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 제치고 부동산 시장 큰손 된 30대, ‘청약은 불가능’ 상대적 박탈감에 집테크 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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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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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라도 집을 사야(buy) 살(live) 수있다.”

30대가 부동산 거래 시장의 큰손으로 등장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자녀(1980~1990년생)로 태어나 ‘에코 세대’로도 불리는 30대는 현재 사회에 진출해 가정을 막 꾸리고 있는 시기다.

현재의 30대는 앞서 자리 잡은 선배들(486·586세대)이 별다른 노력 없이 아파트 청약 당첨만으로 수억원대의 시세차익을 쉽게 올리는 것을 목격한 세대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청약 추첨제가 사실상 폐지되고 청약 당첨 가점이 수직 상승하면서 지금의 30대들은 이른바 ‘로또 분양’에서 철저히 소외되어 있다. 이에 30대들은 기성세대에 대한 상대적 박탈감과 더 집값이 오르면 내 집 마련을 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강한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다.

이에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은) 대출’을 통해 기존 아파트 혹은 분양권을 매수해서라도 어떻게든 서울에서 터를 닦고 앞선 세대의 ‘성공’을 재현하겠다는 게 30대의 각오다. 이를 위한 30대들의 눈물겨운 노력은 사실상 집테크밖에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없는 우리 사회의 서글픈 자화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지적이다.



▶40대 제치고 구매 연령대 1위 된 30대

“옆집 지민이네는 마포에 집을 사서 2년 만에 3억원을 벌었다는데. 우리도 마이너스통장이라도 만들어서 집을 무조건 사자.”

서울 용산에 살고 있는 직장인 김 모 씨(38)는 최근 집을 구매하기 위해 아내를 힘겹게 설득 중이다. 김 씨가 모은 돈은 아직 턱없이 부족하지만 ‘서울 집값은 오늘이 제일 싸다’란 말을 교훈삼아 당장이라도 집을 마련하고 싶다. 김 씨는 아내를 설득하는 즉시 부족한 자금 마련을 위해 양가 부모님에게도 손을 벌릴 생각이다.

국토교통부가 최근 발표한 지난 10월 서울 아파트 구매자 연령대 비중에서 30대는 31.2%로 전 연령대를 통틀어 1위를 차지했다. 30대는 최근 전통적인 구매 주류계층인 40대를 제치고 가장 활발하게 부동산 거래에 나서고 있는 상황이다. 2019년 4월부터 7월까지는 40대의 매입 비중이 1위를 차지하다가 8월부터 30대 매입 비중이 30.4%로 40대(29.1%)를 추월하기 시작해 3개월 연속해서 매입 비중이 30%를 넘어섰다. 치솟은 집값에 40·50대 형님들이 망설일 때 30대는 석 달째 1위 자리를 차지하면서 부동산 시장의 명실상부한 주인공이 되고 있다.

예전 같으면 전세로 살면서 목돈을 모을 나이인 ‘애송이’ 30대가 내 집 마련에 열을 올리는 이유는 정부 정책의 실패와 맞닿아 있다. 최근 정부의 청약제도 개편으로 청약 추첨제가 사실상 폐지(84㎡ 이하 중소형은 가점제만 적용)된 데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가 규제로 ‘로또 아파트’가 늘면서 서울 지역 청약 경쟁률이 최대 수백 대 1에 달할 만큼 급격히 높아졌다.

여기에 내년 4월부터 시행될 분양가 상한제를 앞두고 막차를 타려는 청약 대기자들이 몰리면서 서울 아파트 청약 점수가 평균 60점대 후반을 기록하고 있어 30대들은 사실상 청약에 대한 희망을 버린 지 오래다. 정부의 기성세대 우대 정책으로 청약이 막히면서 30대들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바로 비싼 웃돈을 주고라도 분양권이나 기존 아파트를 사는 것이다.



▶30대가 집 구매에 뛰어든 이유?

“청약은 남의 얘기”

“최저 가점이 60점대인데 청약은 꿈도 못 꾸죠. 그렇다고 청약 가점 쌓을 때까지 수십 년을 무주택으로 살기도 어렵잖아요. 일찌감치 포기했어요.”

30대의 반란을 촉발한 건 첫째가 30대에 지극히 불리한 현 청약제도다. 문재인 정부의 청약제도 개편으로 가점제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아지면서 점수가 낮은 30대가 설 자리는 없다.

현재 84㎡ 이하 중소형 평형은 100% 가점제로 청약 당첨자를 선정하고 있다. 30대의 구매여력을 고려할 때 대형평형 분양이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청약 길이 막힌 셈이다.

실제로 최근 올해 최대 로또 분양으로 불리던 서울 강남 분양 단지 2곳의 당첨자 중 30대는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2월 4일 계약을 완료한 롯데건설 르엘신반포센트럴(서초구 잠원동)과 르엘대치(강남구 대치동) 당첨자 중 20·30대는 한 명도 없었다. 당첨자 160여 명 중 40대가 43%, 50대가 42%로 압도적이었고 60대 이상이 15%인 것으로 나타났다.

