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꿍딴지] “임영웅 좋아서 해봤다” 예비 찐팬의 극한 생일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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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6.20. 오전 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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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 없는 생일파티 가봤어?”

직접 축하 노래를 불러줄 수 없어도 좋대. 사진과 음악만으로도 설렌대. 6살쯤 된 꼬마부터 80세 넘는 어르신까지 모두가 한마음이래.

어디냐고? 바로 임영웅 없는 임영웅 생일파티! 맞아. ‘미스터 트롯’ 대세 트로트 가수 그 임영웅이야.

요즘 팬들이 스타 생일을 축하하는 방법이래. 카페를 꾸미고 여기에 모여서 축하를 하는 거야. 굿즈를 나눠주기도 해. 여러 카페에 가보거나 스타와 관련된 장소를 찾아다니는 생일투어도 인기라지.

이게 요즘 트렌드? 그럼 우리도 해보자! 팬들이 왜 그곳에 모이는지 또 뭘 하면서 노는지. 궁금하지 않아?

이른바 ‘임영웅 생일투어’ 같이 떠나볼래?


바야흐로 ‘영웅시대’

임영웅은 ‘미스터트롯’ 전에도 가수 활동을 꾸준히 했어. 2016년 싱글 앨범 ‘미워요 / 소나기’로 데뷔한 뒤 여러 곡을 냈지. KBS1 ‘전국노래자랑’이나 ‘아침마당’에 출연해 실력을 선보이면서 인지도를 쌓기도 했고.

임영웅은 올해 서른 살. 1991년 6월 16일생이야. ‘미스터트롯’에서 ‘진’에 오른 이후 얼마 전에 처음 생일을 맞은 거지. 아마 인생 최고의 생일 아니었을까.

가수 임영웅이 16일 생일에 진행한 유튜브 라이브 방송 화면이야.

사실 꿍미니는 요즘 트로트 열풍을 보면서 생각이 많았어. 특히 ‘진’ 임영웅은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데. 문득 궁금한 거야.

“임영웅 시대가 온 이유는?”
“트로트 팬덤 문화는 어떨까?”

임영웅 생일투어에서 팬들을 만날 수 있을 테니 한번 가보자. 임영웅 공식 팬카페는 ‘영웅시대’거든. 회원 수는 무려 10만명 이상. 꿍미니는 마음으로 외쳤어.

‘오늘은 (나도) 영웅시대!’

귀여운 곰인형과 영웅시대 쿠션.

투어 첫 번째 [스타가 있어야 할 자리]

지난 15일 오전 10시반. 회사 아닌 서울 지하철6호선 상수역에서 하루를 시작했어. 이 근처에 임영웅 생일카페가 많대.

첫 목적지 ‘고은별’ 카페에 금방 도착했어. 문을 열고 ‘헉’ 소리가 나왔다. 줄이 꽤 길어. 사장님도 놀랄 정도래. “사흘 동안 1000명쯤 오셨어요. 최정상 아이돌급 인기예요.” 임영웅 컵홀더는 다 나가고 보틀만 남았대. 얼른 샀어. 한정판을 손에 넣은 짜릿함(이때부터였을까. 임영웅 굿즈를 수집하기 시작한 게).

카페는 영웅 세상이야. 여기도 저기도 임영웅. 스피커에서도 임영웅 노래가 나와.

텀블러 디자인이 두 종류였어. 어떤 걸 고를지 고민되더라.

결국 왕관 쓴 임영웅 텀블러를 골랐어. 사진을 배경에 두고 한 컷 찰칵.

“여기, 여기 갔다가, 마지막 여기 갑시다”

꿍미니 귀에 팍 꽂힌 한 마디. 말투부터 ‘찐팬’ 기운이 느껴졌어. 생일투어를 하나 봐.

세 사람이 친해 보여서 ‘오랜 절친이구나’ 했어. 알고 보니 팬클럽에서 처음 만난 40대 누나 팬들이래. 새벽부터 대전에서 올라와 녹화장도 다녀왔대. 처음엔 살짝 놀라서 “대전요?” 하고 물었어.

