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포1단지 3.3㎡당 5100만원 분양가 보장한 현대건설의 복잡한 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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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9.08.23. 오전 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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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도 골치, 안 해도 문제."

서울 강남 대표 재건축 단지인 반포주공 1단지 재건축이 최근 관리처분인가 무효 판정을 받으며 제동이 걸린 가운데, 시공사인 현대건설의 고민도 깊어졌다. 업계에서는 현대건설의 처지를 두고 묘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건설업계는 이달 정부가 민간택지 대상 분양가상한제 시행 발표에 이어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 1단지 1·2·4주구(住區) 재건축 사업장에서 제기된 관리처분계획 무효 확인 소송의 판결이 나오자 다양한 해석을 내놨다.

2017년 9월 27일 오후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서울 서초구 반포주공1단지 1·2·4주구 재건축 시공사 선정 임시총회에서 현대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되자 총회장 밖에서 조합 간부들과 현대건설 임원들이 손을 잡고 환호하고 있다. /오종찬 기자

현대건설은 2010년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 주택재건축정비사업 공사(현대건설·HDC현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 컨소시엄)와 2017년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사업을 잇따라 수주하면서 정비사업 분야 선두주자로 올라섰다. 현재 기준 둔촌주공 공사비는 2조6700억원, 반포1단지 공사비는 2조6000억원대다.

하지만 최근 민간 분양가상한제라는 암초가 나타나면서 시공사 현대건설의 셈법이 복잡해졌다. 업계에서는 현대건설이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2017년 현대건설이 반포주공1단지 재건축 사업권을 따내기 위해 조합에 제시한 ‘분양가 3.3㎡당 5100만원’이라는 조건 때문이다. 당시 현대건설은 "조합 측이 3.3㎡당 5100만원 이상을 요구했고 최대한 맞춰주는 것으로 사업 조건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10월부터 시행하는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면 반포주공1단지도 분양가 규제를 피하기 어렵고, 이에 따라 약속했던 분양가에 맞춰 차액을 보전해야 할 상황에 놓일 수 있다는 것이다. 가정하자면 3.3㎡당 책정 분양가가 3000만원대 수준에 그칠 경우 시공사가 2000만원씩을 조합 측에 물어 내야 하는 처지에 놓인다.

익명을 요구한 A건설사 관계자는 "이 경우 현대건설 입장에서는 수천억원대 손실을 보며 공사를 하는 꼴이 될 수 있다"며 "현대건설은 굉장히 난감한 상황에 처했다"고 말했다.

사업 입찰 과정에서 시행사가 조합에 구체적인 분양가 금액을 제시한 것은 이례적이다. 당시 시공권을 놓고 현대건설과 GS건설 간 경쟁이 치열했다. ‘분양가 5100만원 보장’ 조건은 현대건설이 사업 수주를 위한 한 수였는데, 분양가상한제 시행으로 ‘악수(惡手)’가 될 처지에 놓였다.

더구나 현재 조합 내부 갈등이 소송전으로 번지면서 사업은 계획보다 지연될 전망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부는 16일 반포주공1단지 1,2 4주구 재건축 조합원 한모씨 등 267명이 조합을 상대로 낸 ‘관리처분계획 총회 결의 무효 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렸다.

앞서 이 단지는 2017년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가 적용되기 직전 막바지로 관리처분인가 신청을 마무리해 인가를 받았다. 재건축으로 1인당 평균 3000만원이 넘는 이익을 얻으면 초과 금액의 최대 50%를 부담금으로 환수하는 제도를 피한 셈이다. 하지만 이번 판결로 당장 10월로 예정된 조합원 이주에 차질이 생긴 데다, 판결이 확정될 경우 작년부터 일괄 적용되는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 대상에도 포함된다.

일반적으로 정비사업은 시간이 곧 돈으로 여겨진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조합과 시행사가 부담하는 대출이자 등 금융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서다.

하지만 업계 일각에서는 반포주공 1단지의 소송전을 두고 "현대건설 입장에선 어찌보면 잘 된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10대 건설사에 속하는 B건설사 관계자는 "반포주공 1단지 재건축의 경우 아직 착공하지 않은 상태에서 법원 판결이 나온 거라 시공사 입장에서는 손실이 거의 없다"면서 "현대건설 입장에서는 사업이 차라리 뒤로 밀리는 게 나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관측에는 추후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가 폐지되는 등 정책 변화 가능성이 있을 수 있다는 시각이 깔려있다.

이 관계자는 "소송으로 2~3년 정도가 걸리니, 현대건설 입장에선 시공권을 쥐고 있는 상태에서 숨 고르기를 하면서 정책 변화를 노리는 게 현재로서 최고의 방어가 될 수 있다고 생각된다"고 주장했다.

앞서 이번 법원 판결에 대해 조합 측은 "상고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현대건설 측은 "일단 상황을 지켜보겠다"며 말을 아꼈다. 회사 관계자는 "조합과 비대위 간의 소송이기 때문에, 시공사가 별도로 입장을 표명하기는 어렵다"며 "판결문이 나온 뒤 조합이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지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민간 분양가상한제 적용과 ‘분양가 3.3㎡당 5100만원’ 보장에 따른 손실 가능성에 대해서도 현대건설 관계자는 "분양가상한제 시행에 관한 구체화된 세부 내용이 나오는 것을 보고 판단하겠다"며 "아직 이주도 시작되지 않아 고민할 기간은 많이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허지윤 기자 jjyy@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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