청약 가점은 무주택기간(총 32점), 부양가족 수(총 35점), 청약통장 가입기간(총 17점)을 합쳐 산정한다. 30대가 받을 수 있는 점수는 무주택기간 9년, 청약통장 가입기간 15년을 모두 채우고 5인 가구(부양 가족 4명)면 62점이다. 물론 7인 가구로 부양가족 점수를 모두 채운다면 최대 72점까지 가능하지만 요즘 시대엔 현실적으로 어렵다. 르엘신반포는 모든 주택형 최저 가점이 69점, 르엘대치는 최저 가점이 64점으로 30대는 사실상 당첨이 불가능했다.

2030세대 사이에선 2010년대 초·중반에 결혼한 부부와 최근 결혼하는 부부간 청약제도 개편에 따른 형평성 문제까지 불거지고 있다. 2017년 10월 이전에는 추첨제 덕분에 청약점수가 낮아도 수십~수백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30대가 분양받기도 했다. 강남 분양 단지는 분양가가 9억원 이상이라 중도금 집단대출을 받을 수 없다는 점도 30대의 진입을 막는다. 30대는 대출이 아예 안 되는 청약 시장 대신에 주택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이 가능한 매매 시장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그나마 30대 중 내 집 마련을 꿈꾸는 것은 전문직 고소득 부부나 소위 금수저들에 한정된다. 전문직 권 모 씨(34)는 최근 송파구에 있는 15억원짜리 25평 아파트에 갭투자를 했다. 그는 현재 남편과 함께 결혼 당시 양가 부모가 마련해준 5억2000만원짜리 아파트 전세에 산다.

매매대금 15억원 중 전세금 9억원을 빼고 남은 6억원 중 3억원은 그간 모은 돈으로, 나머지는 신용대출을 썼다.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과 합쳐 한 달에 1200만원의 소득을 올리는 권 씨는 최대한 빨리 대출을 갚고 아이가 유치원에 들어가는 3년 뒤 송파에 입성하는 것이 목표다.



▶신혼특공도 금수저 전용

연봉 낮춰 이직까지 고려

그나마 30대를 위해 마련되어 있는 ‘신혼특공’ 제도 역시 바늘구멍인 데다 금수저에게 유리하게 만들어져 도움이 되지 못하고 있다. 현 제도로는 맞벌이 대기업 부부보다 부모 도움을 받아 생활하는 ‘금수저’ 백수 부부가 청약 당첨에 훨씬 유리하다. 소득 기준이 맞벌이 부부에게 불리해 청약 때문에 일부러 직장을 그만두거나 부부 중 한 명이 연봉이 낮은 곳으로 이직하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다.

마포에 사는 서 모 씨(34)는 최근 신혼특공에 지원하려고 연봉이 1000만원 낮은 곳으로 이직을 고민 중이다. 자녀 한 명을 둔 맞벌이 부부로 합산 월평균 소득이 700만원 중반대다. 올해 맞벌이 기준 3인 가구의 신혼특공 소득 상한선이 702만원이라 지원할 수 없다.

서 씨는 “특별공급을 위해 연봉이 4000만원 수준인 곳으로 이직을 고민 중”이라며 “연봉이 1000만원 깎인다고 해도 10년 일해야 1억원 차이인데 현재 아파트 가격은 1년에 1억원 이상 뛰고 있어 특별공급 도전이 낫다”고 말했다. 서 씨는 일단 청약에 당첨된 뒤 다시 연봉을 올려 이직할 생각이다.

부부 중 한 명이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소득 기준에 맞춰 특공에 도전하는 사례도 있다. 성동구에 사는 김 모 씨(33)는 남편과 합쳐 월급이 730만원 수준이라 그간 신혼특공에 도전하지 못했다. 김 씨는 얼마 전 둘째 출산을 계기로 신혼특공에 도전하려고 육아휴직 후 어렵게 퇴사를 결정했다.

신혼특공을 위해 이직·퇴사까지 고려하는 행태는 현 제도가 맞벌이 고소득 부부들에게 불리하기 때문이다. 신혼특공 소득 기준은 3인 가구 기준 부부 합산 월 최대 702만원으로 대기업 맞벌이 부부들은 신청하기 어렵지만, 외벌이 소득 기준은 월 648만원이어서 소득이 적은 쪽이 일을 그만두면 쉽게 자격을 갖출 수 있다. 정부의 부동산 정책으로 청년층 경력단절을 부추긴다는 비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신혼특공에서 현 자격 기준으로는 아무리 특별공급 물량을 늘린다 해도 금수저나 현금 부자들에게 기회의 문이 더 열리는 셈이다. 사실상 2자녀 이상만 당첨 가능한 시스템도 최근 자녀 수가 줄어드는 신혼부부들 현실과 동떨어졌다.

민영주택 신혼특공은 해당 지역 거주자 중 소득 기준 만족 시 자녀 수를 따지고 자녀 수가 같으면 추첨해 당첨자를 가린다. 최근 경쟁이 치열해지자 2자녀 이하는 사실상 당첨이 힘들어졌다. 최근 인기 단지의 신혼특공 경쟁률은 100 대 1 돌파도 예사다. 최근 분양한 ‘DMC 금호 리첸시아’ 전용면적 59㎡형 신혼특공은 최고 경쟁률 129.50 대 1을 기록했다.



