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듬해 7월 붙잡힌 범인은 A양 집 인근에 사는 윤씨였다. 윤씨는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2심과 3심에선 "경찰의 고문으로 허위로 진술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기징역이 확정된 윤씨는 20여 년을 복역하다가 감형돼 2009년 출소했다.
윤씨는 교도소 생활을 하면서도 억울함을 계속 호소했다고 한다. 그는 최근 이춘재의 자백을 확인하기 위해 찾아온 경찰관에게도 "살인을 하지 않았다. 억울하다"는 말을 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재심은 유죄가 확정 선고된 판결 중 재심 사유가 있을 때 청구할 수 있다. 사유는 7가지다. ▶원판결의 증거가 된 서류나 증거물이 위·변조된 것이 증명된 때 ▶증거가 된 증언·감정·통역·번역 등이 허위인 것이 증명된 때 ▶무고로 인해 유죄의 선고를 받은 경우 ▶무죄 또는 면소 등을 인정할 명백한 증거가 새로 발견된 때 ▶사건과 관련된 법관·검사·사법경찰관이 그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이 증명된 때 등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이춘재의 자백으로 '새로운 증거의 발견'이 됐으니 이를 사유로 재심이 가능하다고 본다. 다만 이춘재의 자백 말고는 증거물이 없어서 재심이 어렵다는 의견도 있다.
삼례 나라슈퍼 강도 치사는 1999년 2월 6일 전북 완주군 삼례읍에서 3인조 강도가 일가족을 위협해 금품을 훔쳐 달아난 사건이다.
강도들이 일가족을 결박하는 과정에서 70대 여성이 입을 막은 청테이프에 질식해 숨졌다. 경찰은 9일 만에 인근에 사는 청년 3명을 범인으로 붙잡았다.
이들은 3~6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아 옥살이했다. 그러나 이후 자신이 진범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등장하고 이들이 고문을 당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재심이 시작됐고 2016년 범인으로 몰린 3명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익산 약촌오거리 살인은 2000년 8월 전북 익산시에서 40대 택시기사가 흉기에 여러 차례 찔려 숨진 사건이다. 경찰은 이 사건의 목격자였던 B씨(당시 15세)에게 살인죄를 적용했다.
B씨는 무고를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유죄 판결을 받아 10년을 복역한 뒤 출소했다. 그러나 이후 진범이 따로 있다는 제보로 경찰이 재수사에 나섰고, 과거 경찰이 B씨에게 가혹행위를 한 사실도 드러나면서 2015년 재심이 결정됐다. B씨는 이듬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두 재심 사건의 공통점은 범인으로 지목된 이들이 경찰에게 가혹 행위를 당했고 뒤늦게 진범이 나왔다는 것이다. 8차 화성 살인 사건도 이춘재가 "내가 했다"고 자백을 했고 당시 범인으로 지목돼 옥살이한 윤씨가 "경찰의 가혹 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
박준영 변호사는 "이춘재가 8차 화성 살인 사건을 저질렀다는 것을 뒷받침할 구체적인 진술이 나왔고 윤씨의 주장처럼 고문 등 가혹 행위가 있었다면 재심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경찰은 윤씨와 관련된 증거를 모두 검찰에 송치했는데 공공기록물 관리법에 따라 이 사건 서류의 보존 기간은 최장 20년이다. 윤씨 사건 확정 판결은 1990년 5월 8일에 났기 때문에 현재 증거물이 모두 폐기된 것으로 알려졌다.
윤씨가 2·3심 재판에서 밝힌 "혹독한 고문을 받고 잠을 자지 못한 상태에서 '범행을 저질렀다'고 허위 진술을 했다"는 주장도 확인하기 어렵다. 당시 법원은 "윤씨가 4시간 40분 만에 자백했고, 가혹 행위를 당했다고 볼만한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경찰 관계자는 "윤씨가 당시 했던 자백과 자백하는 과정을 비롯해 수사, 기소 과정에서 문제가 없었는지, 그때 과학수사가 제대로 이뤄졌는지 등을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더욱 객관적인 보강 증거가 나올 수록 윤씨에 대한 재심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전망엔 이견이 없다. 나라 사건과 약촌오거리 사건에서도 진범의 진술 외에 기존 용의자의 무죄를 입증할 증거들이 나왔었다.
박 변호사는 "이춘재가 8차 사건에 대해 범인만이 알 수 있는 내용을 얼마나 많이 언급하는지가 재심 가능성에 영향을 줄 것으로 본다"며 "그것을 기록에 연결하고 고문 정황까지 확인된다면 재심이 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조사 중"이라며 말을 아끼면서도 "이춘재의 자백에 대한 신빙성이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벌써부터 윤씨의 재심을 언급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것 같다"고 말했다.
최모란·박사라·심석용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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