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버리고 ‘귀멸의 칼날’ 잡은 소니, 19년만에 주가 1만엔 뚫었다

입력
수정2021.11.04. 오후 5:20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소니 왕국’의 부활
“이젠 전자 회사가 아닌 콘텐츠 회사”

올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IT전시회 'CES2020'에 차려진 소니 전시장. /소니

일본 소니 주가가 지난 17일 일본 도쿄 증권거래소에서 1만25엔(약 10만64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소니 주가가 1만엔을 넘긴 건 2001년 5월 이후 19년여 만에 처음이다. JP모건·모건스탠리 등 주요 투자 기관들은 소니의 목표 주가를 1만1000엔 이상으로 속속 올리고 있다.

2000년 3월 1만6300엔까지 치솟았던 소니 주가는 IT 버블이 터지면서 1년여 만에 3000엔대로 추락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엔 1000엔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2010년대 이후 실적 반등에 성공하면서 꾸준히 오른 주가는 올해 코로나 사태 이후 40% 이상 급등하더니 끝내 1만엔 벽을 돌파했다.

소니는 전자의 매출 비중을 지속적으로 줄었고, 게임·음악·영상 등 콘텐츠 분야는 늘려왔다. 2010년대 들어 순이익이 반등할 수 있었던 데는 콘텐츠의 힘이 컸다. /그래픽=양인성 기자

그 근간엔 20년 사이 ‘천지개벽’ 수준으로 싹 바뀐 이 회사의 사업 구조가 있다. 1980년대 ‘워크맨’으로 세계 전자제품 시장을 지배했던 소니는 2000년까지도 ‘전자 명가’였다. 당시 전자 사업 부문이 전체 연 매출(약 78조원)의 70% 정도를 차지했다. 나머지는 게임·음악·영상·금융에서 조금씩 나눠 벌었다. 반면, 올해 전자 사업 부문의 매출 비율은 22%로 떨어졌다. 대신 게임·음악·영상 등 콘텐츠 부문(50%)이 주력 사업으로 거듭났다. 소니의 게임 콘솔 ‘플레이스테이션’(PS)의 온라인 게임을 즐기기 위해 연 50~60달러(약 5만5000~6만6000원)를 지불하는 유료 회원 수는 전 세계에서 4590만명에 달한다. 이는 경쟁사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 유료 회원 수(약 1500만명)의 3배 수준이다. 김정연 삼성증권 책임연구위원은 “글로벌 경쟁이 심화하는 전자 부문과 달리, 콘텐츠는 지식재산권(IP)을 바탕으로 지속적 이익 창출이 가능하다”며 “이것이 소니 실적 상승의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니의 대대적 변신과 성과를 Mint가 분석해 봤다.

콘텐츠 플랫폼 회사로 탈바꿈

소니가 최근 1조2900억원에 인수한 '크런치롤'은 애니메이션 전문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OTT)다. 소니가 보유하고 있는 애니메이션 콘텐츠의 유통망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크런치롤

소니는 지난 10일 미국 AT&T에 현금 11억7500만달러(약 1조2900억원)를 주고, 애니메이션 전문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OTT) 크런치롤을 인수했다. 크런치롤은 전 세계 200국에서 가입자 9000만명, 유료 회원 300만명을 보유하고 있다. 소니는 최근 수년간 음반 업체(EMI)와 게임 회사(인섬니악게임스) 등을 잇달아 인수하며 다량의 IP를 쌓아왔는데, 이번엔 콘텐츠 유통망 장악에까지 나선 것이다.

