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에서 돌아와 활동하던 중 슈퍼밴드에 출연하게 됐습니다. 밴드는 대중음악의 영역인데, 이 도전에 쉽게 뛰어들을 수 있었던 계기가 있었나요. 슈퍼밴드에 도전할 수 있었던 이유가 유학시절의 경험 때문이었어요. 그 때 저는 현대곡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는데, 학교에 계신 작곡과 교수님께서 자신의 작품을 연주해달라고 요청하셨죠. 뷔르츠부르크에서 열리는 모차르트 페스티벌이었는데, 그 중 하루 현대곡이 연주 됐어요. 일렉트로닉 기타와 재즈베이스 등 다른 장르들이 엮인 작품이었고, 이 곡을 연주하는데 굉장히 재밌었어요. 그 때의 경험으로 장르에 대한 경계가 허물어졌죠. 그리고 슈퍼밴드에서도 사실 이런 악기 밴드를 결성하고 싶어서 도전했어요.
슈퍼밴드와 같은 오디션은 콩쿠르와는 또 달랐을 거예요. 우승하기 까지의 과정도 콩쿠르와는 완전히 다르고요. 콩쿠르에도 일단 엄청난 연주자들이 많아요. 그런데 클래식에서의 콩쿠르란 스스로의 실력에 맞춰 단계별로 도전할 수 있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저 역시 제 수준에 맞는 대회들에 도전했고, 거기서 수상하면서 한 단계씩 업그레이드해 나갔죠. 그에 따라 발전하는 성취감도 느낄 수 있었어요. 그런데 슈퍼밴드는 완전 달랐어요. 우선 악보라는 게 존재하지 않았거든요. 그 때 그 때마다 달라지는 음악들이 대부분이었어요. 잼 연주라고 하죠, 즉흥 연주가 다들 너무 자연스러운 거예요. 그래서 처음에는 제가 바보 같았어요. 그렇게 음악을 오래 했는데, 저만 헤매고 있는 것 같았거든요. 제가 아는 거랑은 완전 다른 음악이라 자괴감에 빠졌죠. 초반에는 제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빨리 빠져나오려고 했어요. 그래서 송희송 선생님께 말씀드렸는데, 선생님께서 의외로 “나갔으니까 무조건 끝장을 봐”라고 하셨어요. 여기서 분명 얻게 되는 것이 있을 거라고요. 그게 꼭 음악이 아니라도, 사람이든 무엇이든 얻게 될 거라고요.
악보 없이 연주하는 게 정말 적응하기 힘들었겠네요. 어떻게 그 과정을 헤쳐 나갔나요. 그래서 연습 때 녹음기를 켜뒀어요. 연습 때 했던 것들을 다 녹음해두고 악보에 적어서 집에가서 다시 들어보며 수정하고 연습하고 했죠. 그런데 다음날 가면 또 달라져 있었어요. 그래서 다시 그런 작업들을 또 반복해야 했어요. 이런 방식의 연주는 완전 첫 경험이었어요.
7월 2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의 리사이틀을 앞두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이 홀이 가지는 상징성이 대단해요. 이 곳에서 리사이틀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죠,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혼자 공연을 보러 춘천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올라 왔을 때의 그 기억을 시작으로 이 곳은 미샤 마이스키나 요요 마 같이 대가들만 리사이틀을 할 수 있는 무대라고 생각했어요. 오케스트라로써는 많이 섰지만, 솔리스트로써는 막연히 한번 서보고 싶다는 생각만 갖고 있었죠. 이렇게 빨리 오르게 될 줄은 몰랐어요. 기획사에서 대관을 넣은 것도 몰랐는데, 되고나서 ‘콘서트홀에서 연주하게 됐어요’라고 말씀해주셨어요. 너무 큰 영광이고, 그만큼 걱정도 컸죠.
이번 리사이틀 프로그램에 자신의 의도를 얼마만큼 담았는지 궁금해요. 올해 초부터 레퍼토리를 정해야 했는데, 사실 다 세팅해두었다가 바꾸고, 또 다시 바꾸고 그랬어요. 우선 무엇보다 중심에는 클래식이 있어야 했어요. 그래서 레퍼토리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죠. ‘탄츠’라는 타이틀로 어떤 클래식을 연주해야 할까 고민하다 브루크뮐러를 발견했어요. 듣자마자 ‘이 작품은 꼭 연주해야지’라고 생각했어요. 흔치 않은 작품인데, 이 녹턴을 느린 춤곡으로 연결시켰죠. 흔하지 않으면서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작품을 찾느라 시간을 많이 쏟았어요. 많이 연주되는 곡들은 피하고 싶었고, ‘클래식’이라고 했을 때 늘 떠오르는 그런 작품들은 배제하고 싶었어요. 그러면서도 편안하게 다가가고 싶었고요. 편성도 마찬가지였어요. 첼로 리사이틀을 떠올렸을 때 생각나는 첼로+피아노 형태를 피하고 싶었고, 그래서 현악 사중주와 기타, 그리고 재즈피아노까지 다양한 편성을 구성했죠. 첼로 소리는 현악기들과 있을 때 제일 매력적으로 다가간다고 생각해요. 현악기들의 울림과 떨림 그리고 앙상블의 섬세한 호흡을 들려드리고 싶어요.
