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은 되고, 신동빈·권오준·황창규는 안되는 까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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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9.16. 오후 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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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남북정상회담 수행 경제인에 이재용 삼성 부회장 포함

문재인 대통령·김동연 경제부총리 만남 이어 세번째

롯데·포스코·KT 회장의 경제사절단 배제와 정면 배치

청와대 오락가락 행보 혼선 불러…개혁후퇴 불신 자초

전성인 “이재용 정치적 사면복권…노무현 전철” 우려



문재인 대통령의 남북 정상회담 길에 동행할 경제 쪽 특별수행원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에스케이(SK)그룹 회장, 구광모 엘지(LG)그룹 회장, 김용환 현대차 부회장 등이 포함됐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총괄 수석부회장이 취소하기 힘든 사업 관련 해외 선약 때문에 부득이 불참한 것을 감안하면, 4대 그룹 총수가 망라됐다. 경제단체장으로는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박성택 중소기업중앙회장이 포함됐다. 이밖에 정보기술(IT) 기업인인 이재웅 쏘카 대표, 장병규 4차산업혁명위원장과 대북사업의 상징성이 있는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납북협력사업과 관련성이 큰 최정우 포스코 회장, 신한용 개성공단기업 협회장, 이동걸 한국산업은행 총재, 오영식 코레일 사장, 안영배 한국관광공사 사장도 포함됐다.

경제계에서 단연 관심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관련 뇌물제공 혐의로 1·2심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고 대법원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 부회장이 대통령 수행 경제인에 포함된 것은 문재인 정부가 지난해 5월 출범 뒤 대통령 수행 경제사절단 선정 기준과 관련해 사업 연관성이 있더라도 탈법·불법행위로 사회적 물의를 빚은 경우 배제한다는 원칙을 제시해온 것과 정면으로 배치된다는 지적을 낳는다.

지난해 6월 미국 경제사절단에는 롯데 신동빈 회장, 포스코 권오준 회장, 케이티 황창규 회장, 부영 이중근 회장이 신청했다가 모두 탈락했다. 국정농단세력과의 정경유착, 총수의 배임횡령 혐의, 공정거래법 위반 등으로 인한 검찰고발 등이 사유로 꼽혔다. 또 11월 인도네시아 경제사절단에서도 롯데와 포스코가 비슷한 이유로 배제됐다. 롯데는 인도네시아에서 유통사업을 크게 벌여왔고, 포스코는 한국기업으로서는 최대 투자규모인 일관제철소를 운영하고 있어 총수 참석을 위해 백방으로 뛰었으나 무위로 끝났다. 당시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검찰조사나 사법처벌도 받지 않은 포스코와 케이티 회장이 경제사절단에서 잇달아 배제된 것에 대해 “그들은 우리의 (경제) 파트너가 아니다”고 단호한 태도를 보였었다. 포스코 회장은 박근혜 정부의 비선실세 세력이 임명과정에 입김을 작용했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됐고,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결국 자진사퇴했다.

일각에선 방북 정상회담 수행은 국내 문제로 볼 수 있으니 대통령의 해외 방문 수행과 기준을 달리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정작 청와대에서는 남북 정상회담은 경제사절단 선정에서 예외인지, 아니면 선정기준 자체가 바뀐 것인지에 대해 그 누구도 제대로 설명을 않고 있다. 이 때문에 경제계에서는 “이재용 부회장은 되고, 신동빈·권오준·황창규 회장은 안되는 이유가 뭐냐”며 ‘이중잣대’ 논란이 제기된다. 공교롭게 이번 방북 수행단에는 권오준 회장의 후임인 최정우 회장이 포함됐다.

경제계에서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난 7월 인도 삼성전자 공장 방문과,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지난 8월 삼성전자 공장 방문 때 이재용 부회장과 각각 만났을 때부터 예고된 일이라는 시각이 많다. 당시 시민사회에서는 문재인 정부가 재벌의 투자·고용에 의존하는 과거 정부의 패러다임으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이 부회장의 대법원 재판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왔다. 청와대가 4대그룹에 수행 요청을 보낸 뒤 언론의 확인 요청에 대해 해당 그룹에 물어보라고 떠넘긴 것도 이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실제 청와대는 4대그룹에 대해 총수의 이름을 적시해 수행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가 대통령을 수행하는 경제인의 선정기준을 상황 변화에 따라 바꿀 수는 있다. 하지만 이재용 부회장처럼 민감한 사안에 대해서는 정부의 입장을 분명히 밝혀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게 순리다. 아무 설명없이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것은 정도가 아닐뿐더러, 기준 변경에 자신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청와대가 재벌정책 관련해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는 것은 결국 국민과 기업에 혼선을 자초할 위험이 크다. 또 지지층에도 재벌개혁 후퇴와 같은 불신만 부채질할 수 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경제학)는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공약으로 경제범죄에 대한 엄정한 법집행과 사면권 제한을 약속했는데, 이재용 부회장을 남북 정상회담에 수행하는 것은 사실상 정치적 사면복권을 해주는 것”이라며 “참여정부가 재벌과 관료에 매달리다가 개혁에 실패한 전철을 밟을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곽정수 선임기자 jskw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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