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이 만난 사람] `대표 지성` 이어령 前 문화부장관에게 들어본 한국, 한국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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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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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독재·독선적 생각` 벗어나 `독창`적인 나라 될때
은퇴 선언이후 알파고가 날 다시 불러내
SNS선 자기 목소리 크게 들리는 착각생겨
한국인 융합능력 좋아 디지털시대 제격




"인간은 이제 한 세상이 아니라 두 세상을 살게 됐어요. SNS가 그렇게 한 거죠. 사람들이 SNS에서 보여주는 가치관이나 행동은 현실의 모습과는 다를 수밖에 없어요."

이어령 교수는 인공지능(AI)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니 하는 개념들을 이미 오래전 거론했던 사람이다. 그가 16년 전 현역 교수로 했던 마지막 이화여대 강의가 '한국인과 정보사회'였다. 이 강의에서 그는 인공지능, 정보화 네트워크 등이 사회의 모습을 완전히 바꿔 놓을 것이라고 예견했다.

1956년 기성 문단에 멋진 조소를 날린 '우상의 파괴'라는 글을 신문에 발표했던 그날부터 지금까지 이어령은 늘 몇 발자국 앞서 한국 사회를 예견해왔다. 그를 만나 지금 이 시대 한국과 한국인에 관한 고견을 들어봤다.

―은퇴 선언 후 어떻게 지내시는지.

▷마지막 직장이었던 신문사 고문직을 그만둔 게 일종의 은퇴 선언이었는데 알파고 소동이 나면서 은퇴는 물 건너갔어요. 여기저기서 AI와 인간문명에 대해 한마디씩 해달라고 하니 거부할 수 없었죠. 제가 10년 전에 쓴 '디지로그'의 개념과 직결된 문제였으니까요. 결국 조용히 글만 쓰겠다는 소망은 이루지 못했어요. 사실 장 쪽이 안 좋아서 수술도 두 번이나 하고 그랬는데, 몸 추스를 시간도 없었어요.

―SNS가 인간에게 끼친 영향에 대해 매우 정교한 분석을 하셨던데.

▷SNS는 양자역학의 장(場) 이론(field theory)으로 설명이 가능해요. 얌전하던 사람이 운전대를 잡으면 경쟁심 때문에 난폭해지는 경우가 있듯이 SNS라는 장에 들어가면 그 사람의 본성은 사라지고 장 안에서 만들어지는 어떤 힘에 의해서 다른 인격이 탄생하는 거죠. 이제 인간에게는 두 개의 분열된 공간을 어떻게 조화롭게 공존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겨진 거지요.

―그레이트 아마추어의 시대가 온다고 하셨는데.

▷SNS에서는 에코 체임버 효과가 일어납니다. 공명현상 때문에 자신의 목소리가 확대되어 울리는 듯한 착각을 느끼는 거죠. 게다가 같은 사람들끼리 어울리면 편견마저도 보편적인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그것들이 하나의 공동체가 되고, 그 공동체를 이끄는 '슈퍼 개인', 즉 그레이트 아마추어들이 등장하게 되는 거죠.

―AI가 관심을 끌면서 인문학의 죽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은 함께 있어요. 수도꼭지만 있다고 수돗물이 나오는 게 아니잖아요. 수원지가 있어야 하죠. 인문학은 수원지 같은 거고, 자연과학은 수도꼭지 같은 거 아닐까요.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인문학 개념이 좀 잘못됐어요. AI 전문가치고 문학, 철학, 인지과학을 안 하는 사람은 드물어요. 반대로 요즘 문학이나 종교학을 제대로 공부하려면 AI와 디지털 문명을 모르면 안 돼요. 그런데 우리하고 일본만 고등학교를 문과·이과로 나누고 그래요. 인문학이라는 게 인간이 뭐냐는 건데 AI를 하든 종교학을 하든 인간을 모르면 되나요. 인문학이 흥하네, 자연과학이 흥하네 하는 말 자체가 의미 없어요. 결국 다 통합으로 가는 거잖아요. 원자폭탄은 과학이 만들지만 그것을 던질 것인가 말 것인가는 인간이 하잖아요. 결국 '인문학의 죽음'이라는 말 자체가 성립이 안 돼요. 생각해 보세요. '사이언티스트'라는 말이 생긴 것이 200년도 안 됐어요. 그전에는 '자연철학'이라고 했지요.

