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민 점유율을 최대한 높여라"...공정위도 놀랄 DH의 '요기요 매각-배민 인수' 숨은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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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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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기요 매각 전 배달의민족 시장 지배력 강화 '꼼수' 가능성 제기돼
공정위, 방지 차원서 '행태적 조치' 내렸지만 무력화 방안 여전
DHK 서브 브랜드였던 '배달통' 사양길…요기요, 배달통 전철 밟나

요기요 매장 앞에 주차된 요기요 배달 오토바이./ 조선DB

독일에 본사를 둔 글로벌 푸드테크 기업 딜리버리히어로(DH)가 국내 1위 배달 플랫폼 '배달의민족'(배민)을 품는 대가로 2위 업체인 요기요와 4위 배달통을 매각한다. 공정위가 배민 인수 조건으로 제시한 딜리버리히어로코리아(DHK)의 6개월 이내 매각 명령을 수용한 결과다.

업계에서는 DHK가 확보한 요기요의 시장점유율 30%(닐슨코리아클릭 9월 기준)를 배민(시장점유율 59.7%)으로 옮기는 전략을 쓸 가능성이 크다며 모니터링을 적극적으로 해야한다고 제언한다.

투자업계에서 나오는 DH의 요기요 매각 시나리오는 이렇다. 공정위가 매각 시점을 못 박은 상황에서 구매 의사가 있는 기업이나 사모펀드가 시장 평가보다 낮은 금액으로 인수 의사를 타진한다. 요기요는 시장에서 제 가격을 받지 못한다며 매각 일정을 최대한 지연한다. 그 사이 배민은 공격적인 마케팅을 펼치고, 요기요의 경영은 소홀히 하는 방식으로 자연스럽게 고객들이 배민에 정착하게 한다. 이를 통해 배민의 시장점유율을 70% 수준으로 올리고, 요기요는 마감 시한에 맞춰 매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정위도 이같은 꼼수를 우려해 DH에 '현상 유지 명령'이라는 조치를 내렸다. 각 배달앱 간 독립 운영을 보장하라고 지시하고, 수수료율을 변경하거나 프로모션 금액 차별 등을 금지한 것이다.

하지만 이같은 조치를 무력화할 수 있는 꼼수는 많다는 게 M&A에 정통한 투자업계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대표적인 게 신규 서비스를 론칭하면서 서비스 대금을 대폭 올리는 방식이다. 실제로 요기요가 새롭게 선보인 '요기요 익스프레스'는 타 배달앱 대비 배달료가 비싼걸로 유명하다. 요기요 익스프레스는 AI 솔루션을 적용해 배달 시간을 단축시킨 서비스다.

지난 7월 서울 서초 지역에서 시범적으로 운영한 뒤, 이달 전국으로 서비스 지역을 확대했다. 한 사용자는 "반포 한 스파게티 매장에서 주문 시, 동일 거리임에도 쿠팡이츠는 배달료가 1900원, 배민은 1100원인 반면, 요기요익스프레스는 4900원을 받는다"며 "전반적으로 요기요에서 주문할 때 비용이 더 많이 든다"고 말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신규 서비스를 선보이면 대부분 저가로 공격적인 마케팅을 하는 게 보통인데, 요기요 익스프레스는 정반대"라는 말이 나온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신규 제품이나 서비스가 동일한 제품·서비스의 매출을 떨어뜨리는 카니발리제이션(자기시장잠식) 현상처럼 충분히 연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DHK의 또 다른 배달앱이었던 배달통도 요기요에 주력한 DHK의 경영 전략에 따라 시장에서 사양길을 걷고 있다. 모바일 앱분석 업체 '앱애니'의 배달앱 업체 점유율에 따르면 2019년 1월 배달통의 점유율은 7.9%였으나, 2019년 12월 3%로 하락했다. 배달통의 지난 9월 점유율은 1.6%. 20개월 사이 6.3%포인트나 떨어진 셈이다.

배달통이 추락한 가장 큰 이유로 서비스 품질 하락과 홍보·마케팅 축소 등이 꼽힌다. 올해 국회 국정감사에선 이같은 시장 점유율 축소가 기업 결합 심사에서 유리한 환경을 만들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이동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배민과 DH가 신규사업자의 시장진입 가능성을 보여주기 위해 고의적으로 배달통을 죽인 것"이라며 "정부당국이 면밀히 조사해야 한다"고 했다.

앞서 DH는 지난해 연말 한국 지사격인 DHK를 유한회사에서 유한책임회사로 법인 형태를 변경한 바 있다. 유한회사는 실적 공시 의무가 있지만, 유한책임회사는 그렇지 않다. 이에 대해 업계에선 배민을 인수한 후 독점 지적을 피하기 위해 법인 형태를 변경한 것이라는 해석이 많았다. 업계 관계자는 "DHK 법인 형태 변경과 배달통의 갑작스런 추락 등 DH의 행보에 의문이 많은 건 사실"이라면서 "DH가 우아한형제들과의 기업 결합을 아시아 배달 시장 진출이라는 명분으로 포장했지만, 그 안엔 국내 시장에서의 우월적 지위 확보라는 실리도 들어 있다. DH로선 실리를 포기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론도 있다. 투자업계에서 나오는 '배민 밀어주기 전략'은 다소 과한 감이 있다는 것이다. 언론과 정부가 주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DH가 공정위의 행태적 조치를 무시하는 행보를 하긴 어려울 것이란 점에서다. 또 요기요의 가치 하락은 결국 매각 금액 절하로 이어져 DH에도 이익이 되지 않을거란 분석이다.

경제법을 전공한 이봉의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공정위가 내린 행태적 조치에 따라 DH는 요기요와 배민의 프로모션이나 마케팅 차별을 할 수 없다"면서 "6개월 이내 매각해야 하는데 그 사이에 요기요의 기업 가치를 경쟁 구도에서 의미있는 수준만큼 하락시키기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윤희훈 기자 yhh22@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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