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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신약의 십일조, 구약의 십일조
나의 주 조회수 919 작성일2009.12.30

구약의 십일조와

신약의 박하와 회향과 근채 또는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온전히 같은 것인가요 ?

 

뭔가 다르기 때문에 오늘날 십일조 논란이 있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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윈맨
식물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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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일조는 감사의 표시로 바치는 10퍼센트의 몫을 인데 그것은 숭배를 증진시키기 위하여 자기 수입의 십분의 일을 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십일조에 관한 법을 받았습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께 첫 열매를 드리는 일에 더하여 바쳐졌습니다.—출 23:19.

 
이스라엘 백셩들은 토지의 산물과 과실과 가축 떼의 증가분의 십분의 일을 성소로 가져가서, 땅의 기업을 받지 못한 레위인들에게 바쳤습니다. 그러면 레위인들은 아론 계통의 제사직을 지원하기 위하여 그들이 받은 것 중 십분의 일을 바쳤습니다.

  

율법하에서 십일조를 내지 않는다는 이유로 형벌을 가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 대신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십일조를 내야 하는 강력한 도덕적인 의무를 부과하셨습니다. 그들은 때때로 여호와 앞에서 십일조를 온전히 드렸다고 말해야 하였습니다. (신명 26:13-15) 바치지 않고 부당하게 가지고 있는 것은 하나님에게서 훔친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말라기 3:7-9.

 
십일조를 내는 일은 짐스러운 마련이 아니었습니다. 사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러한 법을 지켰을 때 더욱 번영을 누렸습니다. 십일조는 참 숭배를 위한 물질적인 지원 방법을 지나치게 강조하지 않으면서도 참 숭배를 증진시켰습니다. 따라서 십일조를 내는 마련은 이스라엘에 있는 모두의 복지에 기여하였습니다.

 

이러한 십일조 명령은 예수의 지상봉사 기간 내내 유효하였습니다. 특히 바리새’인들이 지키기로 맹세한 또 한가지에는 ‘레위’ 지파의 제사직 및 하나님께 대한 숭배와 관련된 다른 필수적인 일들을 보조하기 위하여 토지나, 과일 나무의 그리고 소떼 및 양떼의 소산물의 십일조를 바치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십입조 그 자체에는 나쁜 점이 없지만, 예수께서는 그러한 종교적 계율을 지키는 것이 다른 경건한 성품을 결여한 것을 상쇄시켜 줄 것이라고 생각하던 ‘바리새’인들을 단호하게 질책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화 있을찐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마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찌니라. 소경된 인도자여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마태 23:23, 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사람이 그의 사고 방식, 감정, 욕망 및 동기를 포함하는 심장 즉 마음이 현재 어떠한 사람인가 하는 점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특별한 종교적 및 자선적 선행을 하는 것 보다 더 중요하다는 점을 반복적으로 강조하셨습니다. (마태 5:27, 28 비교) 확실히 예수 시대의 많은 진실한 ‘유대’인들은 예수께서 그러한 기본적 진리를 담대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데서 즐거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러면 십일조를 내는 일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해당됩니까?

   

한동안 그리스도교국의 영역에서 십일조 징수가 보편적이었습니다. 「아메리카나 백과 사전」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그것은 ··· 제6세기경에 보편화되었다. 567년의 투르 공의회와 585년의 제2차 마콘 공의회는 십일조 징수를 옹호하였다. ··· 특히 십일조를 징수하는 권한이 종종 평신도에게 주어지거나 팔렸을 때는 직권 남용이 보편화되었다. 교황 그레고리 7세 때부터 이러한 행위는 불법적인 것으로 공표되었다. 그러자 많은 평신도들은 그들의 십일조 징수 권한을 수도원 수사회와 주교좌 성당 참사회에 넘겼다. 종교 개혁은 십일조 징수를 폐지하지 않았으며, 그러한 관행이 로마 가톨릭 교회와 프로테스탄트 나라들에서 지속되었다.”

 

여러 나라에서는 십일조 징수가 폐지되었거나 점차 대치되어, 현재 십일조를 징수하는 종교는 드뭅니다.
그러면 십일조를 내는 것이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됩니까?

 

알렉산더 크루덴은 그의 성서 용어 색인에서 이렇게 기술하였습니다. “우리의 구주나 그분의 사도들은 이러한 십일조에 관하여 아무 것도 명하지 않았다.” 실로 그리스도인들은 십일조를 내라는 명령을 받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모세의 율법을 그 일부인 십일조에 관한 마련과 함께 예수의 형주에 못박으심으로써 그것을 끝나게 하셨습니다. (로마 6:14; 골로새 2:13, 14)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회중 비용을 부담하기 위하여 특정한 액수를 내도록 요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진적인 헌금을 합니다.

    

물론 어느 그리스도인이 참 숭배를 증진시키기 위하여 자진적으로 수입의 십분의 일을 내기로 한다면 그렇게 헌금하는 것에 대한 성경적인 이의는 전혀 없을 것입니다.  관대한 기부는 참 숭배를 증진시키는 데 관심을 나타내는 한 가지 훌륭한 방법입니다.


그러나 어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대한 숭배를 증진시키기 위하여 자신이 기부하는 헌금액을 특정하게 정하지 않기로 할 수도 있습니다. 그는 회중의 필요에 따라 그때 그때 적절한 금액을 헌금할 수 있습니다. (고후 8:12)

 

사실 그리스도인의 기부하는 일은 하나님의 숭배에 대한 깊은 인식을 나타내는 기회가 됩니다. 그러한 기부는 십일조에 국한되어 있지 않습니다. 영적 권익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어떤 사람은 더 많이 기부하고 싶은 감동을 받게 되는 상황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마태 6:33.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후 9:7) 참 숭배를 지지하기 위하여 즐거운 마음으로 관대하게 기부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잠언의 지혜로운 말씀은 이렇게 알려 줍니다.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잠언 3:9, 10.

 
우리는 지존하신 분을 부요하게 해드릴 수 없습니다. 모든 금은과 천산의 짐승과 헤아릴 수 없는 값진 것들이 그분에게 속해 있습니다. (시 50:10-12) 우리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모든 은혜를 결코 갚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분에 대해 그리고 그분을 찬양하기 위한 거룩한 봉사를 드리는 특권에 대해 깊은 인식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순결한 숭배를 증진시키며 인자하고 관대하신 하나님을 공경하기 위하여 관대하게 기부하는 사람들에게 틀림없이 풍성한 축복이 넘칠 것입니다.—고후 9:11.

 

 

 

2010.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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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




예천불지!

2010.0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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