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조국 사태`로 드러난 계층의 대물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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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 장관의 지명을 다루고 불거진 수많은 스캔들, '조국 사태'는 지난 한 달 동안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구었다. 사모펀드 이슈, 웅동학원 문제 등 조국 장관을 둘러싼 수많은 이슈가 빗발쳤는데, 그중에서도 이 문제를 국민적 이슈로 부상시킨 일등 공신은 단연코 그의 딸 입시를 둘러싼 스캔들이었다.

다른 수많은 이슈를 제치고 '자녀 입시' 문제가 가장 큰 쟁점이 된 것은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입시라는 것이 한국에서 갖는 그 특수한 위상도 이유일 테고, 쟁점이 사모펀드나 사학재단보다는 직관적이고 알기 쉽게 구성되어 있는 것도 중요한 이유였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문제가 그토록 많은 사람들에게 격렬한 반응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최근 십여 년간 한국 사회에서 알게 모르게 진행된 거대한 변화를 보여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한국 사회의 계층화다.

혹자는 새삼스럽다고 반문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전부터 계층화에 대한 문제 의식은 주로 청년층을 위주로 돌고 있었다. 소위 금수저와 흙수저로 대비되는 '수저론'이 대표적인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그전까지 수저 색깔이 다르다는 것은 대체로 막연한 이야기, 실감 나지 않는 이야기에 가까웠던 것 같다. 이미 상층의 청년과 하층의 청년은 서로가 살아가는 공간부터가 너무나 달랐고, 진지하게 마주칠 일도 없어졌기에 구체적인 문제는 오히려 드러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조 장관 임명에 대한 정치투쟁이 격화되면서, 그간 격차에 의해 차단돼 있던 '높은 곳'의 모습이 전면에 드러났다. 설령 조 장관의 딸이 외고부터 의전원까지 쌓은 그 모든 스펙에 편법과 탈법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보통 사람에게는 고등학생이 논문 저자가 되는 것 자체가 마법과도 같이 들리는 이야기고, 상상하기 힘든 이야기였다. 즉, 조국 사태는 상류 중산층이 자신의 사회, 경제적 자본과 네트워크를 어떤 식으로 활용해 자녀들에게 '안전한' 미래를 물려주는지를 알려준 것이다. 브루킹스연구소의 리처드 리브스는 이를 부모들이 '기회 사재기'를 통해 자녀들에게 '유리바닥'을 깔아준다고 표현했다.

물론 조 장관 임명에 찬성하는 측은 다른 논리를 펼친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등 수많은 보수 야당 정치인들도 비슷한 방식의 '세습' 방법론을 적극 활용했고, 어떤 면에서는 '조 장관보다 더하면 더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계층화라는 틀에서 보자면, '저네들도 똑같아요'라는 반박은 별 의미가 없다. 조 장관의 표현을 살짝 틀어서 말해 보자면, 개천의 가재와 붕어에게 용의 색깔은 이제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용의 색깔이 무엇이든 용의 자녀는 용이 된다. 가재와 붕어가 다른 누구를 지지하든, 그들의 자녀는 가재와 붕어가 된다. 중요한 건 이 대물림이지, 용의 색깔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계층 사회' 한국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아마 그것은 '조국 사태'를 겪은 우리 사회가 어떤 길을 선택할지에 따라 달린 문제 아닐까. 백일하에 드러난 이 격차 사회의 문제가 공론화되고, 해결을 모색한다면 우리는 조국 사태를 개혁의 동력을 제공해준 중대한 변곡점으로 인식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그러하기를 진심으로 소망한다. 하지만 이 문제가 몇몇 정치인들 간 힘겨루기 수준에서 끝나버린다면, 미래에 조국 사태는 그저 한국 사회의 신분제화가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진행되었음을 보여준 해프닝으로 기억될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어떤 미래를 바라는가?

[임명묵 서울대 아시아언어문명학부 4학년·'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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