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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의 그림 "가셰 박사의 초상"은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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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25. 18:1011,396 읽음

<가셰 박사의 초상>

<가셰 박사의 초상>은 고흐가 심한 발작과 정신질환으로 입원해있던 병원에서 퇴원한 후 오베르쉬르우아즈에 정착해 동생 테오의 소개로 만난 '폴페르디낭 가셰'라는 의사를 모델로 그린 그림입니다. 가셰는 고흐를 진찰하던 의사기도 했지만 개인적으로 미술을 좋아하는 애호가이기도 했기 때문에 고흐에게 있어선 좋은 친구가 되어줄 수 있었습니다. 고흐는 가셰의 집 근처로 거처를 정하고 그와 가깝게 지냈습니다. 고흐가 가셰를 모델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이유도 그와 쌓인 친분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고흐는 가셰를 만나고 그림을 그린 지 2개월 만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가셰는 그런 고흐의 곁에서 의사이자 친구로서 마지막까지 지키며 소명을 다했습니다. 고흐가 세상을 떠난 후 가셰의 초상은 고흐의 동생 테오에게 남겨졌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1년 후 동생마저 세상을 떠나고 동생의 부인이 <가셰 박사의 초상>을 고흐의 다른 그림들과 함께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으로 가져갔고 별다를 사건 없이 고흐의 남겨진 가족 손에 보관되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슈테델 박물관에 보관된 <가셰 박사의 초상>의 레이블 뒷면의 빈 프레임

처음 <가셰 박사의 초상>이 거래된 것은 그의 누이동생에 의해서입니다. 가격은 300프랑. 한화로 친다면 약 30만 원 정도의 금액입니다. 이후로 이 그림은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독일로 옮겨지게 됩니다. 독일의 수집가 파울 카시러가 이 그림을 구입한 것입니다. 독일로 들어온 이 그림은 독일 안에서 여러 차례 그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카시러를 시작으로, 1904년에 케슬러라는 수집가에게, 1910년에는 드뤼에라는 수집가의 손에 들어갔습니다. 이후론 프랑크푸르트 시립미술관에 소장되어 1933년까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흐르는 곳에 전시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림의 불행은 이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퇴폐미술전과 당시 전시에 참석한 히틀러의 최측근 괴벨스(가운데)

1933년 독일을 장악한 나치당과 히틀러는 독일 내의 예술을 자신들의 손위에서 통제하기 시작했습니다. 때문에 1937년 <가셰 박사의 초상>은 일명 '퇴폐 미술'이라는 명찰이 달리면서 나치에 의해 그림이 불태워질뻔했지만 누군가의 노력에 의해서인지 아니면 그림의 '운명' 덕분인진 모르지만 그러한 위기는 피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 독일 나치당의 초기 당원이자 비밀경찰이었던 게슈타포를 창설했던 헤르만 괴링에게 회수되었다가, 네덜란드 화상을 통해 지크프리트 카마르스키라는 인물에게 넘겨지게 됩니다. 그림을 넘겨받은 지크프리트는 이후 뉴욕으로 그림을 가져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 6년간 그림을 대여해주면서 다시금 많은 사람들에게 그림이 공개될 수 있었습니다.

1990년 5월 15일,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된 <가셰 박사의 초상>

그리고 1990년 5월 15일. <가셰 박사의 초상>은 새로운 역사를 맞이하게 됩니다. 당일 크리스티 경매에 출품된 그림은 고흐가 사망하고 그림이 탄생한지 100년 만에, 세계 미술품 경매의 최고가를 경신하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사이토 료에이 회장

그림의 구매자는 일본의 다이쇼와 제지회사의 명예회장이었던 '사이토 료에이'. 낙찰가는 8,250만 달러로 한화 약 930억에 달하는 금액이었습니다. 세계기록 경신과 거대 일본 자본가에 관한 소식은 세간을 뒤흔들 만큼 큰 이슈였습니다. 경매가 끝나고 한 달 뒤 그림은 일본으로 옮겨졌습니다. 옮겨진 그림의 검수가 이어지고, 그림은 사람들의 눈이 닿지 않는 창고 깊숙한 곳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리고 6년 후인 1996년 사이토 회장은 '뇌물공여죄'로 구속되었다가, 회사가 몰락하고 불명예 속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후 30여 년 동안 그림의 행방은 묘연해진 상태입니다. 일본의 다른 자본가에게 넘겨졌다는 이야기도 있고, 다시 그림이 미국으로 넘어갔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공식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는 상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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