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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새끼 내가 키운다"…모성애로 진화한 '팬덤'의 빛과 그늘

[머니투데이 남궁민 기자, 김고금평 기자] ['프로듀서 101'을 통해 본 '팬덤'의 달라진 양상…양육의 능동적 주체에서 판 바꾸는 권력자 모습까지]

/사진제공=CJ E&M

#1. 지난 1일 열린 ‘프로듀스101’(이하 프듀) 시즌 2 피날레 콘서트. 티켓 정가는 7만 7000원이지만, 예매 시작과 동시에 티켓 3500여 장이 순식간에 동났다. 미처 표를 구하지 못한 구매자들은 수십만 원의 웃돈이 얹힌 티켓을 사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급기야 100만 원까지 치솟은 티켓도 매물이 올라오기 무섭게 팔려 나갔다.

#2.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프듀 악마의 편집의 진실’이란 제목의 글이 게시됐다. 방송에서 불성실한 모습을 보여 눈살을 찌푸리게 했던 한 연습생이 사실은 제작진의 편집에 의한 피해자라는 주장을 담은 글이었다. 게시자는 방송의 여러 장면을 분석하며 제작진의 짜집기 편집 의혹을 제기했다. 연습생의 팬들은 해당 글을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공유했고 비난 일색이던 연습생에 대한 여론은 빠르게 호전됐다.

팬들이 달라졌다. 스타를 향해 무한한 애정만을 퍼붓던 팬들은 이제 ‘수동적 열혈팬’이길 철저히 거부한다. 자신의 팬심을 증명하기 위해 ‘웃돈’이 얹힌 티켓을 과감히 구매하고, 의혹 장면에선 정의감까지 투영한다. 스타에게 ‘이끌리지’ 않고 스타를 ‘이끄는’, 소위 능동적 주체로 새로 태어난 셈이다.

황진미 대중문화평론가는 “최근의 ‘팬덤’(fandom·열성팬)은 최근 대통령 선거에서 드러난 정치인의 팬덤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며 “자신이 키우고 지켜주는 것에서 만족감을 느낀다는 점에서 주인의식이 강해졌다”고 설명했다. 어느새 빠른 속도로 진화하는 팬덤의 현주소를 짚었다.

◇ ‘숭배’에서 ‘모성애’로…가족주의적 주인의식 관계로 ‘진화’

스타를 무작정 좇던 ‘숭배’의 관행이 가족적 친밀감을 바탕으로 한 ‘모성애’적 관계로 바뀐 것은 ‘프듀’의 탄생 덕분이다.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흔히 시청자 투표를 20, 30%가량 반영해 소극적 참여를 유도한 것과 달리, 프듀는 시작부터 ‘국민이 프로듀서’라는 기치를 내걸고 모든 선택을 팬에게 맡겼다. 팬들은 이제 스타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몸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프듀가 낳은 새로운 팬덤 문화는 ‘내 새끼’라는 말로 대변된다. 연예계 첫발을 들여놓기 전인 연습생 때부터 팬들이 관여하고 급기야 생존 결정권인 데뷔 여부까지 판단한다. 아이돌 데뷔의 산파 역할을 한 팬들은 더욱 애틋한 감정을 실어 ‘맘팬’(Mom+Fan의 합성어)을 자처하기까지 한다.

아이돌을 아끼는 태도는 과거에도 존재했지만, ‘팬심 동원체제’로 팬들의 숨겨진 욕구에 불을 지핀 건 프듀가 최초인 셈이다. 이 동원체제가 보여주는 긍정의 힘은 소비자 주권주의와 비슷하다는 게 전문가의 해석이다. 이를테면 프듀 팬들이 반려견 단체에 연습생 이름으로 기부하는 행동은 가치 소비의 단면을 드러내는 행위라는 것이다.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는 “가치소비는 스타에게 선물을 주며 만족감을 드러낸 과거 ‘조공 문화’에서 진일보한 모습”이라며 “지금은 좋은 뜻으로 기부하고 성장의 기쁨을 공유하는 방식으로 성장한 것이 달라진 점”이라고 꼬집었다.

/사진제공=CJ E&M
◇ ‘프듀’가 일군 친밀감, ‘SNS’가 확대 재생산…“남의 일이 아니다”

프듀가 아이돌과 팬의 일체감을 선사했다면, 이 연대를 더 친밀하게 확장하는 매개는 SNS다. 팬덤 문화의 시초로 일컫는 조용필, 전영록의 1980년대 ‘오빠부대’나 H.O.T와 젝스키스의 등장과 함께 생성된 90년대 ‘아이돌’ 문화에선 볼 수 없는 신 팬덤 문화다.

