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의 모습으로 표현된 신체,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경계를 파괴하다 [김홍희의 페미니즘 미술 읽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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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복식조’-이불 vs 이피 vs 이미래[경향신문]

이불의 ‘사이보그 W1-W4’(1998, 실리콘 캐스팅·폴리우레탄·페인트). 사진 윤형문·작가 제공


페미니즘 신체미술

정신의 하부구조 불과했던 ‘몸’
현대미술·페미니즘의 화두가 돼

환상의 복식조 2라운드는 현대미술과 페미니즘의 첨단 화두인 ‘몸’을 주제로 이불(57), 이피(40), 이미래(33)를 초대했다. 이불은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작가로 우뚝 서 있고, 이피와 이미래는 독특한 작품세계와 활발한 창작활동으로 기대되는 신진들이다. 3인의 작가는 각기 다른 조형언어로 결이 다른 삼인삼색의 몸의 미술을 펼쳐 보이지만, ‘괴물성’으로 집약될 수 있는 공통된 주제의식으로 페미니즘 신체미술의 일면을 예시한다.

그리스 고전기 이래 미술의 중심 주제였던 인체가 ‘몸의 정치학’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담보하며 현대미술과 페미니즘 미술의 주요 화두로 부각된 것은 1990년대를 전후해 등장한 후기 신체미술의 맥락에서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신체미술가들은 뿌리 깊은 정신·육체 이분법에서 정신의 하부구조로 밀려났던 물질적 몸에 우선권을 부여하며 새로운 인간학을 주창했다. 통합된 인격과 이성적 주체로서의 인간을 부인하고, 몸에 대한 금기적 해석과 함께 동성애·포르노·변장·괴물·식인 등 극단적 모티프와 과격한 표현을 채택한 것이다.

이런 (후기) 신체미술의 강령들이 부계적 가치관을 불신하는 페미니즘 이해와 부합되면서 몸을 성별 이데올로기가 교차하는 투쟁의 현장으로 인식하는 ‘성의 정치학’이 대두됐다. ‘나’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몸에서 구하는 페미니스트들은 임신·분만과 같은 여성의 생리적 특성으로부터 도출된 그로테스크 신체담론을 정치화함으로써 미학적·미술사적 젠더 위계에 도전하는 저항예술의 새 역사를 쓰고 있다.

이불의 ‘몬스터’



이불의 ‘몬스터’와 ‘사이보그’
자연·인공과 젠더의 경계 허물며
스스로 타자화, 전복적 여성 은유

일찍이 몸의 정치적 의미를 깨닫고 작업의 매체이자 주제로 정조준한 작가가 이불이다. 그는 1990년을 전후해 나체로 극장 천장에 거꾸로 매달려 낙태의 고통을 연출한 ‘낙태’, 알몸으로 목에 채워진 쇠사슬을 곡괭이로 끊어내는 자학적 퍼포먼스 등을 선보였다. 일련의 퍼포먼스는 행위 자체보다는 행위하는 주체의 몸에 초점을 맞춘 신체미술이자, 여성의 몸에 가해지는 부계적 억압과 폭력을 고발한 페미니즘 작업이었다.

이불은 1990년 수족들이 덜렁거리는 괴상한 핏빛 조각을 입고 도쿄 거리를 누볐다. ‘수난유감’이라는 이 퍼포먼스에서 눈길을 끈 것은 행위자보다 그가 걸치고 있는 옷, 천과 솜으로 만들어진 괴물 같은 의상이었다. 몸의 대리물이자 외피인 의상은 이후 몸으로부터 분리돼 독립적 조형물로 발전한다. 작가는 이미 첫 개인전(1988)에서 육신이 빠져나간 흉물스러운 껍데기들로 보슈의 ‘쾌락의 정원’을 연상시키는 기괴한 설치작품 ‘무제(갈망)’를 선보였다. 그룹전 ‘선데이 서울’(1990)에서는 몸으로부터 분리된 여체의 둔부·자궁을 과대하게 확대하고 정교하게 수놓은 그로테스크한 의상 조각을 전시했다.

