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까지 달리는 신칸센 만들자"...한일해저터널은 일본인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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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2.13. 오전 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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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일본 사가현 가라쓰의 한일해저터널 조사사갱 굴착 현장. 2006년 12월 촬영. 윤희일 선임기자

“우르릉, 쏴”

터널 안에서 레일을 타고 빠져나온 소형 화물열차가 레일 아래 공터로 검은 토사를 연신 쏟아냈다. 터널을 굴착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토사였다.

■한일해저터널 굴착 공사는 이미 시작돼 있었다.

2006년 12월,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14년전의 일이다.

“일본에서는 한일해저터널을 위한 굴착 작업이 이미 시작됐어요. 이미 터널을 뚫고 있다니까요.”

철도 관계자로부터 이런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느낌이 다가오지 않았다. 당시는 한일해저터널에 대한 관심이 그리 높지 않던 때다.

일본 철도 특집 기사를 위해 현장 취재를 간 김에 한일해저터널 관련 공사가 이미 진행되고 있다는 일본 사가(佐賀)현 가라쓰(唐津) 현장을 찾았다. 구불구불 JR(일본철도) 지역 노선을 타고 떠난 출장의 마지막 일정이었다.

그런데 공사는 분명히 ‘진행형’이었다. ‘안전제일’이라는 표어가 붙은 터널 속으로 ‘도로코’라는 이름의 소형화물열차가 부지런히 드나들고 있었다. 작업자들도 보였다.

일본 사가현 가라쓰 한일해저터널 조사사갱 굴착현장에서 나온 화물열차가 터널 굴착 과정에서 나온 토사를 쏟아내고 있다. 2006년 12월 촬영. 윤희일 선임기자

터널에서 토사가 계속 나온다는 것은, 공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얘기였다. 레일 바로 옆에는 토사를 받아내기 위한 넓은 공터도 마련돼 있었다.

현장 관계자는 “한일해저터널을 실제로 건설할 경우에 필요한 각종 정보를 얻기 위한 ‘조사용 사갱(斜坑)’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갱(斜坑)’은 갱구에서 땅속으로 비탈지게 판 갱도를 말한다. 가라쓰 현지의 육지에서 바다쪽을 향해 비탈진 터널을 만들고 있다는 얘기다.

현장 관계자들은 터널 굴착의 이유에 대해 “해저의 지질·지형 등을 조사하기 위한 것”이라고만 설명했다. 본격적인 터널 공사가 아니라 사전조사를 위한 굴착공사라는 것이다.

현장 관계자들은 터널 입구 등 공사 현장의 취재나 사진 촬영은 허용했지만, 터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허용하지 않았다. 안전상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공사가 진행되고 있던 ‘가라쓰(唐津)’의 한자 표기는 충남 당진(唐津)의 그것과 같다. 과거 중국(당)과 왕래하던 곳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일본에서 제기되고 있는 한일해저터널의 구상을 보면 이 가라쓰를 기점으로 하는 방안이 여러차례 나왔다.

일본 사가현 가라쓰의 한일해저터널 조사사갱 입구. 2006년 12월 촬영. 윤희일 선임기자

■한일해저터널, 언제부터 어떻게 추진됐나.

일본에서 한일해저터널 구상이 나오기 시작한 것은 오래 전이다. 기록 등을 보면 1917년, 1935년, 1938년 등 여러차례에 걸쳐 다양한 형태의 한일해저터널 구상이 나온 바 있다. 일제 강점기부터 한일해저터널 구상이 나오기 시작했다는 얘기다. 이후에도 한일해저터널의 필요성이 일본 안에서 수차례 제기됐다. 대부분 일본의 대륙 진출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1980년대 들어서는 한일해저터널 건설 움직임이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이것을 주도한 것은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이다. 1981년 통일교의 문선명 총재(작고)가 ‘국제하이웨이 한일터널 구상’을 밝힌 이후 움직임이 활발해졌다.

