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그 유튜버를 고소하기로 했을까

입력
기사원문
본문 요약봇
성별
말하기 속도

이동 통신망을 이용하여 음성을 재생하면 별도의 데이터 통화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토요판] 이런 홀로
나홀로 소송해보니

내 문장이 나도 몰래 유튜브에 있어
누군가에겐 ‘글 몇 줄’에 불과해도
쓴 사람은 다듬고 다듬은 ‘삶’ 그 자체

그게 자신의 손에도 잘 맞는다 해서
훔치거나 빼앗아선 안 된다는 말
법의 목소리 빌려 전달하는 진실
나는 신석기시대 사람들처럼 글을 쓴다. 작은 삶을 살고, 거기서 얻은 생각을 갈고 또 갈아서 삶보다도 작은 글을 쓴다. 오늘날 사람들이 보기엔 ‘매끈한 돌덩이’지만, 그게 그 시대 인류에게는 삶의 증거가 되었던 것처럼, 내게는 글쓰기가 그렇다. 게티이미지뱅크


한달 전, 내 문장을 도용한 유튜브 영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재작년 겨울에 이 지면에 발표했던 미니멀 라이프에 관한 칼럼이었다. 그건 5년 전 언니와 함께 살던 시절의 내 이야기다. 그런데 그게 강남 고시원에 사는 낯선 여성의 진솔한 고백으로 둔갑해 유튜브 콘텐츠가 되어 ​있었다. 쉼표 하나까지 문장을 그대로 가져다가 말이다. 유튜브에 저작권침해를 신고하고, 며칠 뒤 게시 중단이 완료되었다는 안내를 받았다. 그가 내 칼럼 말고도 국내외 작가들의 책을 영상에 빈번하게 도용해왔음을 지적하는 영상들이 유튜브에 우후죽순처럼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나 몇주가 지난 뒤, 갑자기 제재 표시가 사라지고 영상들이 복구되었다. 신문사의 도움을 받아 증명 자료를 만들어서 유튜브에 보내보기도 하고 항의 메일도 써봤지만, 설명을 들을 수 없었다.

더는 어찌해볼 방법이 없다고 상심했다. 하지만 여기서 내가 물러나면, 이 사람은 또다시 남의 글을 훔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무력해졌던 마음이 차게 끓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유튜브가 바로잡아주리라는 기대는 들지 않았다. 유튜브에서 가끔 박막례 할머니나 ‘강하나 스트레칭’을 찾아보는 게 전부였던 내 지식으로는, 채널을 운영하며 수익을 벌어들이는 사람을 상대할 수 없다는 판단이 섰다. 고소를 하자고 용기를 낸 것은 저작권 침해를 알게 된 지 한달째 되는 날이었다.

사흘 밤 새워 고소장을 쓰다

지난주, 유튜버를 고소했다. 저작권법의 조항들을 쭉 읽어본 후 ‘나홀로 소송’, ‘혼자서 고소장’을 검색해보다가,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제공하는 무료 법률상담을 신청했다. 쉽고 구체적인 진행 방법을 가르쳐준 덕분에, 고소장 작성에 필요한 정보를 대부분 얻을 수 있었다. 시간 단위로 유료 상담을 중개해주는 사이트를 통해 변호사 상담도 받았다. 그다음은 정말 실전이었다. 저작권법을 읽고, 대검찰청 누리집에서 내려받은 표준 서식으로 고소장을 쓰기 시작했다.

고소장을 쓰는 것은 끊임없이 스스로 ‘팩트 체크’를 하는 일이었다.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이게 과연 가장 좋은 방법이 맞는지 움츠러들 때마다 나를 붙잡아준 것은 “진실이 곧 방법”이라던 이성복 시인의 글귀였다. 그래서 홀로 깨어 고소장을 쓰는 밤이 이어졌다. 내가 알고 있는 사실들을 육하원칙에 맞게 쓰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그러려면 물증이 있는 사실와 심증만 있는 상황을 구별해야 했다. 객관적으로 말하고 쓰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새삼 깨달았다.