그런데 생각해보니 말이야. 보고 싶은 사람을 위해 어디든 갈 수 있는 게 사랑이잖아. 꿍미니는 좋아하는 친구를 몇 시간 보려고 서울에서 부산까지 가봤어. 좋아하는 사람에게 시간과 정성을 쏟는 건 팬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창문에 풍선이 붙어 있으니까 생일파티 분위기 물씬.

팬들은 말했어. “트로트가 올드하다는 이미지가 있잖아요. 임영웅은 댄디하고 젊은데 담백하게 트로트를 하니까 매력 있어요”(정선희)

‘스타’ 임영웅을 응원하기도 했지. “하나하나 조심스러울 텐데 조금 편해져도 팬들은 좋아할 수 있어요. 하고 싶은 것 다 해보면 좋겠어요”(임혜경)

임영웅이 팬들과 오래 가까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더라. “유튜브 예전 영상을 보면 관객과 노래하고 호흡하는 모습이 많거든요. 저희는 ‘가수 임영웅’을 좋아하는 거니까 노래하는 임영웅을 더 많이 만나고 싶어요”(김진현)

임영웅의 꿈과 행복을 응원한다. 그런데 한편으론 그가 너무 멀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런 얘기지. 공감되더라. 스타가 있어야 할 자리는 어디일까? 너무 멀지도 너무 가깝지도 않은 그 어느 곳이겠지?

사진에서 임영웅 가수의 다양한 표정을 볼 수 있었어.

투어 두 번째 [팬들이 마련한 미니 콘서트]

점심을 먹고 나니 벌써 오후 2시. 엇. 저기 또 ‘임영웅 생일 축하해’가 보여. 홀린 듯 다가갔어. 우리 완전 몰입했네. 여기는 ‘카페 픽’이라는 곳이야.

카페에서 받은 컵홀더랑 엽서. 색감이 예쁘다.

한쪽 벽에 임영웅 그림들이, 다른 편에는 사진들이 가득 있었어. 구경 잘 하고 인증 사진도 남겼다.

대형 텔레비전에 팬들이 무대 영상을 틀어놓았어. 크게 보니 좋더라. 축구 경기 있는 날 사람들이 치킨집에 가는 이유를 알 것 같은 기분. 텔레비전 1열에 앉았다가 너무 빠졌나 봐.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30분 넘게 지나갔어. 갑자기 마음이 다급해졌어. 생일투어 탐험가는 어서 자리를 떠야지.

영웅님. 노래 잘 들었어요. 이만 안녕.

사진으로는 작아보일 수 있는데, 벽면을 거의 가득 채우는 크기였어. 임영웅 가수의 무대를 크게 보니까 진짜 콘서트 같은 기분.

투어 세 번째 [임영웅이라는 이유 하나]

5분쯤 걸었더니 카페 ‘크리스 가든’이 보였어. 3층이라 후다닥 달려 올라갔지(사실 엘리베이터를 탔어). 구경하는 게 재밌었어. 전시회 느낌. 이 맛에 투어한다. 특히 병풍 모양 사진이랑 미니 등신대가 마음에 들었어. 임영웅 역사를 한 컷에 보는 것 같아서.

감격 눈물도 있고, 위풍당당 ‘진’의 모습도 있고.

“저기, 실례지만, 이거 인스타그램, 어떻게 해요?”

누군가 물어봐서 돌아보니 우리 엄마 또래로 보이는 팬이었어. 임영웅 생일 축하 해시태그를 달려고 인스타그램에 가입하셨대. 진심이 느껴져서 괜히 나도 감동 받아버렸어.

생일 이벤트 기획자도 만났어. 닉네임 ‘임영웅하는삶’은 이렇게 말했어. “오시는 팬들이 좋아하니까 뿌듯해요. 서로 다른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임영웅이라는 이유 하나로 모였잖아요. 다 가수님 덕이죠.”

