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스코 호세 데 고야 이 루시엔테스, 우리가 미술 교육을 받으며 알게 된 '고야'의 이름입니다. 고야는 1746년 스페인 출신의 대표적인 낭만주의 화가입니다.
고야는 어릴 적부터 유명 궁정화가인 스승으로부터 그림을 배우며 성장해 나갔습니다. 청년기부턴 그의 인생에서 전성기를 맞아 왕가의 주목을 받아 성 프란시스코 성당의 제단화와 함께, 카를로스 4세의 초상화를 그리며 귀족과 고위 관료의 초상화를 독점하여 명예와 부를 모두 누리는 궁정화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고야의 어두움의 시작
고야의 인생의 화려함도 그의 중년부턴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합니다. 1792년 그의 나이 46세에 고열로 청각을 잃게 되면서 깊은 상실감에 빠지게 되고 세상의 어두운 면들을 바라보게 됩니다. 그러던 중 1808년부터 1814년까지, 프랑스와 스페인 간에 전쟁이 일어나면서 스페인은 프랑스에 점령당하게 되고, 고야는 아내까지 잃게 되며 전쟁의 처참함과 패국의 비참함을 판화로 기록하기 시작합니다.
당시 프랑스군은 스페인 국민들에게 잔인하고 끔찍한 고문은 물론, 거리에서 마구잡이로 스페인 국민들을 죽인 후 시신을 훼손하고, 부녀자들을 겁탈하기까지 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하지만 고야는 목숨의 부지를 위해 프랑스의 편에 설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 후 나폴레옹의 형이자 전쟁의 승리로 새로이 왕위에 오른 호세 1세의 초상화를 의뢰받아 누구보다도 위엄 있는 모습으로 그를 그림에 담아냈습니다. 고야는 그 그림을 통해 훈장까지 받았지만, 조국을 배신한 죄책감, 전쟁에서 패해 스페인 전역에서 일어난 끔찍한 학살과 죽음의 공포로 인해 괴로워했습니다.
검은 그림 연작
고야는 죄책감과 괴로움 속에서 전쟁 이후에도 왕궁의 궁정화가로 돌아가지 않고, 만드리드의 만사나레스 지방에 집을 한채 구해 지내며 자신의 심정을 담아 전쟁의 참혹함과 인간의 어두운 면을 그림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그림들이 '성 이시도르의 축제', '두 마술사' , '자식을 삼키는 사트루누스' 등의 '검은 그림 연작'입니다.
고야는 어느 누구에게도 그림에 대한 이야기를 남기지 않고 1828년 홀로 죽음을 맞이하게 되었고, 그의 이 '검은 그림'들은 그렇게 잊혀졌다가 그가 지내던 집을 구입한 살바도르 남작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