소니의 자회사 애니플렉스가 제작한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일본 내에서 크게 흥행했으며, 내년엔 글로벌 시장으로 진출할 전망이다. /왓챠

요시다 겐이치로 소니 회장(CEO)은 지난 10월 “소니는 기술 기반의 창조적 엔터테인먼트 회사”라고 말했다. 그 대표 상품이 최근 일본 시장에서 대성공한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鬼滅の刃)이다. ‘귀멸의 칼날’ 원작은 일본 역사상 가장 빠르게 누적 1억부가 판매된 만화다. 소니는 이를 자회사 애니플렉스를 활용해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다. 극장판이 코로나 사태 속에서도 개봉 두 달 만에 302억엔(약 3200억원)을 벌어들이며 일본 영화 흥행 순위 1위 등극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 영화는 내년 초 북미에서도 개봉할 예정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 등 일본 언론은 “크런치롤 인수로 소니 콘텐츠의 해외 공급이 훨씬 더 수월해졌다”며 “올해 코로나 팬데믹으로 영화 제작·상영이 사실상 멈춘 만큼, 온라인으로 개봉하는 애니메이션은 성공 가능성이 더 클 것”이라고 기대했다.

플레이스테이션5의 런칭 타이틀인 '스파이더맨: 마일즈 모랄레스'의 게임 화면. 소니 자회사인 인섬니악게임즈가 만들었다.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

소니의 주력이 된 게임 부문은 대표적 엔터테인먼트 콘텐츠 사업이다. 지난 11월 출시 이후 지금까지도 품귀 현상을 빚는 최신 게임 콘솔 ‘PS 5’는 최근 소니 주가 급등의 주역으로 꼽힌다. 1억대 판매가 목표인데, 많이 팔리면 팔릴수록 PS 생태계가 공고해진다. 소니는 직접 소유한 글로벌 게임 개발 스튜디오 14곳에서 PS에서만 즐길 수 있는 ‘독점’ 게임을 만드는 한편, 외부 개발사 100여 곳과도 협업해 PS 생태계를 확장하고 있다.

지난달 출시된 신형 게임 콘솔 '플레이스테이션5.' /소니 인터랙티브 엔터테인먼트

소니는 음악 분야에서도 저작권과 유통망을 장악하고 있다. 비틀스·마이클 잭슨·퀸·롤링스톤스 등 스테디셀러를 포함, 총 480만 곡의 저작권을 갖고 있다. 블룸버그는 “앞으로 게임·음악 스트리밍·영상·애니메이션 등 콘텐츠 분야가 소니 성장을 이끌 중심축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경탁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소니가 콘텐츠 기반의 ‘플랫폼 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환골탈태'로 지속가능기업 1위

2000년대 들어 몰락했던 소니는 2012년 히라이 가즈오 전 회장이 CEO에 취임하면서 뼈를 깎는 사업 구조조정에 돌입했다. 그는 PC 사업 부문인 ‘바이오’(VAIO) 브랜드를 매각했고, 대신 스마트폰·자율주행차의 필수 부품인 ‘이미지 센서’에 투자, 이 부문을 글로벌 시장 1위(점유율 약 50%)에 올려놨다. 2018년 취임한 요시다 회장 역시 최근 브라질 가전 공장 매각, 말레이시아 오디오 공장 폐쇄 등 경쟁력이 떨어지는 분야는 적극 정리하면서, 콘텐츠 투자를 늘려왔다.

미국 뉴욕의 소니 뮤직 사옥. 소니 뮤직은 480만개 곡의 저작권을 보유하고 있다. /소니 뮤직

이 같은 전략이 소니를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만들어냈다는 평가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0월 전 세계 기업 5500여 곳의 인적 자본, 혁신 사업 모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측면을 고루 평가해 ‘세계 100대 지속가능기업’을 선정했는데, 소니가 1위를 차지했다. 혁신 분야에서 특히 높은 평가를 받으며 LG전자(6위), 삼성전자(28위), 페이스북(65위), 애플(68위) 등을 모두 제쳤다. 이지평 LG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소니는 디지털 전환을 성공적으로 해낸 거의 유일한 일본 기업”이라며 “소니만 제공할 수 있는 기술과 콘텐츠를 쌓아나간 것이 부활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돈이 보이는 경제 뉴스 MINT를 이메일로 보내드립니다

MINT Newsletter 구독하기https://page.stibee.com/subscriptions/77676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경제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