나는 이번 일을 계기로 유튜브라는 거대한 플랫폼의 생태계와 처음 맞닥뜨렸다. 칼럼을 표절한 유튜버는, 유튜브 세계에서는 ‘팔로워 십만명도 안 되는’ 군소 채널에 불과했다. 그러나 십만명이라니! 철저히 개인으로 글을 쓰는 내게는 그조차도 큰 압박이었다. 그러니 고소장은 내게는 일종의 세상을 향한 호소였다. 다만 내 말만 들어달라는 하소연이 되지 않게, 애걸이 되지 않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이 들어줄 만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나는 수행하는 마음으로 사흘 밤을 거의 새워야만 했다.

그다음에는 내가 확보한 증거 자료를 범죄 사실과 대조해 보며 목록을 만들었다. 증거물 역시 가공되지 않은 날것들만 골라내고, 어떤 사실을 명확하게 입증할 수 있는 것만 남겼다. 여기까지만 해도 형사고소 준비는 거의 다 된 것이다. 슬그머니 사실 뒤로 끼어드는 내 의견을 솎아내기 위해, 며칠에 걸쳐 몇번이나 다시 들여다보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렇게 정리한 고소장은 마치 햇볕에 납작하게 마른 육포처럼 보였다. 한달 넘게 마음속에서 억울함과 분노를 먹고 부풀었던 기억들이, 괴로운 감정을 날려보내고 차분한 사실들로 남아 있었다. 그것을 다시 읽어보는 것만으로도 이 일로 상처받은 마음이 조금 회복되는 기분이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정말 심각한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라면, 다른 사람의 조력 없이 이 과정을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서늘해지기도 했다.

고소장에는 피고소인을 고소하는 이유를 적는 칸이 있다. 검찰청 종합민원실의 접수대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며, 나는 내가 쓴 고소 이유를 한번 더 읽어보았다. 고소장에는 다 들어가지 않는 말들이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는지 모르겠다. 나는 왜 그 유튜버를 고소하기로 했을까. 그건 우리의 삶이 각각 자신의 것으로 지켜질 가치가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가 지키고 싶은 것은 글을 쓰며 사는 삶이었다.

각각의 삶은 지켜질 가치가 있다

나는 신석기시대 사람들처럼 글을 쓴다. 작은 삶을 살고, 거기서 얻은 생각을 갈고 또 갈아서 삶보다도 작은 글을 쓴다. 오늘날 사람들이 보기엔 ‘매끈한 돌덩이’지만, 그게 그 시대 인류에게는 삶의 증거가 되었던 것처럼, 내게는 글쓰기가 그렇다. 누군가에게는 ‘겨우 글 몇 줄’에 불과한 것이라도, 그건 글을 쓴 사람 손에 꼭 들어맞게 다듬은 내 삶 자체였다. 그게 자기 손에도 잘 맞는다고 해서 훔치거나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해줄 사람이 필요했다.

내 글을 베낀 유튜버 역시 홀로살이를 주제로 한 콘텐츠를 다루는 사람이었다. 고소를 진행하며 가장 씁쓸했던 것은, 홀로 살아간다는 이야기로 누군가와 다퉈야 하는 것이었다. 이게 나의 삶이고 저것이 당신의 삶이라는 단순한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 법의 목소리를 빌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인가 싶었기 때문이다.

접수대 직원이 고소장과 증거 자료에 빠진 게 없는지 살핀 뒤, 접수증을 건네주었다. 2~3일 후 담당 검사와 사건번호를 배정했다는 연락이 갈 거라고 안내도 받았다. 고소가 접수되면, 고소장 안의 일들은 하나의 사건이 되어 진행된다. 검찰청을 나와서, 고소장 접수증과 인주 묻은 엄지손가락을 번갈아 바라보자 그제야 태어나 처음으로 누군가를 고소했다는 상황이 실감 났다. 수사가 시작된 지금, 나는 아직 법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그 목소리를 기다리며, 다시 새로운 돌을 갈고 있다.

유주얼

▶더불어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언론, 한겨레 구독하세요!
▶네이버 채널 한겨레21 구독▶2005년 이전 <한겨레> 기사 보기


[ⓒ한겨레신문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는 언론사에서 사회 섹션으로 분류했습니다.
기사 섹션 분류 안내

기사의 섹션 정보는 해당 언론사의 분류를 따르고 있습니다. 언론사는 개별 기사를 2개 이상 섹션으로 중복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닫기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