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기차역, 전 세계 IT 스타트업의 '성공 환승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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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1.01. 오전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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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파리(프랑스)=이해인 기자] [[테크시티 파리]세계 최대 스타트업 캠퍼스 '스테이션F' 방문기]

프랑스 파리 동남쪽 13구에 위치한 세계 최대 스타트업 캠퍼스 '스테이션F'. 24시간 출입이 가능한 이곳은 늦은 시간까지 청년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파리(프랑스)=이해인 기자

#지난 13일(현지시간) 저녁 9시. 파리 동남쪽 13구 끝자락에 위치한 버려진 옛 기차역.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났지만 젊은 파리지앵(parisien)들의 열정으로 대낮처럼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다. 프랑스의 전설적인 엔지니어 유진 프레시넷의 숨결을 간직한 이곳은 올해 6월 말 통신 부호 자비에르 니엘에 의해 세계 최대 규모 스타트업 캠퍼스 ‘스테이션F’로 재단장했다. 마치 에펠탑을 가로로 눕혀놓은 것과 맞먹는 길이의 스테이션F는 요즘 유럽에서 가장 뜨는 핫플레이스다. 프랑스를 IT(정보기술)시장의 신흥 강자로 부상시킬 진앙지로 주목받으면서부터다.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국가들은 90년대 IT 붐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 미국 IT기업들이 유럽시장을 장악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와 맞물려 미국 중심의 디지털 경제 패권이 더욱 굳혀지면서 유럽 국가들의 위기감은 상당하다. 이제라도 IT산업으로 제2의 유럽 르네상스 시대를 열어야 한다는 절박감 속에 탄생한 곳이 바로 스테이션F다. 전문 VC(벤처캐피탈)부터 스타트업에 각종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동반 성장하는 인큐베이터, 스타트업들이 협력할 수 있는 페이스북이나 마이크로소프트(MS), 로레알 등 굵직한 글로벌 기업까지 한 지붕 아래 모두 모여있는 이곳에는 2000여명의 프랑스 청년들이 자신의 꿈을 키우고 있다.

프랑스 파리에 위치한 세계 최대 스타트업 캠퍼스 '스테이션F'의 내부 모습. 수 많은 프랑스 청년들이 창업을 위해 늦은 시간까지 고군분투하고 있다./ 사진=이해인 기자

◇‘넥스트 유니콘’ 꿈꾸는 佛 청년들…스테이션F로 ‘집결’=이튿날인 14일 오전, 스테이션F에서 만난 프랑스 청년 창업가 라미아 하나파(28). 그는 이곳서 ‘로키즈(Lok-iz)’라는 부동산 중개 플랫폼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로키즈는 부동산 임대인과 임차인을 이어주는 플랫폼이다. 우리나라 직방 혹은 다방과 콘셉트가 비슷하다. 파리는 인구 밀집도가 높아 집을 구하는 게 하나의 크고 번거로운 일 중 하나다. 때문에 로키즈는 최근 프랑스 현지에서 가장 주목받는 스타트업 중 한 곳이다. 하나파는 “부동산 중개일을 하던 아버지에게서 영감을 받아 3형제가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에서 3년 전 창업했다”며 “프랑스뿐 아니라 더 큰 무대에 도전하기 위해 이곳으로 이전했다”고 귀띔했다.

하나파는 현재 미국 시장 직접 진출을 위해 센트리21 등과 제휴방안을 논의 중이다. 지난해 프랑스 스타트업으로 유일하게 버락 오마바 미국 전 대통령과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최고경영자)가 의장을 맡은 ‘2016 GES(글로벌 기업가 정신 정상회의)’에 초대돼 발표했던 게 물꼬를 틔었다. 프랑스와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 전역을 공략, 글로벌 부동산 플랫폼 회사로 거듭나는 게 그의 야심찬 포부다.

이곳 스테이션F에는 하나파와 같은 젊은 창업가들이 ‘넥스트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인 스타트업)’을 꿈꾸며 늦은 밤까지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주간 법정 근로시간 35시간에 2시간 점심식사를 보장받는 등 ‘노동자들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프랑스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광경이다.

스테이션F 곳곳에 위치한 휴게 시설과 미팅룸./ 사진=이해인 기자

창업과는 거리가 멀 것 같은 시앙스포(Science PO; 파리정치대학) 출신들도 스타트업에 뛰어들고 있다. 스테이션F에서 만난 클로이 로체루일(29, 여)도 그들 중 한명이다. 시앙스포 졸업 후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유명 온라인 매체 매셔블(Mashable)에서 일하다 1년 전 ‘타고(TARGO)’라는 미디어 스타트업을 차렸다. 타고는 가상현실(VR) 360카메라 등을 이용해 실감 나는 뉴스 콘텐츠를 만드는 게 모토다. 주요 정치 이벤트나 사건 사고 현장에 멤버들이 직접 나가 360 카메라 등을 활용해 촬영, 콘텐츠를 제작한다. 로체루일은 “정통 언론들이 고수하는 전형적인 기사의 틀을 깨고 뉴스가 발생하는 현장을 기술을 이용해 보다 생생하게 전하고 싶었다”며 “지난 프랑스 대선 현장 등을 360 카메라로 촬영해 뉴욕타임즈 등에 판매한 적도 있다”고 자랑했다. 로체루일에 따르면 자신 외에도 시앙스포를 나온 친구들 중 스타트업을 고민하는 이들이 많다. 이곳 젊은이들 사이에서 새로운 것에 도전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에 대한 흥미가 높기 때문이란다. 그는 “요즘 주변을 둘러보면 대기업 입사보다 기업에 창업을 선호하는 분위기”라며 “혁명가적 이미지와 함께 자기 시간을 자유롭게 콘트롤 할 수 있다는 것도 매력 중 하나로 꼽힌다”고 전했다.