―첨단 과학기술이 일자리를 없앨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는데.

▷꼭 그렇게 연결시킬 문제는 아니에요. 일례로 처음 MRI(자기공명영상) 진단 기술이 나왔을 때 의사나 간호사보다 MRI 관련 전문가가 더 우대받는 세상이 온다고 했어요. 그런데 결과는 그렇지 않았어요. MRI 판독 같은 거는 인건비가 싼 나라로 파일을 보내서 판독을 하는 게 가능했거든요. 하지만 치료와 간호 같은 거는 사이버 공간에서 대신해줄 수 없는 일이었죠. 현실의 세계를 사이버 세계가 대신할 수는 없어요. AI가 등장했다고 해서 모든 일자리가 사라진다고 말하는 건 옳지 않아요. 일자리의 개념이 바뀌거나 종류가 달라질 수는 있어요. 그 전환기를 대비해 어떤 교육을 하고 어떤 대책을 세우느냐가 중요한 거죠.

―이런 시대에 종교는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인간에게는 지능지수를 뜻하는 'IQ', 감성지능을 의미하는 'EQ'가 있듯이 영성지능을 뜻하는 'SQ'도 있어요. 신을 믿든 안 믿든 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SQ예요. 어린 시절 어머니가 숨을 안 쉴까봐 겁이 나서 어머니 코 밑에 손가락을 대보는 것, 여섯 살 때 굴렁쇠 굴리는 놀이를 하다가 까닭 없이 눈물이 흘렀던 일들, 이런 것들이 모두 SQ예요. '신은 해답이 아니라 질문 속에 존재한다'는 말처럼 말이에요. 종교적인 믿음을 자꾸 신과 연결시켜서 그렇지, 신의 유무를 떠나서 믿음이라는 세계는 영원할 겁니다. 예수가 2000년 전 인물인데 그때 신봉했던 과학은 모두 변했지만 예수가 한 말은 여전히 살아 있잖아요. 부처도 마찬가지고요.

―한국인들이 이런 패러다임의 시대를 잘 견딜까요.

▷한국인들은 두 세상을 살아야 하는 시대에 잘 적응할 겁니다. 6·25전쟁 때 미군이 마시던 군납 맥주가 있었어요. 먹고 버린 그 캔을 펼쳐 이어서 학교 지붕을 만든 사람들은 전 세계에서 한국인들밖에 없었대요. 한국인들은 포탄 탄피로는 종을 만들었고, 버려진 철모로는 두레박을 만들어 썼어요. 우리에게는 임시변통하고 융합하는 대단한 능력이 있어요. 디지털 시대에 잘 어울리는 능력이죠.

한국인들에게는 기마민족의 피와 농경사회에서 체득한 문화가 잘 섞여 있어요. 잔디밭이든 어디든 앉아서 자장면을 시키는 것은 농경문화고, 자장면을 오토바이에 싣고 어디든 배달하는 것은 기마문화죠. 수저 문화도 생각해보세요. 수저는 숟가락과 젓가락을 쌍으로 한번에 부르는 이름이잖아요. 일본만 해도 젓가락 문화밖에 없는데 우리는 둘을 같이 썼어요. 따로 말하지도 않고 '수저'라는 한 단어로 지칭했어요. 음과 양의 조화였던 거죠.

AI가 모든 일자리 없앤다? 일자리 개념·종류가 바뀔뿐


―그래도 요즘 어두운 미래를 말하는 한국인들이 많던데.