▶신랑 집에 신부가 세 얻기도

내 집 마련 위한 웃픈 자화상

이렇게 청약 시장에서 방법을 찾지 못한 30대들은 기존 아파트 매수로 눈을 돌렸다. 자금이 부족한 일부 30대 신혼부부들은 신랑이 갭투자로 산 집에 신부가 전세로 들어가는 웃지 못할 ‘편법’까지 동원하고 있다. 전세를 끼고 집을 구매하는 갭투자와 실거주자를 확인하지 않는 전세자금대출의 허점을 이용해 신혼집을 마련하는 이른바 ‘천재 신혼부부’의 사례다.

서울 강서구 가양동에서 이 방법을 써서 신혼집을 마련한 직장인 김 모 씨(36)의 실제 사례를 보면 이해가 쉽다. 먼저 신랑인 김씨가 갭(매매금액과 전세보증금의 차이)이 최대한 작은 5억원대 아파트를 현금 약 1억원에 전세를 껴서 구매했다. 이후 기존 세입자가 계약 만기로 나가는 시점에 신부 이 모 씨(32)가 해당 집에 전세자금대출을 최대(80%)로 받아 김 씨와 함께 입주했다.

현재 주택담보대출은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이 매매금액의 40%로 제한됐지만 전세자금대출은 전세보증금의 80%까지 연 2%대 저리로 빌릴 수 있어 유리하다. 부부가 보유한 현금이 1억~2억원에 불과해도 5억~6억원짜리 집을 구매해 거주할 수 있다. 물론 김 씨가 혼인신고나 전입신고를 하면 대출을 유지할 수 없으니 실제 결혼식을 올린 뒤에도 혼인신고는 미루고 있다. 신혼부부가 집 때문에 혼인신고를 미루는 요인은 이 밖에도 많다. 우선 현재 최장 7년인 신혼부부 특별공급 대상 기간을 최대한 늦추는 것이다. 아이를 낳고 무주택 기간을 쌓아 가점을 최대한 높여 특별공급 당첨 가능성을 높이려는 전략이다. 정부 정책자금대출인 보금자리대출을 받기 위해 미루기도 한다. 보금자리대출은 1인 기준 소득한도가 7000만원이지만 부부일 때 8500만원에 불과해 대기업에 다니는 맞벌이 부부는 대부분 대출을 받지 못한다.

1년여 전 결혼한 직장인 박 모 씨(39)는 “내년 말 아파트 전세가 만기인데 혼인신고를 해 특별공급을 노릴지, 미혼 상태로 보금자리론을 받을지 고민이다. 아이가 둘 이상이 아니면 신혼부부 특별공급도 어렵다고 해서 보금자리론으로 낡은 아파트를 사려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행태가 나오는 것은 임대보다 자가 소유를 원하는 30대의 욕구를 무시한 정부 정책 탓으로 지적된다. 앞서 2010년대 초·중반에 결혼한 선배들이 집을 사고 팔며 억대 차익을 올린 것을 본 이들은 신혼집을 전세가 아닌 자가로 마련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정부는 ‘신혼부부는 임대에서 출발하면 된다’는 기성세대적 사고로 임대주택 공급에만 주력한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최근 3년간 3조원을 들여 신혼부부에게 전세대출이나 임대주택을 지원하겠다고 발표한 게 대표적이다.

30대의 내 집 장만 방식은 집값, 환경에 따라 제각각이다. 맞벌이 소득에 정부 지원 대출을 끌어 모은 ‘자수성가형’, 재테크로 자산을 늘린 ‘재능 발산형’, 부모 지원을 받은 ‘하이패스형’까지 다양하다.

문제가 되는 건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이다. 불법과 편법을 넘나드는 증여·상속에 과세 당국도 촉각을 세운다. 국세청은 “수도권 등에서 출처가 불분명한 돈으로 고가 아파트를 산 224명 중 74%(165명)는 직업이 없거나 직장 경력이 짧은 30대 이하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국토부가 발표한 ‘서울지역 관계기관 합동 조사’ 결과에서도 지난 8~9월 서울지역 주택 거래(2만8140건) 가운데 8%(2228건)가량은 ‘이상거래’로 나타났다.

기성세대와 시장은 30대에게 안타까움과 걱정의 눈길을 동시에 보내고 있다. 주부 정 모 씨(63)는 “우리 때는 월세방에 살면서도 차근차근 돈을 모으면 내 집을 마련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며 “지금은 천정부지로 오른 집값에 젊은 사람들이 내 집 마련을 꿈도 꾸지 못하고 좌절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한 부동산 전문가는 “모델하우스에 애기 울음소리가 들리면 시장이 끝물이라는 말이 있다”며 “2006년 참여정부 말기 집값 거품 시기의 재현을 보고 있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정지성 매일경제 부동산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12호 (2020년 1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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