실시간과 확장성을 무기로 하는 SNS(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덕분에 아이돌은 팬과 직접 소통하고, 팬은 아이돌의 문제를 해결하거나 관련 홍보를 널리 확장한다. 팬과 실시간 소통을 주고받는 라이브 방송은 짜인 대본 없이 이동하는 차 안이나 집에서 자연스럽게 진행돼 팬들이 아이돌을 더욱 가까운 존재로 느낀다.

직장인 박지현(여·24)씨는 “요즘 아이돌들은 SNS에 밥 먹고 쉬는 모습을 올리고 직접 댓글을 달기도 한다”며 “연예인이라는 느낌보단 잘 아는 잘생긴 친구나 동생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SNS로 다져진 유대를 통해 팬은 이제 ‘내가 지켜줘야 할’ 대상으로 연습생을 바라본다. 소속사보다 더 큰 신뢰를 얻었다고 믿는 일부 팬은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1등하고 탈 OO기획’. ‘OO기획 탈출’ 등의 구호를 외치며 진심 어린 걱정을 아끼지 않는다.

대학생 박정선(여·23)씨는 “팬들 사이에선 연습생들을 열악하게 대우하는 소속사에 대한 반감이 아주 크다”며 “팬들이 열성인 것은 소속사로부터 내 연습생을 지키고 싶은 일종의 ‘엄마’ 마음이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SNS의 영향력은 기존 아이돌도 예외가 아니다.

임진모 대중음악평론가는 “이미 SNS가 방송의 영향력을 뛰어넘었다”며 “방탄소년단의 사례처럼 아이돌의 위상은 팬들이 직접 관여하는 SNS를 통해 결정된다”고 설명했다.

◇ 건전한 주인의식인가, 위험한 권력주체인가…팬덤 과열 우려도

10대 중심이던 과거 팬덤이 20, 30대까지 확장하면서 그 양상도 각양각색이다. ‘워너원’의 강다니엘 팬들은 250만 원을 모아 한국고양이보호협회에 기부하는 선행을 베풀기도 한다.

반면 스타의 의도와 다르게, 팬들이 앞장서 자신의 원하는 구도를 입맛대로 형성하는 경우도 있다. 슈퍼주니어의 성민이 결혼 발표 이후 팬들과 소통에서 갈등을 겪자, 팬들은 즉각 활동 중단을 요구했고 성민은 곧바로 팀에서 빠진 게 대표적이다.

팬들의 입김은 기존의 ‘권력’으로 존재하던 소속사와 방송사까지 번진다. 방탄소년단이 일부 여성 혐오적 표현을 사용했다는 지적이 일자, 소속사가 신속하게 잘못을 인정하는 모습이나 박지훈의 ‘패션 테러리스트’처럼 팬이 부각한 이슈를 방송사가 재빠르게 재활용하는 것 역시 팬들의 막강한 영향력을 보여주는 사례다.

프듀에서 진행되는 데뷔 여부 투표는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정치 선거를 방불케 한다. 투표 전략을 세워 경쟁 연습생의 부정적 기사를 공유하거나 자신의 연습생에 대한 부정적 기사엔 옹호 댓글을 다는 식이다.

팬들 사이에선 나름의 위계질서도 정착돼 있다. 팬들의 집단행동은 영향력이 큰 팬인, 소위 ‘홈마’(홈마스터의 줄임말) 중심으로 이뤄진다. 익명을 요구한 한 아이돌 팬은 “'홈마'들은 팬들 사이에서 일종의 ‘권력자’로 군림한다”며 “아이돌과 친밀한 정도, 정보 보유량에 따라 영향력도 달라진다”고 귀띔했다.

김작가는 “팬덤의 세대가 확장되면서 세대에 따른 합리적 위계질서와 함께 과열 양상도 나타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분명한 건 또래 문화로 인식되던 과거 팬덤 문화가 조직, 위계, 소셜(사회적 관계)로 대체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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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민 기자 serendip153@mt.co.kr, 김고금평 기자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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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자본으로 주류에 묻어 가는 음악보다 골방에 처박혀 머리 싸매 만든 음악이 더 사랑받기를 꿈꾸는 ‘맹랑한’ 기자. 2000년 ‘세계일보’에 입사, ‘헤럴드경제’ ‘문화일보’를 거쳐 현재 ‘머니투데이’ 문화부에서 근무 중이다. 사회부, 산업부, 여론독자부 등 여러 부서를 돌면서도 문화부, 특히 대중음악 분야를 10년 가까이 ‘전공하듯’ 다뤘다. 그간 MBC, KBS, EBS 등 라디오 각종 프로그램에 고정 게스트로 출연했고, MBC ‘스타오디션-위대한 탄생2’와 KBS ‘밴드 서바이벌 TOP 밴드1, 2’에서 전문 심사 위원으로 활동했다. ‘한국대중음악상’ 심사 위원으로 10년 넘게 활동했고, 네이버 ‘오늘의 뮤직’에 집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연예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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