한참을 대화하다가 물었어. “영웅님에게 전하고픈 말 있으세요?” 앗. 대체 뭘 잘못 말한 거지? 기획자가 몇 초 만에 눈물을 후두둑 떨어뜨렸어. 울먹이며 전한 말은 이거야.

“전국에서 팬들이 축하하고 있어요. 영웅님,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생일 보내셨으면 좋겠어요. 꽃길만 걸으세요”

옆에 앉은 팬들은 “우리 기획자 왜 울려요ㅠㅠ”라며 다독였어. 아니, 나는 왜 또 코끝이 찡하지? 울컥해. 그들 말처럼 ‘임영웅이라는 이유 하나’로 뭉친 건데 너무 따숩잖아. 여기 1시간쯤 있으면서 마음이 편안했어.

팬들은 ‘극성스러운’ 대화만 할 것 같다고? 그렇지 않더라. 말 그대로 ‘사는’ 얘기를 나눠. 그들의 삶 일면에 ‘스타’의 존재가 소중하게 자리잡고 있는 거고.

그러니까 팬들은 스타 임영웅에 돈과 시간을 ‘낭비’하는 게 아니었어. 임영웅이라는 존재를 통해 자기 삶을 풍성하게 만들고 있는 거더라고.

또 수집한 굿즈들. 가는 카페마다 다른 굿즈를 주니까 모으는 재미가 있어.

투어 네 번째 [가슴이 뭉클, 젊게 살어라!]

오후 3시반이다. 햇볕 쨍쨍. 땀 뻘뻘이지만 좋은 날씨야. ‘헤이 데어’ 카페에 갔어. 벌써 음료 서너 잔을 마셨지만 굿즈를 포기 못 하겠어. 그래서 음료를 또 시키고 말았지. 레몬에이드 주문하고 임영웅 부채와 사진을 받았다. 핫. 우리 이제 꽤 영웅시대인가 봐. 여기 필수 코스는 등신대와 현수막이야. 다들 사진을 찍길래 우리도 찰칵.

영웅님 등신대 사이에서 한 컷.

영웅님 현수막 앞에서 한 컷.

카페 앞에 있던 '임영웅 사랑해' 풍선이야. 멀리서도 시선을 끌었어.

‘팬들 나이대는 어느 정도지?’

스윽 둘러보다가 시선이 멈췄어. 화려한 꽃무늬 옷을 입으신 ‘멋쟁이 그랜마’ 김현숙 할머니. 조심스레 연세를 물었더니 손가락 8개를 펴 보이셨어. “나 80 쫌 더 먹었는데”

성수동 카페도 다녀오셨대. 팬덤 문화에서 이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가 본데? 주변을 보니 스무살 딸이랑 온 어머니도 있었고 중년 팬들이 많더라.

“나는 하나 안 힘들어. 이런 데 오면 가슴이 막 뭉클, 뭉클, 하거든. 좋아서.”

그저 설렌다는 김현숙 할머니는 말씀하셨어. “나는 영웅이 ‘아침마당’ 나올 때부터 좋아. 축제도 따라 다녔어. 집에선 테레비 켜놓고 유튜브 켜놓고 맨날 영상 봐. 열심히 살잖어. 요새 눈이 좀 뻘겋던데 잠잘 새가 없나. 에구. 이러면 꼭 자식 같아서. 그냥 건강만 했으면 해.”

내가 80살 넘으면 어떨지 잠깐 상상했거든. ‘이렇게 멋지고 유쾌할 수 있을까’ 싶더라. “정말 대단하세요”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지. 할머니는 명언을 남겼어. “젊게 살어라! 나도 젊으니까.”

팬들이 디자인했다는 굿즈들. ‘위드 히어로 경기1지부’ 관계자는 굿즈 판매 수익을 전액 기부할 예정이라고 설명했어.

투어 다섯 번째 [영화관도 ‘영웅아 축하해’]

벌써 오후 5시. 영화관에도 임영웅이 있다는데. 발도장 찍어보자. 홍대 롯데시네마 10층.