무대에서 보여지는 것에도 굉장히 신경을 많이 쓰고,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 같아요. 크론베르크에서 첼리스트 미클로시 페레니를 만났고, 홀스타인 페스티벌에서 그에게 공개 마스터 클래스를 받게 됐어요. 페레니 선생님이야 말로 다른 거 필요 없이 소리 하나로 승부를 보는 첼리스트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마스터 클래스에서 이상하게도 학생들을 가르칠 때마다 각각 표정과 아우라가 달라지는 거예요. 일부러 저러시는 건가 궁금할 정도로요. 저는 보케리니를 레슨 받았는데, 표정이 어린아이처럼 밝아지셨어요. 너무 궁금해서 저는 “왜 다른 곡을 가르칠 때마다 표정과 공기가 바뀌냐”고 물어봤어요.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공개로 진행되는 마스터 클래스는 하나의 콘서트와 같다. 학생이 등장해 연주를 시작하고 무대에 내려갈 때까지 모든 과정이 연주와 마찬가지다”라고 하셨죠. “마스터 클래스를 참관하러 오시는 분들도 모두 티켓을 구매해서 오신 분들이야”라고 하시면서, “너는 또 다른 종류의 콘서트를 하고 있는 것이니 완벽하게 준비를 해서 와야한다”며 이야기 해주셨던 것이 기억나요. 소리도 중요하지만 무대에서의 제스쳐나 태도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죠.
초대권 문화에 반기를 들었죠. 그 용기가 정말 대단하고, 궁금하기도 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이 잘못된 문화의 반대쪽에 서게 됐나요. 귀국 후 독주회를 하려는데 너무 당연하게도 다들 티켓을 달라고 하는 거예요. 초대를 해주면 고마워해야 하는 상황인데, 오히려 제가 와줘서 고마워해야 했죠. 이런 문화가 이해가 안됐어요. 그래도 귀국 독주회는 한국에서의 첫 무대이니 많은 사람들을 초대 했는데 두 번째 무대에서는 단 10명만 와도 좋으니 티켓을 모두 판매하겠다고 했어요. 부모님께도 티켓을 사서 오시라고 했고, 저는 나름대로 할 수 있는 홍보를 열심히 했어요. 그런데 송희송 선생님께서도 구매해주시고,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티켓을 구매해주셨어요. 그 때 무대에서 많이 비싼 가격이 아니니 제 연주가 아니라도 꼭 티켓을 구매해서 연주를 많이 가셨으면 좋겠다고 인사드렸어요. 엄청난 변화를 바라기보다는 단지 제가 이해할 수 없었기에 초대권 없는 문화를 시작했어요. 그렇게 연주를 하다보니 무엇을 더 보여드려야 할지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지난해 독주회에서도 지루하지 않게 하려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디테일한 조명 효과도 쓰고, 무대 장치들도 활용했죠. 선을 넘지 않는 선에서 리사이틀을 하나의 영화처럼 느낄 수 있게 노력 중이에요.
밴드 활동과 클래식 연주를 병행하고 있어요. 슈퍼밴드 출연 전과 후 연주 스타일에도 변화가 있나요.
변화가 있었을 거예요. 제가 잘 못할 때도 송희송 선생님은 제 연주를 좋아해주셨어요. 선생님이 보시기에 저는 성실한 음악가였거든요. 하이든은 하이든답게, 바흐는 바흐답게 연주하는 연주자였는데, 이제는 ‘홍진호 소리가 나는 것 같다’고 말씀해주세요. 다른 장르의 음악을 경험하면서 더 발전 됐어요. 노래를 하고 있다고 느끼게 됐죠. 방송국에서는 시청자가 보자마자 느낄 수 있는 음악을 요구해요. 감칠맛을 내는 조미료를 필요로 하죠. 어떻게 연주하는 게 맞는지는 여전히 물음표지만, 균형이 중요한건 확실해요.