1983년 통일교 관련 연구단체인 한일터널연구회가 설립되면서 한일해저터널에 관한 연구와 시도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86년 10월, 사가현 가라쓰 현장에서 열린 ‘한일해저터널 조사사갱(터널)’ 기공식을 계기로 공사가 본격화했다. 그 때부터 만들어지기 시작한 조사터널의 규모는 높이 5.5m, 폭 6m 규모다. 지금까지 굴착한 터널의 길이는 547m에 이른다.

한일해저터널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는 일본의 국제하이웨이재단 홈페이지에 게재된 글 등을 보면 2030년까지 1210m 길이의 터널 공사가 진행될 예정인 것으로 나와있다. 하지만, 현재는 관련 공사가 진행되지 않는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 측은 가라쓰에서 28㎞떨어진 이키(壹岐)섬에 조사사갱용지를 확보하고, 여기에서 다시 51㎞ 떨어진 쓰시마(對馬)의 아레(阿連)지역에서는 조사사갱(斜坑) 입구 건설 공사를 진행한 바 있다. 쓰시마에서 한국 거제도까지는 66㎞ 정도 떨어져 있다.

국제하이웨이재단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 광역단체)에는 모두 한일터널추진현민회의가 결성돼 있고, 2017년 11월 28일에는 한일터널추진전국회의도 결성됐다. 모두 통일교와 관련돼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사가현 가라쓰의 한일해저터널 조사사갱 굴착 현장에서 한 작업자가 토사를 실어나르는 소형화물열차를 점검하고 있다. 2006년 12월 촬영. 윤희일 선임기자

■“도쿄에서 런던으로 연결되는 신칸센(新幹線)을 같이 꿈꾸자”...아베 신조 일본 전 총리

한일해저터널 관련 단체인 일본 국제하이웨이재단의 홈페이지를 보면 일본이 한일해저터널에 거는 기대의 단면을 살펴볼 수 있다. ‘국제하이웨이·한일해저터널 프로젝트 2019년 개정판’이라는 제목의 홍보영상에 나오는 말을 그대로 소개한다.

“일한해저터널(한일해저터널)의 경제효과는 헤아릴 수 없다. 자원의 대부분을 수입하는 일본은 그 수송수단을 배에만 의존해 왔다. 한일해저터널은 대륙과의 물류를 한꺼번에 높이게 된다. 그 최대의 혜택을 받는 나라는 일본과 한국이다.”

영상에서는 일본인들의 대륙진출에 대한 강한 꿈도 읽을 수 있다. 2013년 11월 터키에서 아시아와 유럽을 잇는 보스포로스해협터널이 개통된 것과 관련, 아베 신조(安倍晋三) 전 일본 총리는 다음과 같은 발언을 한다.

“자, 다음은 도쿄(東京)발 이스탄불, 그리고 이스탄불에서 런던으로 연결되는 신칸센이 달리는 꿈을 같이 꾸지 않겠습니까.”

영상 속의 해설자는 “마침내 도쿄발 런던행 ‘리니어 신칸센(新幹線)’을 목표로 내거는 때가 왔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여기에서 말하는 ‘리니어 신칸센’은 자력(磁力)의 힘으로 열차가 철로에서 10㎝ 정도 떠서 달리는 ‘차세대 자기부상(磁氣浮上)고속철도’를 말한다. 물론 일본이 개발한 첨단 기술이다. 일본은 도쿄~나고야(名古屋) 구간(286㎞)을 최고 시속 500㎞로 달려 40분만에 주파하는 리니어 주오(中央) 신칸센 건설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김종인발 ‘한일해저터널’, 다시 이슈로?

물론 한국에서도 한일해저터널 건설 얘기가 여러차례 불거졌다.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이명박 등 전직 대통령 재직시에 계속해서 한일해저터널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부산의 지방정치권에서도 수차례 거론됐다.

하지만, 한일해저터널 논란은 경제성이나 실효성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지 못하고 대부분 ‘없던 일’로 됐다.

“부산 가덕도와 일본 규슈를 잇는 한일해저터널 건설을 검토하겠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최근 내놓은 이 제안을 계기로 한일해저터널에 대한 일본 내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국제하이웨이재단의 경우 국민의힘이 제기한 한일해저너털 건설 검토 관련 기사를 홈페이지에 잇따라 게재하는 등 비상한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윤희일 선임기자 yhi@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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