요즘 영화관에 사람 없다고 듣긴 했는데 평일이라 더 한산했나 봐. 다섯 명 정도 마주쳤어. 사진 찍고 잠깐 쉬었더니 어느덧 오후 5시반. 다닐 만큼 다녔다. 알찬 투어였어.

임영웅 포토존과 '임영웅관' 입구 모습이야.

혹시 이런 생각이 들려나. ‘보니까 다 똑같구먼. 뭘 그리 돌아다녀?’

그럴리가. 꿍미니는 4곳의 카페와 1곳의 영화관에서 수백 명의 임영웅들을 만났어. 미소 짓고, 활짝 웃고, 노래하고, 하트를 날리고, 매력을 발산하는 수많은 임영웅이 있었지. 생각해봐. 하늘 아래 똑같은 임영웅은 없어. 사진도 다르고, 포즈도 다르고, 다른 시간 다른 표정의 임영웅들이 있는 거야.

물론 굿즈도 다르지. 만나는 사람들도 다르고. 내가 좋아하는 임영웅을 저 사람도 좋아한대. 이 사실 하나만으로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 확 가까워지는 거야. 마음이 들뜨는데 동시에 편안해지는 기분이었어. 임영웅으로 가까워졌다는 그런 친밀함. 임영웅이 사는 2020년의 이 순간을 함께 공유하는 동료애랄까. 제법 뭉클한 경험이었어.

이래서 팬들은 기꺼이 생일투어를 다니나 봐. 돌아다니다 땀 흘리고 때로는 눈물도 흘리면서.

영화표를 구입하는 곳에도 영웅님 사진이 있었어.

트로트는 어떻게 전 세대에 부는 열풍이 됐나

생일투어를 마친 꿍미니는 전문가 생각도 궁금했어. “트로트 인기 이유는 뭘까요? 어떻게 중장년층까지 팬덤 문화를 즐기게 된 거죠? 젊은이들은 왜 트로트를 좋아할까요?” 폭풍 질문을 안고 김헌식 대중문화평론가에게 자문을 구했어.

김 평론가는 팬덤 문화가 기성세대까지 확대된 이유로 유튜브, SNS 등에 익숙해진 환경을 꼽았어. 기존에는 온라인에 능숙한 10대와 20대 중심으로 팬덤이 발달했다면, 요즘은 중장년층도 플랫폼을 잘 활용할 수 있으니 팬덤 활동에 제약이 없다는 거야.

그럼 젊은 세대들은 왜 트로트에 호응하지? 김 평론가는 청년층이 그들 정서에 맞는 트로트를 지지한다고 봤어. 뉴트로 유행이 있었듯이, 청년들은 예전 것이든 요즘 것이든 관계없이 자기 기호에 맞으면 적극 지지한대. 취향에 맞는 가수와 무대가 트로트에서도 발견되면서 젊은 층까지 팬이 된 것 같다고 분석했어.

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도 한 가지 요인으로 볼 수 있다더라. “코로나19에 경제적으로 힘들고 피로감도 있잖아요. 이럴 때 대중적이고 감성적인 장르인 트로트가 답답함을 조금이라도 해소해준 것 같아요”라고 덧붙이셨어.

임영웅이 3월 15일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이야. 그는 '진' 당선 소감을 밝히며 "코로나19로 몸과 마음이 지치셨을 여러분들께 미스터트롯이 조금이나마 용기와 희망 그리고 위로가 되었길 바랍니다"라고 적었어.

꿍미니 후기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발바닥 땀 나게 생일투어를 체험해본 두 인턴의 소감은 어떨까? 짧은 후기로 글을 맺을게.

서지원: 그동안 가수 임영웅이 꾸준히 노력하며 살아왔기 때문에 ‘미스터트롯’ 기회를 잡은 것 같아. 자기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모든 사람이 늘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좋겠다. “건행♡”

이화랑: “누군가의 팬이 된다는 건 누군가의 편이 된다는 것”이라는 말이 있지. 바라는 것 없이 그저 주고 싶은 마음. 이게 바로 팬심인 걸까. 사람이 사람을 순수하게 좋아한다는 거, 참 대단한 것 같아.

서지원, 이화랑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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