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고 2주전에 혼인신고서 낸 손정우, 그걸 보고 감형해준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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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7.08. 오후 1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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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6개월짜리 성착취물 올린 범죄
미국선 최소 징역 35년, 한국선 어떻게 풀려났나

세계 최대 아동 성 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인 손정우 씨가 6일 오후 미국 송환 불허 결정으로 석방돼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뉴시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솜방망이 처분” (여성변호사회) “사법부도 공범이다”(성범죄 피해자 단체) “전 세계가 경악한 재판부”(한 네티즌)

세계 최대 아동 성착취물 사이트 ‘웰컴 투 비디오’ 운영자 손정우(24)씨에 대한 법원의 미국 인도 불허 결정에 대한 대중의 분노가 들끓고 있다.

재판장인 서울고법 강영수 부장판사의 대법관 후보 자격 박탈을 요구하는 청원은 제기된 지 이틀 만인 8일 오후 5시 현재 42만을 돌파했다. 여성 단체들은 7일 서울고법 앞에서 ‘손정우는 미국으로’ ‘사법부가 공범’ 등의 글귀가 적힌 팻말을 들고 시위에 나섰다.

손씨를 인도요청했던 미국 법무부와 연방 검찰은 7일(현지시각)“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아동 성 착취 범죄자 중 한 명에 대한 법원의 인도 거부에 실망했다”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이 같은 분노의 원천은 사실 ‘1년 6개월 징역’이라는 손씨의 애초 형량이 너무 낮았기 때문이다. 로라 비커 BBC 한국특파원이 “계란 18개를 훔친 남성의 구형량과 같다”고 비판했을 정도다. 이 때문에 손씨가 아동 성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가 훨씬 무거운 미국으로 인도돼 중형에 처해지길 기대했으나 그마저 무산되자 대중들의 분노가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다. 세계 최대 아동 음란물 사이트 운영자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한 판결문에는 일반 국민들의 평균적인 법 감정을 반영하지 못하는 우리 사법부의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안이한 인식이 담겨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선고 2주 전 혼인신고 감안해 ‘선처’

손씨 혐의는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아청법)의 ‘아동 음란물 제작·배포’다. 그는 2015년 7월부터 2018년 3월까지 자신이 운영하는 사이트에 직접 아동 음란물 3055개를 올렸다. 사이트 가입 회원들도 음란물을 올리게 하고, 그런 사람들에게는 다른 음란물을 다운로드받을 수 있도록 포인트를 지급했다. 그는 철저히 아동 음란물에만 집중했다. 회원들에게 “성인 음란물은 올리지 말라”고 했다. 그가 올린 음란물 중에는 여덟 살짜리 쌍둥이 여자아이들의 성기를 보여주는 것도 있었다.

이 사이트에 가입한 세계 각국 회원 수가 128만명에 달했고, 음란물 17만개가 이 사이트에 올라왔다. 손씨는 회원 4073명이 총 7293회에 걸쳐 음란물을 다운받도록 해 수익 4억600만원을 올렸다. 다운로드 대가는 추적이 어려운 비트코인으로 받아서 여러 곳에 분산해 현금화했다.

1심 재판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 19단독 최미복 부장판사는 2018년 9월 “나이가 어리고 별다른 범죄 전력이 없다. 범죄를 반성하고 있다”며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아청법 유죄판결에 따른 취업제한 명령도 면제했다. 손씨의 연령 등을 고려했을 때 취업제한으로 받는 불이익이 너무 크다는 이유였다.

2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 1-1부(재판장 이성복)는 실형을 선고했으나 역시 형량은 낮았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어린 시절 정서적·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간을 보냈고, (손씨가 아닌) 회원들이 업로드한 게 상당수”라며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다. 특히 “2019년 4월 17일 혼인신고서를 접수시켜 부양할 가족이 생겼다”는 점을 양형에 반영했다. 손씨 2심은 2019년 4월 16일 한 번으로 끝났고 5월 2일 선고됐다. 재판 다음 날 낸 혼인신고서가 양형에 감안된 것이다.

이 때문에 일부 네티즌은 “손씨가 선처받을 목적으로 ‘매혼(買婚)’을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하고 있다. 법원 내부에서도 “이 정도 비상식적인 자료가 제출됐으면 재판부가 손씨를 불러 결혼의 진위를 따져 봤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미국에서는 최소 징역 35년

손씨 판결의 문제점은 기본적으로 낮은 법정형에 기인한다. 아청법 ‘아동 음란물 제작·배포’는 2015년 당시 징역 10년 이하였다. 형법은 선고 시가 아닌 범죄 시의 법률을 적용한다. 이론적으로 징역 1개월~10년까지 선고할 수 있다. 한 판사는 “이 정도 법정형이면 초범은 보통 집행유예가 선고된다”고 했다.

하지만 법원이 이 사건을 지나치게 안이하게 봤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다. 신진희 변호사는 “생후 6개월짜리 피해자가 등장하고, 피해 규모도 전 세계적이며 영상물 유포로 인한 2차 범죄도 많았는데 법원이 기계적으로 판단했다”고 했다. 국내 최대 음란물 사이트 ‘소라넷’ 운영자가 받은 징역 4년에 비해서도 지나치게 낮다는 것이다.

승재현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미국에서라면 최소 징역 35년, 최대 무기징역까지 받을 것”이라고 했다. 손씨는 미국에서 아동 포르노 배포죄를 비롯한 9개 범죄로 기소됐다. 아동 포르노 배포죄의 법정형은 5~20년, 광고죄는 15~30년, 소지죄는 5~10년 등이다. 그가 운영하는 사이트에서 동영상 단 1개를 내려받은 미국인도 징역 70개월(5년 10개월)이 선고됐다.

현재는 ‘아동 음란물 배포’의 법정형이 징역 5년 이상이다. 그러나 여전히 디지털 성범죄 양형 기준조차 마련돼 있지 않다. 판사가 얼마든지 재량으로 형을 깎아줄 수 있다. ‘N번방 사건’ 이후 대법원을 비롯해 법무부 등 정부 부처들이 합동으로 ‘대책 마련’을 발표했지만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이다. 한 변호사는 “법무부 장관이 연일 검찰총장을 압박하는 상황에서 ‘민생 범죄’ 대응을 제대로 할지 걱정된다”고 했다. /양은경 기자

[양은경 기자 ke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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