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 의장이 ‘인플레이션 파이터’로 변신하게 될까? 코로나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사상 최대 규모의 돈 풀기를 주도한 그가 인플레이션 방어와 경기 회복이라는 두 마리 토끼 사냥에 성공할 수 있을까?
파월 의장의 연임이 결정된 지난 22일(현지 시각) 월스트리트저널은 “첫 임기에 코로나 사태로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돈을 푼 연준 의장에 등극했던 그가 두 번째 임기에는 경제활동 재개가 초래하는 인플레이션에 맞서야 하는 완전히 다른 임무를 맡게 될 전망”이라고 했다.
파월 의장은 공화당 소속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명으로 2018년 2월 첫 임기를 시작했지만, 민주당 조 바이든 대통령의 지명으로 내년 2월부터 4년간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게 됐다. 그는 코로나라는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맞았고 사상 초유의 속도와 규모로 돈 풀기에 나서 글로벌 경제가 마비되는 것을 막아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를 다시 선택한 것은 바이든 대통령에게는 무난한 선택이지만, 파월 의장은 코로나 팬데믹에 맞섰던 첫 임기에 이어 다시 한번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개척해야 하는 어려운 과제를 짊어지게 됐다. 물가 급등에 대처하면서도 코로나 이후 살아나고 있는 경기와 고용의 온기를 꺼뜨리지 않아야 하는 임무다.
22일 미국 뉴욕 증시는 파월 의장의 연임 소식에 장 초반 상승세를 보였다. 통화 정책을 통한 경기 회복에 무게를 뒀던 그가 연임되면서 기준금리 인상 시점 등이 앞당겨질 가능성이 낮아졌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파월 의장이 인플레이션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언급하면서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하자 주가가 꺾였다. 금리에 민감한 성장주, 기술주 위주의 나스닥은 1.3% 하락했다.
코로나 사태가 발생하자 파월 의장은 연 1.5~1.75%였던 미국 기준금리를 단번에 ‘제로(0~0.25%) 수준’으로 낮추고 매달 1200억달러어치의 국채·주택담보증권(MBS)을 사들이는 방법으로 돈 풀기에 나섰다. 전례가 없는 회사채 직접 매입까지 하는 등 가능한 수단을 총동원했다. 역사상 가장 비둘기파적인(완화적 통화 정책을 쓰는) 연준 의장이 됐다. 막대한 돈 풀기에 나서면서 ‘수퍼 파워(Super Power·엄청난 힘)’에 빗댄 ‘수퍼 파월(Super Powell·엄청난 파월)’이란 별명도 얻었다. 코로나 방어라는 임무를 비교적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두 번째 임기는 상황이 정반대다. 코로나 백신 접종 확대로 인해 경제활동이 재개되면서 공급망 문제가 발생하고 석유 등 원자재 가격이 폭등해 소비자물가가 연준의 목표치(상당 기간 2%)의 3배 넘는 수준으로 치솟은 상태다. 미국의 소비자물가는 지난 5월부터 전년 대비 5%를 넘어섰고, 지난 10월에는 6%선까지 뚫을 정도로 치솟았다. 31년 만에 최고치다. 파이낸셜타임스는 “파월은 두 번째 임기에 첫 임기와 정반대의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경기 침체가 아니라 물가 상승에 대응해야 하고, 그 과정에 어쩌면 일자리 증가는 다소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라고 했다.
유가와 식료품 등 생필품 가격이 치솟으면서 바이든 정부는 지지율 하락 등 정치적 위기에 몰린 상황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파월을 차기 의장으로 지명하면서 “인플레이션을 낮게 유지하고 가격을 안정시키며 완전 고용을 달성해 우리 경제를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게 할 것”이라며 물가 안정을 강조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파월은 경제학 박사인 벤 버냉키, 재닛 옐런 등 전임 연준 의장들과 달리 변호사 출신이지만 그 단점을 변호사 특유의 정치력으로 극복한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며 “열린 자세를 가졌다는 의미로 스스로를 ‘여우 스타일’이라고 평가하는 만큼, 첫 임기와 정반대인 매파적(긴축적) 통화정책으로 비교적 순발력 있게 선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