이불이 1997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시퀸으로 수놓은 날생선을 전시하다 악취로 작품 일부가 철거당한 사건으로 유명한 ‘장엄한 광채’는 인간 아닌 대리 신체, 부패한 변이 신체라는 점에서 그로테스크한 후기 신체미술의 대표적 용례다. 이 작품과 함께 1990년대 중후반 등장하는 ‘몬스터’와 ‘사이보그’ 시리즈는 이불 신체조각의 정점을 이루며 그를 국제적 스타로 등극시키는 계기를 마련했다.

1998년 등장한 ‘몬스터’는 작가의 손끝에서 태어난 전대미문의 피조물이다. 외계 생명체, 동물의 내장기관, 부드러운 식물 뿌리와도 닮아 보이는 이 괴물은 (“경계를 초월하기 때문에 괴물”이라는 작가의 단언처럼) 동물·식물, 자연·인공, 남·여의 경계를 허물고 스스로 타자화된 전복적 여성의 은유로 표상됐다. 작가는 같은 해 또 다른 괴물 ‘사이보그’를 탄생시킨다. 도나 해러웨이가 담론화한 사이보그는 성별 없는 ‘포스트젠더’로서 가부장제와 상징계를 훼손시키는 동시에 하위주체 여성에게 새로운 권력을 부여할 가능태로 존재한다는 가설로 동시대 페미니스트들을 고무시켰다. 이불 역시 그러한 해방적 담론에 공감하면서도 그리스 여신상, 일본 만화, SF영화 등 다양한 원천의 재현적 도상을 참조하며 매혹적이고 섬뜩한 고유의 사이보그를 조형화했다.

이불은 2005년 몸과 젠더의 문제에서 사회사·문명사로 관심의 초점을 이동시키며 작품세계에 일대 변곡점을 마련한다. ‘나의 거대 서사’라는 대하 프로젝트를 통해 리오타르의 거대 서사 종말론을 완결시키듯, 역사적 대서사에 사적 소서사를 교차시키는 모순된 방식으로 모더니즘 이데올로기와 유토피아 이상의 실패와 침몰을 광경화한다. 역사적 담론과 자전적 기억의 단편들을 초현실주의적 불일치로 재구성, 디스토피아 비전을 재현하는 이 작업은 남성적 욕망의 대서사를 주변부 (여성적) 소서사로 해체한다는 문명비판의 맥락에서 확장된 페미니즘으로의 독해가 가능하다(그의 전반부 신체미술에 초점을 맞춘 이 글에서는 더 이상의 논의를 개진하지 않는다).

이피의 ‘따뜻한 짐승’



강렬한 원시적 도상 그린 이피와
내장 같은 신체 표현한 이미래도
괴물성의 맥락에서 초점은 하나

이피는 2010년 개인전 ‘나의 서유기’로 화단에 데뷔해 강렬한 색상과 원형적인 도상, 학습으로만은 획득할 수 없는 그만의 원시양식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 전시에 내장이 노출되고 심장과 수족이 연결된 ‘내장 여자’, 유학 시절 자신을 일개 나방 같은 존재로 여겼던 작가의 자화상 ‘나의 나방’, 마른 오징어 1000마리로 자신을 형상화한 ‘승천하는 것은 냄새가 난다’가 포함됐다. ‘웅녀’에서는 여성과 곰을 한 몸체로 재현하며 곰이 여자로 변신하는 순간을 묘사하고 있다. 단군신화에서 곰은 100일 동안 마늘과 쑥만 먹고 여자가 돼 환웅과 결혼해 단군왕검을 낳지만 그 존재는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작가는 곰과 동일시됐다가 존재마저 지워진 웅녀에게서 비존재로서의 여성을 발견하며, 여신에게 바치는 ‘나의 신전’을 제작·전시했다.