▷항상 우리는 위기 속에서 지내왔어요. 한국인들은 내일은 이야기 안 해도 모레는 이야기하는 사람들이에요. 생각해 보세요. 한국어에는 '내일(來日)'은 없어요. 내일은 순우리말이 아닌 한자예요. 관념적으로는 있었지만 일상용어는 없었던 거예요.

하지만 모레, 글피, 그글피는 순우리말이에요. 우리는 언제나 먼 미래를 이야기한 민족이에요. 오죽하면 56억년 뒤에 온다는 미륵불을 믿었겠어요. 가장 어두울 때 새벽이 오는 거예요. 내일이 어둡기에 남들이 못 보는 모레, 글피, 그글피를 생각했던 민족이잖아요. 그 힘으로 광활한 대륙의 끝에서 제 옷 입고, 제 언어 가지고, 제 문화 가지고 당당하게 나라를 유지해온 거예요. 늦지 않았어요. 당장 내일이 어둡다고 해도 모레는 있으니까요.

―젊은이들은 '헬조선'이라는 말까지 하는데.

▷공감하는 부분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까지 생각할 필요는 없어요. 테러, 난민, 폭력, 실업, 차별 등 세계가 실낙원의 시대로 가고 있어요. 결국 지금 한국의 문제는 전 세계가 안고 있는 문제일 수도 있어요. 생산성은 늘지만 고용은 저하되는 문명 구조 속에서 청년들의 일자리가 줄어드는 건 글로벌한 현상이기도 해요. 열린 마음으로 새로운 시대를 그렸으면 좋겠어요. 어른들이 살았던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말이에요. 내가 한국 경제를 일으켜 세웠다는 '독재'적 생각과 내가 민주화를 이루어냈다는 '독선'적 생각을 뛰어넘어 이제는 '독창'적이고 '독립'적인 나라를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뛰어난 문학평론가신데 대중은 선생님이 문학가라는 생각을 잘 안 하는 듯합니다.

▷어느 한 장르에 나를 규정하고 그 틀에 얽매이는 걸 싫어한 결과이기도 해요. 시, 소설, 희곡, 비평 등 모든 문학 장르의 글을 썼지만 사람들은 나를 시인이나 소설가로 보지는 않는 것 같아요. 최근에도 시 분석을 한 '언어로 세운 집'이나 '공간기호론'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는데 독자들은 '지성에서 영성으로' '지식의 최전선' 등을 더 많이 읽는 것 같아요.

―인생을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과 가장 슬펐던 순간은.

▷행복은 그 경중을 비교하기 힘들어요. 행복했던 당시는 언제나 최상급 아니었을까요. 그래도 많이 기억나는 건 어린 시절이죠. 아버지가 서울에 출장 갔다가 오실 때 학용품이나 구두 같은 걸 사오셨는데 자고 일어났을 때 머리맡에 그것들이 놓여 있는 걸 보면 참 행복했어요. 막차를 타고 오신 아버지가 사왔던 학용품에서 나던 고무 냄새, 그 냄새를 잊을 수가 없어요.

또 하나는 새천년위원장 시절, 즈믄둥이 탄생을 전 세계에 생중계하는 걸 기획했는데 정말로 2000년 1월 1일 0.1초에 '으앙' 하면서 아이가 태어났을 때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죠. 가장 슬펐던 일은 딸아이를 잃었을 때죠. 어느 누구에게나 죽음이 가장 슬픈 일일 테지요.

■ He is…

△1934년 충남 아산 출생 △1956년 서울대 국문과 졸업 △'우상의 파괴'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장 △1959년 동 대학원 졸업 △1967~1989년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 △1972~1987년 월간 '문학사상' 주간 △1979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1990~1992년 초대 문화부 장관 △1999년 새천년준비위원장

―대표 저서 '저항의 문학'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축소지향의 일본인' '한국과 한국인' '지성에서 영성으로' '디지로그' '생명이 자본이다'

[허연 문화전문기자 / 사진 = 이승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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