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찬의 軍] 매년 반복되는 ‘4월 위기설’…실체는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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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8.03.03. 오전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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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동계올림픽이 2월 25일 폐막식을 끝으로 긴 여정을 마무리했다. 북한의 거듭된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로 얼어붙은 한반도 정세는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단일팀과 예술단 방문 등이 이어지면서 서서히 풀리는 듯 했다. 무엇보다도 2016년 2월 개성공단 폐쇄 이후 단절됐던 남북 연락채널이 복원되면서 대화의 물꼬를 튼 것은 가장 큰 성과로 꼽힌다. 정부가 조만간 파견할 대북 특사가 북미 대화 재개를 위한 동력을 확보한다면 한반도 긴장 완화 속도는 더욱 빨라질 수 있다.
북한이 2017년 11월 29일자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을 통해 공개한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5 시험발사 모습. 연합뉴스
올림픽이 끝나자마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4월 위기설이 등장했다. 최근 들어 매년 초부터 ‘4월에 미국이 북한을 공격할 것이다’ ‘4월에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날 것이다’라는 4월 위기설이 제기된 바 있다. 당시에는 북한이 탄도미사일 발사를 지속하고 미국이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투입하는 등 한반도에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감돌았지만 이번에는 평창올림픽으로 남북 관계에 훈풍(薰風)이 부는 상황에서 위기설이 제기됐다. 이렇다 보니 매년 초만 되면 4월 위기설이 등장하는 것이 연례행사가 됐다는 말도 나온다.

◆북한 공격 징후, 지나치게 과장돼

4월 위기설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제시되는 것이 코피(Bloody Nose) 전략이다.

북한 일부를 선제타격해 북한의 핵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코피 전략은 지난해 말부터 미국 언론을 중심으로 거론되어 왔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는 코피 전략에 대해 “언론이 만들어낸 허구”라고 부인하지만 미국 정치권을 중심으로 빠르게 번지면서 실제로 존재하는 것처럼 인식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북한 핵문제가 본격화된 1990년대부터 대북 선제타격 필요성이 제기됐고,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 미국 핵추진 항공모함과 전략폭격기, 스텔스 전투기 등 첨단 전력이 증강되고 있는 것도 코피 전략을 실제 군사옵션으로 믿게끔 하고 있다.
미국 해군 니미츠급 핵추진항공모함이 훈련을 위해 속도를 높여 이동하고 있다. 미국 해군 제공
미군 전력의 태평양 지역 활동이 증가하는 것은 사실이나 대북 군사옵션과는 거리가 멀다. 현재 일본 요코스카(橫須賀)에는 핵추진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 사세보(佐世保)에는 강습상륙함 와스프함이 머물고 있다. 또다른 핵추진항공모함 칼빈슨호와 강습상륙함 본 험 리처드함, 병원선 머시함과 고속수송선 폴 리버함 등은 남중국해에서 활동중이다. 이를 두고 “핵항모와 강습상륙함, 병원선과 수송선까지 몰려오는 것은 군사옵션이 임박한 징후”라는 주장이 SNS를 중심으로 퍼지고 있다.

이는 과장된 해석이다. 미국 해군의 움직임은 현재 동남아 지역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본 험 리처드는 태국 해안에서 진행중인 다국적 상륙훈련 코브라 골드(Cobra Gold)에 참가했다. 6000여명의 병력을 파견한 미국은 친중 노선으로 기울고 있는 태국과의 관계 강화를 위해 강습상륙함과 해병대 병력을 대거 투입했다.
미국 해군 고속수송함 폴 리버함이 스리랑카에 입항해 예인선과 조우하고 있다. 미국 해군 제공
칼빈슨호와 머시함, 폴 리버함은 미국 해군이 남중국해에서 연례적으로 진행하는 다국적 재해대응훈련 퍼시픽 파트너십(Pacific Partnership)에 참가하고 있다. 미국 해군에 따르면 미국, 호주, 프랑스, 페루 등이 참가하는 퍼시픽 파트너십에 참가하는 함정들은 스리랑카,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팔라우, 태국 등을 방문해 인도주의 활동을 펼칠 예정이다. 이달 초 베트남전쟁 종전 직후 처음으로 베트남을 방문하는 항모 칼빈슨호도 인도주의적 활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미국은 남중국해 일대 국가의 재해구호를 지원하고 합동훈련을 실시해 반미 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안보협력을 강화해 중국을 견제하고 있다.