2018년에는 고려 불화 기법을 응용한 금분화로 여성의 몸을 본격 서사화한 작품들을 발표했다. ‘모든 종교의 천사’는 제례에서 배제당해온 여성을 위한 여성의 제단화다. 전통적으로 부차적 위치의 천사를 화면 중앙에 배치, 위계의 역전을 시도한 작품이다. ‘내 몸을 바꾸기 위한 신체 진열대’에서는 옷처럼 입고 벗을 수 있는 여성의 몸을 상상하며 한 몸이지만 여러 몸으로 존재하는 몸들의 진열장을 형상화했다. 내 자신의 감옥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매일 몸을 갈아입고, “누가 나를 다치게 하면 또 다른 몸을 입으며” 새로운 몸으로 태어나는 변신과 윤회의 장을 마련한 것이다.

그는 2019년 ‘현생누대 신생대 이피세’라는 기이한 제목의 전시에서 찰흙으로 빚은 입체물에 금물을 입힌 주물 같은 조소작품을 선보였다. 미지의 심해 생물들, 동물·식물·인간이 혼합된 듯한 이 신비스러운 신종 생물들 역시 진열대 속 ‘나’의 분신들이다. 이전의 내장·나방·오징어와 마찬가지로 이들은 이피의 언어로 “검고 따뜻한 짐승”이다. “<서유기>에 등장하는 삼장법사는 원숭이 일행을 몰고 다니지만 나는 검고 따뜻한 짐승 한 마리를 품고 다닌다… 내 피부 껍질을 벗기기만 하면 보일 것 같은… 검고 따뜻한 짐승 한 마리를 자꾸만 꺼내어 보여주었다”라는 작가의 토로가 암시하듯 이피의 짐승은 동물과 인간, 무의식과 의식, 안과 밖의 경계적 존재다. 이불의 ‘몬스터’ ‘사이보그’와 같이 괴물적 상상력으로 잉태된 또 다른 괴물이다.

이미래의 ‘캐리어즈’

이미래의 ‘캐리어즈’(2020, 레진·글리세린·모터·호스펌프 및 혼합매체, 가변 설치) 전시 전경. 사진 김연제·작가 제공


이미래는 특유의 은유적 방식으로 몸을 주제화·조형화한다. 강렬한 원시적 도상의 이피와 달리 이미래는 보는 이의 촉각선을 건드린다. 극도의 절제와 무기력한 우아함으로, 그러나 꽃 속의 대포 같은 일촉즉발의 위기감으로 제로 상태의 주체, 괴물적 후기 신체를 각성시킨다.

이미래의 몸에 대한 해석은 2020년 개인전 ‘캐리어즈’의 대표작인 키네틱 조각 ‘캐리어즈’로 명시된다. 용기나 이동수단을 뜻하는 캐리어즈는 몸과 관련돼 혈관·창자로부터 임산부·대리모까지 숱한 파생적 의미를 유통시킨다. 펌프 동력으로 점액질을 흡입·수송·배출하는 호스들이 꿈틀거리며 엉켜 있어 몸 밖으로 꺼내놓은 동물 내장같이 섬뜩해 보인다. 더구나 액체가 뿜어질 때 나오는 소리는 생명의 울림과도 같은 절실함으로 그로테스크의 극적 효과를 증폭시킨다. 움직이며 소리내는 내장은 부분이자 전체로 존재하는 파편적 신체, 의인화된 대리 신체로 이불의 ‘몬스터’, 이피의 ‘내장 여자’와 같은 괴물적 존재와 다름없다.

