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피의자도, 피해자도 없어서…‘페미니즘 세뇌’ 수사의 전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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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1.09.07. 오후 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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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재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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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청원으로 두 달 수사
경찰 “피해사실·피해자 모두 불분명”
지난 5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학생들에게 페미니즘을 세뇌시키는 집단에 대해 수사를 촉구하는 게시물이 올라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갈무리.


교사로 추정되는 집단이 학생들에게 페미니즘을 세뇌한다는 등의 의혹을 수사한 경찰이 범죄 피의자와 피해자를 모두 특정하지 못해 수사를 잠정 중단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경북경찰청은 7일 교사 집단으로 추정되는 단체가 학생을 따돌림 시키는 방법 등을 동원해 조직적으로 페미니즘을 세뇌한다는 의혹과 관련해 진행하던 수사를 지난 7월29일 중지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국내 포털 사이트를 압수수색하고 해외 공조수사 요청 등을 하며 수사를 진행했지만 피의자를 특정할만한 단서가 없고 피해 또한 확인되지 않아 수사 중지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경찰 수사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글에서 시작됐다. 한 청원인은 지난 5월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교사 집단 또는 그보다 더 큰 단체로 추정되는 단체가 은밀하게 자신들의 정치적인 사상(페미니즘)을 학생들에게 주입하고자 최소 4년 이상 암약하고 있다는 정보를 확인했다”며 “사건의 진위여부를 밝히고 관계자들을 강력히 처벌할 것을 청원한다”고 올렸다. 청원인은 이 단체가 “어려운 처지에 있는 학생들에게 페미니즘을 세뇌시키고 교육을 방해하는 학생들에게 따돌림을 유도한다”는 주장도 했다. 해당 청원은 게재된 지 하루 만에 청와대 답변기준(20만명) 이상의 동의를 받았고, 청원 마감일인 6월19일까지 31만4천여명의 동의를 얻었다. 논란이 일자 교육부는 5월11일 경찰청에 청원 내용 관련 사실관계 조사를 요청했다.

사건을 배당받은 경북경찰청은 범죄 피의자와 피해자를 특정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수사를 이어갔다. 경찰은 청원인이 이 단체가 사용한다고 지목한 웹사이트 게시물의 아이피(IP) 주소가 미국임을 확인하고 미국 소재 호스팅 서비스 제공 업체에 사용자 인적사항을 요청했다. 하지만 업체쪽은 “미국 사법기관을 통해 요청해달라”며 확인을 거절했다. 경찰은 검찰을 통해 법무부에 국제 공조수사 요청을 보냈지만, 법무부는 “범죄일시와 피해자, 피해 사실 등이 불명확해 미국과 체결한 공조 요청 요건에 부합하지 않는다”며 보완을 요청했다. 경찰은 지난 6월 초 국내 포털 사이트 등을 압수수색해 지목된 해외 사이트에 접근한 내역을 확인하려 했지만 접속한 기록을 찾을 수 없었다.

피해 사실 또한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웹사이트 내 게시물 작성자의 닉네임 중 경상북도의 한 초등학교 이름이 포함된 것을 확인하고 학교 관계자와 담당 교육청 등을 조사했지만 피해를 받은 학생은 없었다. 교육부나 경찰청 등을 통해 접수된 피해 사례 또한 없었다.

경찰 관계자는 “두 달 이상 수사를 이어왔지만 피해 사실과 피해자 등이 모두 불분명해 수사 중지 결정을 내렸다. 피해 신고 등 수사를 진행할 단서를 확보하면 재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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