주한미군 가족을 철수시키거나 한국에 부임하는 미군 장병들의 가족동반을 금지한다는 말도 계속 나오고 있다. 미국이 군인의 가족 동반을 금지하는 것은 해당 지역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하지만 미국 국방부는 여러 차례에 걸쳐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했다. 다만 20여만명으로 추정되는 한국 내 미국인의 유사시 철수 관련 계획은 정기적으로 업데이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이 지난주 하와이에서 북한을 겨냥한 비밀작전계획을 점검한 것도 북한과의 군사적 충돌 시나리오를 사전 검토한 것으로 실질적인 군사행동을 위한 포석은 아니다. 우리 군도 마찬가지이지만 미군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수립한 작전계획을 수시로 점검하면서 유사시 군사개입이 신속하게 이뤄지도록 준비한다. 실제 대북 군사옵션이 가동된다면 토마호크 순항미사일과 B-2 스텔스 폭격기를 비롯한 미군 첨단 무기가 총동원되지만 그와 관련된 군사적 움직임은 아직까지는 포착되지 않고 있다. 미국 육군이 155㎜ 포탄 생산량을 대폭 늘린 것은 이라크와 시리아, 아프가니스탄에 작전 소요 충족과 소모한 포탄 보충 및 비축 차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위기설은 불안과 불확실성을 먹고 자란다

한반도에서 군사적 충돌이 발생할 조짐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도 위기설이 끊이지 않는 것은 그만큼 정세의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이다.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김여정 조선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당 제1부부장)과 김영철 조선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당 통일전선부장)이 방남해 문재인 대통령 등을 만났지만 비핵화에 대한 뚜렷한 언급은 없었다. 미국은 비핵화를 요구하면서 해안경비대 함정을 동중국해에 파견하는 등 압박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포스트 평창’ 국면이 북미 대화로 이어질지, 대립 구도가 지속될지 불투명한 상황에서 약간의 사실을 부풀린 위기설은 사람들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북한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이 `핵무기 병기화 사업`을 현지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지난해 9월 3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예측할 수 없는 말과 행동도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하루에 두 세차례씩 미사일을 발사하고, 미국 정찰위성까지 따돌리면서 전격적으로 핵실험을 감행하며, 일본 열도 너머 서태평양으로 미사일을 쏘는 등 ‘미치광이 전략’을 구사한다. 상상 그 이상의 모습을 자주 보여주는 북한이 평창올림픽과 패럴림픽이 끝나는 3월 말 이후에는 어떻게 나올까에 대한 불안감이 클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부터 ‘화염과 분노’(Fire & Furi) 등 거친 표현을 써가며 북한을 비난했다. 군사옵션을 연상하게 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미국 정치권에서 핵무기 사용권을 상징하는 핵가방을 트럼프 대통령이 사용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될 정도로 예측불허인 트럼프 대통령의 언행은 ‘정말로 북한 공격명령을 내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갖게 했다.
미국 해군 F/A-18 전투기가 항공모함에 착함하고 있다. 미국 해군 제공
한반도 정세에 대한 불안과 불확실성이 위기설의 씨앗 역할을 한다면, 한미 연합훈련은 위기설을 자라게 하는 퇴비다. 픽션보다 팩션(팩트+픽션)이 더 설득력을 갖는 것처럼 미군의 움직임만큼 위기설에 적절한 팩트도 없다. 위기설이 한미 연합 키 리졸브(KR) 훈련과 독수리(FE) 연습,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 등이 진행되는 3~4월과 8월에 집중되는 이유다. 미군 전력이 훈련을 위해 한반도에 전개되는 상황을 대북 군사옵션으로 뒤바꾸면, 북한 ‘핵포기 불가’ 고수→미군 전력 한반도 증파→한미 연합훈련→북한 미사일 발사→대북 군사옵션 발동 등으로 이어지는 위기설이 완성된다.

미군이 우리 군과 연합훈련을 실시하거나 미군 전력의 한반도 전개를 ‘위기’로 바라보는 위기설의 시각은 한미 연합방위태세의 정당성을 흔들 수 있다.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을 ‘한반도에 전쟁의 불구름을 몰고 오는 북침전쟁연습’이라 주장하며 핵개발 명분으로 내세워왔다. 한미 연합훈련을 위기 요소로 본다는 측면에서 북한의 주장과 위기설이 일맥상통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는 한반도 위기 원인을 북한이 아닌 미국에 떠넘기는 결과를 초래한다. 한미 연합훈련은 1953년 7월 휴전협정이 체결된 뒤 북한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고자 연례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한반도 위기를 촉발하는 요소가 아니며, 한반도 위기를 만드는 북한의 행동을 억제하는 요소다.

평창 패럴림픽이 끝나는 3월 말 이후 한반도 정세가 어떻게 진행될 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것은 위기설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점이다.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을 가진 나라를 상대로 어중간한 수준의 타격을 주는 코피 전략은 북한의 반격을 초래해 전면전으로 확대될 우려가 있다. 확전을 막으려면 미국 첨단무기를 총동원해 북한 전역을 일시에 공습함으로서 압도적인 힘의 우위를 보여줘야 한다. 이는 초강대국 미국이라도 단기간 내 준비할 수 없고, 비밀리에 진행할 수도 없는 군사옵션이다. 준비과정이 우리 군과 정부는 물론 중국, 러시아, 일본 등에 모두 노출된다. 위기설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더욱 낮아지는 대목이다.

위기설은 말 그대로 설(說)일 뿐이다. 한반도 정세를 주의 깊게 지켜보면서 일상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대형마트에서 라면과 생수를 사재기하는 것보다 더 생산적인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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