‘진호의 책방’을 진행하며 소리꾼 이희문, 싱어송라이터 이진아 등 다른 분야의 음악가들과도 활발히 교류하고 있습니다. 이들과 함께 작업하면서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무엇인가요. 사실 저의 윗세대에도 클래식은 대중문화에 많이 녹아있었어요. 가수 이현우의 음악에 비발디의 사계가 샘플링 된 것 처럼요. 그런데 이제는 그럴듯하게 섞여 있는 게 아니라 아예 다른 걸 만들고 싶었어요. 클래식을 중심에 두고 다른 문화를 엮는 거죠. ‘진호의 책방’에서 이를 시도하고 있는데, 얼마 전 이희문 선생님과 함께 작업했어요. 슈퍼밴드에서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선생님의 ‘노들강변’을 녹음해서 그걸 틀어놓고 성실하게 편곡을 거쳤어요. 그래서 연주를 했는데, 선생님께서 너무 정리가 되어 있는 느낌이라고 하셨어요. 제가 선생님을 너무 배려하고 있다고 하셨죠. 저에게 ‘너의 음악을 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해주시며 잘할 수 있는 곡을 연주해보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바흐도 했다가, 브람스도 해보고 엘가도 해보고 이것저것 연주했어요. 그걸 들려드리니 선생님께서 흥얼흥얼 덧붙이시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너무 잘 어울렸어요. 새로운 음악이 탄생한 느낌이었죠. 민요에 첼로를 더한 것이 아니라, 첼로에 두 음악이 치열하게 대화를 하고 있는 느낌으로 완전히 다른 음악이 탄생 됐어요. 그러면서 더 뚜렷한 길이 보이는 것 같았어요.
대중음악과 함께 작업하면서 배운 게 많았을 거예요.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 받는 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대중음악은 조금 더 직관적이고 솔직한 음악 이예요. 듣자마자 사람들을 감동시켜야 하고, 이해시켜야 하죠. 음악의 모든 초점이 거기에 맞춰져 있고요. 무조건 사람들이 좋아하게 만들어야 해요. 클래식과는 전혀 다른 접근법이었어요. 클래식은 우선 잘해야 하거든요. 작곡가의 의도를 최대한 잘 전달해야 하죠. 그 의도가 관객까지 가려면 많은 과정이 필요한 음악이에요. 악보를 정확히 잘 봐야 하고, 작곡가의 의도를 파악하는 게 먼저니까요. 그리고 연주를 하고 나오면 관객의 반응보다 제 연주가 틀리지 않았나, 괜찮았나 하는 것이 먼저였어요. 시각의 차이가 분명했죠. 슈퍼밴드 이후 음악을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어요. 그 이후 브람스의 작품으로 독주회 무대에 올랐는데 악보를 보며 청중을 먼저 생각했어요. ‘이렇게 연주하면 청중이 작곡가의 의도를 더 잘 알겠다’, ‘이렇게 연주하면 더 좋아 하겠다’라는 시각으로 악보를 바라봤죠. 음악이 청중으로 향했어요.
슈퍼밴드로 유입된 팬들이 클래식에 녹아드는 과정을 모두 봐왔을 거예요. 도대체 왜 클래식은 인기가 없을까요. 너무 잘 알거 같아요(웃음). 클래식은 하나의 음악회가 만들어질 때까지 대부분 연주자 혼자 쏟는 정성이 압도적으로 많아요. 기획사에 소속된 연주자가 아닌 이상, 연주자 혼자서 모든 걸 해야 해요. 그런데 대중음악은 무대 연출만 해도 엄청나고, 하나의 무대를 위해 많은 분야의 전문가들이 함께 해요. 그래서 활동을 하며 고민을 많이 하게 됐죠. 클래식 연주는 모두 비슷하잖아요. 나무 바닥 위에서 검은색 정장을 입은 연주자가 나와서 연주를 하죠. 연주를 듣는 동안에는 조용히 있어야하고, 악장과 악장 사이에 박수를 쳐도 안되고, 소리를 질러도 안돼요. 음악회에 익숙한 사람들은 이를 이해하고 즐기지만, 처음 오는 사람들은 숨 막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러면서 유명한 연주자들이 새로운 시도도 하면서 흥미롭게 만들려는 노력이 많아졌어요. 무대 위 조명이나 장치들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옷도 화려하게 입고요. 음악의 본질적인 부분만 잘 지켜진다면 저는 이런 변화는 긍정적이라고 생각해요. 관객들을 만족시켜야 하니까요.
그럼 진호 씨를 계기로 팬들이 클래식에 발을 들여 놓았다면, 그들도 조금씩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나요. 정말 달라졌어요. 사실 이렇게까지 기대는 안했어요. 그런데 제 음악으로 클래식을 접하신 분들이 다른 아티스트의 음악회도 많이 다니신다고 하시더라고요. 제가 가장 원했던 모습이었어요. 그리고 그렇게까지 안하셔도 되는데 공부를 참 많이 해오세요. 예습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연주에 오실 때는 꼭 예습도 해오시고요. 저와 마찬가지로 제 동료들도 어떻게 공부해왔는지 다 아니까 더 많은 사람들이 연주를 찾아주셨으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