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들은 왜 동요에 빠질까…베토벤도 활용한 '알려진 노래'

입력
수정2020.05.13. 오후 10:15
기사원문
김호정 기자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그리움 앙상블. 왼쪽부터 윤혜리(플루트), 신윤경(비올라), 유시연,이경선(바이올린), 이형민(피아노), 최정주(첼로). [사진 그리움 앙상블]
피아노가 느린 3박의 선율을 혼자 연주한다. 일정한 패턴이 반복되다가 바이올린이 낮은 멜로디를 연주한다. 주제는 ‘엄마야 누나야’. 피아노와 바이올린에 이어 비올라와 첼로가 피치카토(현을 뜯는 기법)로 가세한다. 많은 이가 따라부를 수 있는 동요 ‘엄마야 누나야’는 조성을 바꿔 다른 방식으로 이어진다. 강렬한 리듬으로, 또 장단조를 오가며 변주된다. 이 음악의 제목은 ‘피아노 5중주를 위한 엄마야 누나야 주제에 의한 변주적 환상곡’. 김소월 시의 옛 동요를 작곡가 홍승기가 2018년 편곡했다.

연주자는 국내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이들이다. 이형민(피아노), 이경선ㆍ유시연(바이올린), 신윤경(비올라), 최정주(첼로), 윤혜리(플루트)의 6명으로 구성된 ‘그리움 앙상블’이다. 그리움 앙상블은 동요와 민요 12곡을 편곡한 음반 ‘엄마야 누나야’를 이달 냈다. ‘귀여운 꼬마’로 시작해 ‘퐁당퐁당’ ‘우리 집에 왜 왔니’ ‘오빠 생각’ ‘고향의 봄’까지 잘 알려진 노래들을 현악 4중주, 피아노 5중주, 두 대의 바이올린과 피아노 등의 클래식 음악 편성으로 연주했다.

클래식 연주자들이 동요와 민요에 관심을 갖게 된 데는 이유가 있다. 피아니스트 이형민은 “무대에서 맛보기로 연주했던 동요를 청중이 예상보다 좋아해서 시작한 프로젝트”라고 했다. “인문학 재단인 플라톤 아카데미의 초청으로 앙상블의 첫 연주를 SK케미칼 사옥에서 2015년 했다. 당시 청중은 모두 클래식 애호가들이 아니라 연주회장에 긴장감이 가득했다. 연주자도 더 긴장될 지경이었다.” 그때 연주자와 청중 모두 편해지기 위해 ‘끼워 넣었던’ 연주곡이 동요였다. 그는 “‘고향의 봄’ 6중주를 연주했는데, 울고 있는 청중이 있었다"고 했다.

이후 그리움 앙상블은 앨범 수록곡 12곡을 포함해 총 20여곡을 편곡 의뢰했다. “우리 앙상블 6명은 모두 어려서부터 서양 악기를 시작해 외국에서 유학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우리 노래’라는 데에서 동요와 민요를 연주했을 때 새로운 울림이 있다. 우리 것이라는 게 얼마나 가깝게 다가오는지 새삼 느낀다.”

서양의 클래식 음악 또한 사람들이 부르던 노래와 멀지 않았다. 베토벤의 작품번호 11번인 클라리넷 트리오의 부제는 ‘가센하우어(Gassenhauer)’ 즉 ‘거리의 노래’다. 1787년 히트한 ‘내가 일하러 가기 전’이란 노래를 3악장에서 썼기 때문이다. 당시 오스트리아 빈의 사람들은 거리에서 이 노래를 부르거나 휘파람으로 불었고 베토벤은 이 노래를 그대로 가져다 3악장에 썼다. ‘반짝반짝 작은별’로 유명한 모차르트의 피아노 변주곡 K.265도 사람들이 부르던 노래였다. 프랑스 파리에서 구전되던 노래 ‘아, 어머니께 말씀드리죠’를 가지고 모차르트가 작곡했고 지금은 ‘작은별’ 노래로 불리고 있다.

이처럼 모두가 따라 부를 수 있는 노래는 음악가들에게 매력적이다. 1974년생인 피아니스트 박종화 역시 2015년부터 동요를 클래식 주법으로 연주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그는 어린 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도쿄에서 음악을 시작했고 미국 보스턴, 이탈리아 코모, 스페인 마드리드, 독일 뮌헨, 프랑스 파리에서 살았다. “나는 ‘음악 유목민’으로 서양 음악을 공부하며 30년을 외국에서 살았다. 그런데 우리 동요를 들으면서 ‘뿌리를 건드리는 감정’이 뭔지 알게 됐다.” 박종화는 2015년 동요 음반을 내고 동요로 전국 순회 연주를 했으며 지금도 음악회의 앙코르로 동요를 종종 연주한다.

피아니스트 정명훈, 첼리스트 정명화도 1994년 음반 ‘한, 꿈, 그리움’에서 ‘엄마야 누나야’ ‘한오백년’ 등을 연주했다. 당시 편곡을 맡았던 작곡가 이영조(77)는 ‘섬집 아기’로 오케스트라 곡을 만들고 ‘바우고개’로 피아노 독주곡을 쓰는 등 동요와 민요를 많이 활용해왔다. 이영조는 “동요는 음악가들에게도 ‘엄마’와 같은 존재다. 다 같이 부르는 노래인데 이게 좋은 연주자를 통해 예술 음악이 됐을 때 희열이 있다. 앞으로도 한국의 클래식 연주자와 작곡가들이 많이 고민해 완성해야 할 장르”라고 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그래서, 팩트가 뭐야? 궁금하면 '팩플'
내 돈 관리는 '그게머니' / 중앙일보 가기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자 프로필

좋은 음악 듣고 좋은 콘텐트를 만드는 게 일입니다. 클래식 음악을 주로 담당합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생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