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결혼을 일찍 한 지인들은 사랑스러운 손주 사진이 온갖 꽃들을 물리치고 자신을 표현하는 한 컷으로 등극한다. 어느 날, 그렇게 꽃이나 손주가 장악(?)한 단체 대화방 프로필 사진첩에 재밌는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한눈에도 세월의 흔적이 보이는 사진이었다. 사진 속 아가씨는 한껏 치장을 하고 있었다. 만화 속에서 보던 공주님 같은 화관에 풍선처럼 부풀린 소매의 드레스 차림이었다. 게다가 새침한 미소는 어찌나 이쁘던지….
당연히 단체 대화방은 난리가 났다. 몇 살 적 모습이냐, 왜 이렇게 이쁜 거냐! 혹시 전직 왕족이었냐부터 시작해 왕자님은 어디 갔느냐까지 온갖 대화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한때 드레스를 입고 사진 찍기가 유행이었다는 대답과 함께 모두는 시간을 되돌리기에 바빠졌다. 나도 그랬노라고, 나도 소녀시절이 있었노라고, 우리도 빛나는 리즈시절이 있었다고!
뭔가를 입에 물고 엄마 옆에 서 있는 자그만 어린아이, 야외로 소풍 나간 가족들 사이에서 반듯하게 서 있는 소녀 등등 꽤 긴 시간 동안 우리들의 시간 여행은 계속되었다. 행여 질세라 볼이 터질 듯이 빵빵한 여섯 살의 나도 흑백사진으로 그 대열에 동참했다. 유치원 재롱 잔치였던 듯싶다. 무용복을 입고 어른처럼 화장을 하고 있는 내가 있다. 지금으로선 믿을 수 없게 젊던 엄마가 내 옷매무새를 만지고 있다. 백콤을 잔뜩 넣어 부풀린 머리 모양의 내가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다. 아마도 동네 미장원 원장의 솜씨였음이 분명하다.
보고 있자니 어렴풋이 그날이 생각날 것 같기도 하다. 몇십 년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있던 일들이 흑백사진 한장에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아주 즐겁고 유쾌함으로 때론 안타까운 그리움으로.
굳이 원하지 않아도 가만히 있어도 먹게 되는 게 ‘나이’다. 2022년 임인년을 맞으면서 또 한 살을 먹고야 말았다. 우스갯말로 해마다 꼬박꼬박 먹다 보니 내 나이가 몇 살인지조차 잊어버릴 지경이다. 가끔 연로하신 부모님 나이를 헷갈려 하듯 말이다. 지나고 보니 구겨진 흑백사진 속 통통한 소녀도, 공주님 같던 아가씨도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우리들의 리즈시절이었던 셈이다. 몇 년 후일지는 몰라도 어린 손주를 품에 안은 우리들의 모습도 그 순간만큼은 가장 빛나는 시간이 될 게 분명하다.
다가올 시간도 내가 오롯이 꾸려나가야 할 시간이다. 그렇다면 그 시간 속 주인공인 우리들의 리즈시절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