이미래는 펌프와 같은 로테크 기계장치를 통해 체액이 흐르는 몸을 재현한다. 로테크는 공예적·도구적인 아날로그 기술이라 하이테크 스마트 기술보다 친숙하고 사용자 친화적으로 다가온다. 로테크와 함께 석회·시멘트·수지 등의 재료를 즉물적으로 다루는 직접·접촉적 방식으로 밀접성의 효과를 증폭시킨다. 재료를 다루는 손이 기계적 동작과 호흡을 같이할 때 동물적·원시적 감흥과도 같은 물질적 상상력이 유발된다. 기계, 재료, 몸이 하나로 통합하는 상호이입의 과정에서 자신과 물질, 내면과 외부세계가 거리와 경계를 없애는 순수 육체인식을 체득하는 것이다.

“재료를 가까이서 만지고 느끼며… 내 몸이 작업의 풍경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먹히는…. 작품에 둘러싸이고 그 안에서 헤매는 느낌을 즐긴다”고 이미래는 말한다. 나와 세계의 거리를 없애는 창조적 융합행위를 먹고 먹힘으로써 완벽한 일체가 되는 원시적·식인적인 ‘보어(보레어필리아)’(vore·vorarephilia) 충동에 비견시킨다. 보어는 다른 생명체를 산 채로 삼키거나 잡아먹힘을 욕망하는 비정상적 리비도, 성도착증적 취향을 일컫지만 이미래 예술에 전용할 때는 나와 타자를 동일화하는 “거리의 총체적 생략”으로 이해할 수 있다. 즉 배타적 거리 두기와는 거리가 먼 이미래의 탈아적 감수성, 보어적 음식행위를 상상시키는 함몰적 창작태도가 ‘캐리어즈’ 미학을 뒷받침하고, ‘캐리어즈’로 대변되는 그의 작품세계를 형성하는 지렛대로 작용하는 것이다.

이불, 이피, 이미래

가부장적 위계의 역전 시도하며
인간의 신체적·심리적 한계 성찰

3인의 작가는 몸이라는 동일한 화두를 이렇게 다른 이야기로 풀어가지만 괴물성의 맥락에서 하나의 초점에 이른다. 이불의 ‘몬스터’, 이피의 ‘따뜻한 짐승’, 이미래의 ‘캐리어즈’는 계급·인종·젠더·연령 등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경계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사이보그와 같은 경계적 존재, 경계를 초월하는 괴물로 개념화된다. 인간·비인간, 남자·여자, 정상·비정상의 경계에 기거하고, 이성이 잠들고 환상이 지배할 때 고개를 치켜드는 괴물은 상징계에 진입하지 못하고 메두사·흡혈귀·마녀와 같은 비천한 존재로 전락한다. 줄리아 크리스테바를 비롯한 다수의 페미니스트들이 논의하듯 여성의 몸은 모계적 형상에 비천함이 얹혀지면서 괴물로 등식화된다. 결국 여성과 괴물은 가부장 사회에서 추방당한 상상계의 타자들이다. 가부장제가 폐지되지 않는 한, 메두사·마녀를 배척하는 남성문화가 종식되지 않는 한, 괴물은 비도덕적·반사회적·소수파적 하위주체로 간주될 것이다.

그러나 이불·이피·이미래 작가의 괴물적 상상력, 괴물적 형상을 통해 우리는 인간의 신체적·심리적 한계를 성찰하고 부정적인 것, 미지의 것, 추한 것에서 긍정과 아름다움의 가치를 발견하는 뜻밖의 경이를 만끽할 수 있다.

■김홍희



김홍희는 미술사학자이자 평론가·큐레이터다. 서울시립미술관과 경기도미술관, 대안공간 쌈지스페이스 관장 등을 거쳐 현재 백남준문화재단 이사장이다. 카셀도큐멘타14 감독선정위원·광주비엔날레 총감독·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등을 지냈다.

다수의 페미니즘 미술전과 백남준·미디어아트 전시를 기획했다. 저서로 <여성과 미술> <굿모닝 미스터 백> <큐레이터는 작가를 먹고산다> 등이 있다.

김세중상(저작출판), 석주미술상(평론), 월간미술대상(큐레이터) 등을 수상했다.


김홍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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