프랑스 파리 스테이션F의 파트너 공간 중 네이버 스페이스 그린에 입주한 실감형 저널리즘 콘텐츠 제작 스타트업 '타고'(TARGO) 팀원들이 신규 콘텐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이해인 기자

◇弗 민관 합작모델, ‘테크 르네상스’ 시대 연다=프랑스 현지에서 불고 있는 뜨거운 창업 열기는 정부와 민간의 콜라보레이션 결과다. 민간이 주도하고 정부가 이를 뒷받침한다. 실리콘밸리식 생태계 모델이다. 스테이션F만 하더라도 자비에르 니엘이 자비 2억5000만 유로(약 3200억원)을 들여 설립한 시설이다. 각종 인큐베이터 프로그램과 VC(벤처캐피탈), 글로벌 기업까지 스타트업 성장에 필요한 모든 생태계를 갖추고 있다. 3D 프린터부터 자수 기계까지 다양한 실험을 할 수 있는 각종 기구로 가득한 메탈샵, 자신만의 기구가 필요할 때 구매할 수 있는 테크샵,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수 백개의 미팅 공간 등을 갖추고 있다. 협력기관들의 공간으로 꾸며진 크리에이티브존에는 페이스북부터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웹서비스 등 굵직한 IT서비스 업체와 BNP파리바, 누마, 라프렌치테크 등 80여개 기업과 VC, 기관이 스타트업을 위한 ‘3분 대기조’를 자처하고 있다. 이렇듯 한 지붕 아래 스타트업 생태계에 필요한 인적, 물적 자원을 모두 몰아놓은 셈이다. 내년에는 이곳에 24시간 이용 가능한 레스토랑과 숙소도 마련된다. 지방과 해외에 온 창업가들의 주거까지 해결해주겠다는 것이다. 이곳은 앞으로도 정부의 지원 없이 민간 자본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정부가 손을 대는 순간 자율성과 창의성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셰어존에 위치한 메탈샵에서는 3D 프린터 등 각종 장비를 이용해 시제품을 만들어볼 수 있다./ 사진=이해인 기자

대신 정부는 정책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실제로 스테이션F 곳곳에서 만난 스타트업들은 하나같이 프랑스 정부 지원에 대한 칭찬부터 쏟아낸다. 스타트업 육성 기관 ‘라 프렌치 테크’를 출범, 정부가 직접 스타트업에 투자도 하고 각종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 정책을 시행한다. 최근에는 창업을 했다 실패하더라도 직장에 다니다 실업한 것과 동일하게 실업급여를 적용하는 정책도 내놨다. 이에 힘입어 현재 프랑스에서는 이커머스, 차량 공유 분야의 현지 서비스들이 구글과 페이스북, 유튜브, 아마존과 같은 미국산 서비스들에 맞서 빠르게 점유율을 높여가고 있는 추세다. 다른 나라의 우수 인재들이 프랑스 현지에 유입될 수 있도록 해외 인재 정착 프로그램도 갖추고 있다. 프랑스 정부의 적극적인 스타트업 육성책 덕분에 파리는 현재 유럽 어느 도시보다 창업하기 좋은 곳으로 각광받고 있다.

현지에서 만난 인도 출신 엔지니어 샹카르 아룰(30). 그는 미국 유명 공과대학인 버지니아공대를 졸업한 뒤 모국도 미국도 아닌 프랑스 파리에서 올해 창업했다. 빅데이터 분석기업인 제트팩데이터가 그가 설립한 회사다. 제트팩데이터는 빅데이터를 분석해 그 안에 의미 있는 데이터들만 뽑아 그래픽 등으로 보여주는 데이터 분석 시스템을 개발했다. 은행에서 데이터 사이언티스트로 근무하며 데이터의 중요성을 깨닫고 누구나 데이터를 잘 가공, 이용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창업에 뛰어들었다고 한다. 그는 프랑스 시장에서 테스트를 거친 뒤 유럽과 북미 지역으로 서비스를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향후에는 아시아권 공략도 고려 중이다. 아룰 대표는 “사업을 크게 키우고 싶은 창업가라면 프랑스에서 창업하라는 말이 나온다”며 “좋은 아이디어만 있다면 정부의 지원금도 받을 수 있고 정부 차원에서 진행하는 스타트업에 대한 각종 세제 혜택과 EU 메리트까지 누릴 수 있어 초기 창업가라면 누구나 프랑스를 고민한다”고 말했다.

스테이션F에서 만난 샹카르 아룰 제트팩 데이터 대표./ 사진=이해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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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프랑스)=이해인 기자 hilee@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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