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전국 대다수 소아과 “어린이용 독감백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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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보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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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6개월~12세 이하 무료접종 백신 바닥나
소아청소년의사회 "대다수 소아과 접종 중단"
무료접종 13일 개시 18세 이하 물량 이상없어
서울의 한 소아청소년과의원이 12일 이 병원을 이용하는 부모들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 이 의원은 "13일부터 당분간 독감 접종이 불가하다"고 알렸다. 독자 제공


전국 대다수 소아청소년과 병ㆍ의원들이 생후 6개월~12세 이하 어린이들의 무료 접종을 위한 인플루엔자(독감) 백신이 부족해 예방 접종을 일시 중단한 것으로 13일 전해졌다. 이에 정부는 어린이들의 접종을 위해 예비 백신 물량 34만 도즈(1도즈는 1회 접종분)를 긴급히 병원들에 투입하기로 했다. 의료계 일각에서는 "정부가 백신 가격을 너무 낮게 책정하자 제조사가 이윤이 더 남는 유료 접종용으로 공급하려 한 영향"이라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다만 이날부터 접종이 재개된 13세~18세 이하 청소년 무료접종 대상 백신은 공급에 무리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독감 백신 접종 중단”.. 영유아 둔 부모들 발 동동



서울의 한 소아과는 병원을 이용하는 부모들에게 "13일부터 6개월~12세 이하 유아 및 어린이 독감 예방 접종을 중단한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12일 일괄 발송했다. 서울 성북구 동대문구 은평구, 경기도 고양시 등 한국일보가 이날 무작위로 전화를 건 소아과 5곳도 모두 1~3일 전 접종을 중단했다고 밝혔다. 이 소아과들은 모두 “다음주 쯤 접종이 재개될 수 있지만 언제일지 확실히 모르겠다”고 답했다.

부모들이 육아 정보를 공유하는 인터넷 카페에도 관련 글이 이어지고 있다. 한 부모는 "아이들을 데리고 병원을 세 군데나 다녀왔지만 백신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부모는 "13세 큰 아이는 맞았지만 10세 둘째가 맞을 백신은 다 떨어졌다고 한다. 동네 소아과 내과에 다 전화해 봤는데 언제 들어올지 모른다고 한다"며 걱정했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의사회 회장은 "전국 2,300여개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의견을 교류하는 온라인 게시판에 따르면 전국의 거의 모든 소아과가 현재 백신이 없어 12세 이하 예방 접종을 중단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부모들이 인터넷 육아 정보 카페에 올린 독감 백신 관련 글. 카페 글 캡처


병원이 직접 백신 사는 '12세 이하'가 문제



현재 많은 소아청소년과가 접종을 중단한 대상은 6개월~12세 이하 어린이들로, 이날 시작된 18세 이하 청소년 무료접종은 대부분의 의료기관에서 큰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다.

12세 이하 어린이 백신만 접종 중단된 것은 이 백신들은 다른 무료접종 백신들과 유통경로가 다르기 때문이다. 정부는 올해 6개월~18세 이하 청소년, 62세 이상 노인에게 백신을 무료로 접종하는데, 이 중 13~18세 청소년과 62세 이상 노인이 맞는 1,259만 도즈는 도매업체(신성약품)를 통해 물량을 일괄 확보해 병원에 백신을 배송해준다. 병원들은 정부로부터 공급받은 백신을 접종만 하면 되기 때문에 물량이 부족할 우려가 적다.

하지만 6개월~12세 이하 어린이와 임신부는 다르다. 병원이 백신 제조사나 의약품 도매상으로부터 직접 백신을 구매한 후 어린이와 임신부에게 접종하고, 이후 정부에 백신비용을 청구한다. 그런데 소ㆍ도매상이나 제조사로부터 백신 수급이 잘 되지 않고 있다는 게 소아과들의 주장이다. 서울의 한 소아과는 "주문한 물량 중 일부 들어온 백신은 모두 접종됐고, 나머지 물량은 계속 안 들어고 있다"며 "언제 들어올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부가 백신 가격을 너무 낮게 책정해 제조사가 무료용이 아닌 일반인 대상 유료용으로 백신을 공급했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임현택 회장은 "백신 제조사가 이익을 많이 낼 수 있는 일반인용 백신으로 집중 공급했다"며 "이에 12세 이하 어린이 독감 예방접종의 60%를 담당하는 일선 소아청소년과 병ㆍ의원이 백신을 공급받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고 주장했다.

백신 제조사 및 도ㆍ소매상이 병ㆍ의원에 판매한 백신은 어린이, 임신부에게 무료용으로 사용될 수도, 일반인을 위한 유료용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 똑같은 백신이지만 누가 맞았는지에 따라 가격 차이는 크다. 12세 이하 어린이나 임신부가 백신을 맞으면 정부가 정한 금액인 1만410원을 받지만, 일반인이 맞으면 병원에게 판매한 시장 가격을 받을 수 있다. 임 회장은 "백신 판매자들이 초기에는 1도즈 당 1만6,500원에 팔았지만 백신 시장 혼란이 심해지자 1도즈 당 2만6,000원까지 값을 부르기도 했다”고 전했다. 정부가 백신 가격을 너무 낮게 책정해 소아과에 납품했을 때 받는 가격과 일반인용 납품 가격 차이가 큰 '이중 가격'이 형성돼 소아과 납품을 기피했다는 것이다.

정부 "금주 중 34만 도즈 공급"... "초반 접종 몰린 듯"



정부는 일단 예비 물량 34만 도즈를 16일까지 전국 병ㆍ의원에 투입할 예정이다. 질병관리청 관계자는 "소아과 등에서 백신을 구하기 어렵다고 해 34만 도즈를 금주 중 의료기관에 배송 완료할 예정"이라며 "12세 이하 어린이가 접종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백신 수급 차질 문제의 원인에 대해서는 의료계와 다르게 진단했다. 질병청 관계자는 "올해 공급되기로 했던 물량 대부분이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상황이고 소아과에 공급된 물량도 작년보다 늘어났다"며 "초반에 접종이 몰린 것인지, 접종률이 높아진 것인지 추이를 지켜보려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병ㆍ의원들이 유료 접종을 선호하는 풍토도 수급 문제의 원인 중 하나로 본다. 병원은 직접 구매한 백신을 어린이에게 무료용으로 접종한 후 보건소로부터 백신비와 시행비(1만9,010원)를 받는데, 백신비를 판매자에게 지급하고 시행비만 병원 수익이 된다. 그런데 유료접종일 경우 환자가 부담하는 4만~4만5,000원에서 백신 비용을 뺀 나머지 금액이 수익으로 잡힌다. 질병청 관계자는 "모든 병원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경제적인 이유로 유료접종을 선호하는 분위기가 있다"고 말했다.

작년보다 백신 물량이 늘어나 부족 사태는 없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매년 약 2,200만 도즈의 독감 백신이 유통됐지만 올해는 수거된 양을 감안해도 467만 도즈가 더 생산됐기 때문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백신 공급에 차질이 없고 양도 충분하다"며 "하지만 상온노출 사태와 트윈데믹에 대한 공포로 접종자가 몰려 수급에 차질이 빚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남보라 기자 rarara@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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