개새끼들은 몽둥이가 약이야. 장경주가 각목을 휘두르려는 순간 순식간에 날아온 주먹. 선수를 친다. 너 이 새끼. 입 안다물어. 부릅뜬 차지창의 두 눈이 지수를 노려본다. 지수의 눈가에 고인 핏방울이 눈물에 밀려 흐른다. 멱살을 잡은 차지창의 두 손. 지수가 처음 느낀 아버지의 손길이다. 어쭈. 이 새끼들 이제 쌍으로 생 쇼들을 하시네요.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건가. 지 새끼를 밴 여자를 버린 새끼가, 18년만에 찾아온 아들을 살인자로 만든 새끼가 이제와서 가슴속에 파묻었던 부성이라고 발견하신건가. 그런건가 차사장? 장경주가 휘두른 각목에 뒷통수를 맞은 차지창은 그대로 바닥에 고꾸라진다. 개새끼면 죽을 때까지 그냥 개새끼로 살아 이 새끼야. 왜 이제와서 사람 흉내를 내고 지랄이세요. 경련에 온 몸이 떨리는 차지창에게 장경주는 멍석말이를 하듯 매질을 했다. 그만해 이 개새끼야. 매질 소리에 희미해진 지수의 목소리에 장경주가 뒤를 본다. 뭐라고? 귀에 손을 갖다 대는 장경주. 중국에 갈께. 그만하라고. 남은 힘을 다해 소리를 내뱉는 지수. 입 속에 고인 피가 튄다. 야 이거. 눈물 없인 못봐주겠어. 각목을 콘크리트 바닥에 끌면서 장경주는 터벅터벅 지수에게 온다. 늘어진 지수의 목을 머리칼을 잡아당겨 젖힌다. 부릅뜬 눈으로 지수를 노려본다. 퉁퉁부은 둔꺼풀을 뚫고 나오던 지수의 안광은 패배감에 꺼졌다. 그래. 중국으로 가. 그 게 너희 부자와 우리 부자가 다 같이 사는 길이야. 그래도 차 사장과 내가 지난 세월이 있는데 먹고 살게는 해줄께. 한 가지 조건이 있어. 아 이 새끼가 피날레는 그래도 인간미 있게 하려고 했는데 끝까지... 조건 같은 건 네가 줄 게 있을 때 제시하는 거지. 지금 아쉬운 게 누군데. 주제도 모르고. 상황도 모르고. 너희가 그래서 이런거야. 그럼 그냥 죽여. 내 발로 중국행 배를 타는 일은 없을꺼야. 아 요 여우같은 새끼가... 그래 일단 들어나보자. 조건이란 거. 장중경. 그를 만나게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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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주승우를 찌르려던 칼에 수영이 죽자 지수는 차지창을 찾아간다. 자신을 살인청부업자로 만든 비정한 아버지지만 기댈 곳 없는 지수의 마음이 향할 곳은 차지창 밖에 없었다. 그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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