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분석]전기차 보급은 매년 '미달', 충전기 보급은 매년 '완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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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20.08.11. 오전 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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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전기차 보급 정책은 전기차와 충전기 크게 두 가지다. 전기차 보조금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금액을 지원하고, 충전기는 제품에다 설치·공사비 등 필요한 모든 것을 전부 지원하는 세계 유일한 나라다.

그럼에도 전기차는 2018년 단 한번을 제외하고 매년 보급 목표 달성에 실패한 반면, 충전기 보급은 매년 조기에 완판 됐다. '보조금'이라는 같은 말을 쓰지만, 쓰임새는 전혀 다르다. 전기차는 개인 소유이면서, 차량 구매 비용의 일부를 보조금으로 받는다. 충전기는 대부분 개인 소유가 아니면서, 특정 사업자를 통해 제품 비용에다 설치·공사비, 이윤까지 남기도록 지원한다.

정부가 매년 수천억원의 예산을 투입, 시장 수요 등을 파악해 보급 사업을 벌이고 있지만, 한쪽은 '미달', 나머지 한쪽은 '완판'인 비정상적인 상황이 매년 반복되고 있다.

서울 마포구 공용주차장에 환경부가 설치한 전기차용 급속충전기.

◇전기차 보급 목표 매년 미달

2013년 제주를 시작으로 한 전기차 민간 보급은 2014년 전국으로 확대된 후 매년 목표를 정해 보급 사업이 진행됐다.

2014~2016년 초기에는 고객이 선택할 수 있는 차종도 크게 부족했다. 당시 전기차의 주행거리는 한번 충전에 100㎞ 안팎인데다, 충전 인프라도 크게 모자랐다. 또 당시만 해도 개인용 충전기 설치가 가능해야만 전기차 보조금을 지원했다. 이에 아파트 등 공동주택 주민은 충전기 설치를 위해 입주민 동의 얻기 등 복잡한 절차 탓에 구매를 포기하는 층도 많았다.

여러 불편함 때문에 보급 초반 전기차 대당 보조금은 역대 최고였다. 2016년까지 전기차 국고 보조금은 1500만원, 지자체 추가 지원금으로 300만~800만원을 지원했다. 여기에 추가로 450만원 상당의 세금 면제나 감면 혜택까지 받았다.

그럼에도 2014년은 정부의 보급 목표 물량 1500대 중 1315대, 2015년 목표량 3000대 중 2945대, 2016년은 8000대 중 5177대에 그쳤다.

2017년과 2018년은 연이은 전기차 신차 출시와 충전 인프라 확대 등으로 전기차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확산되기 시작한 때다. 2017년 1만5000대 정부 목표 물량의 1만4337대가 보급됐고 2018년은 전기차 보급 사상 처음으로 예산을 완전 소진했다. 당시 추경에 전기차 5000대가 추가되면서 그해 정부 목표량 2만5000대 보다 많은 3만1154대가 보급됐다.

그러나 2019년 보급사업은 다시 위축되기 시작했다. 현대차·기아차뿐 아니라 한국지엠, 르노삼성까지 신차 전기차가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국고 보조금이 1200만원에서 900만원으로, 지자체 지원금도 덩달아 100만~200만원 가량 줄면서 시장 관심이 많이 떨어졌다.

당시 현대차 '코나 일렉트릭'과 기아차 '니로EV' 등 구형 모델로 선방했지만, 2019년 정부 보급 목표 4만3795대 중 보급 대수는 3만4969대로 달성률 79.8%를 기록했다. 올해는 지난 7월 초까지 승용 전기차는 목표량 6만5000대 대비 1만6752대가 보급되는데 그쳤다. 정부 목표 달성률 22% 수준이다.

◇서비스 요금보다 보조금으로 이익 내는 충전 시장

정부가 민간 사업자를 통해 충전기 민간 보급에 나선 건 2017년이다. 이전에는 전기차를 구매하면 완성차 업체가 지정한 충전 업체를 통해 충전기를 설치했던 것과 달리 정부가 충전서비스 업체를 선정해 제품 설치부터 운영까지 사업자에게 모든 것을 맡겼다.

사업자는 정부의 3가지 보급 유형에 따라 보조금을 받고, 충전기를 설치, 관리·운영해왔다. 이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공용 충전기', 아파트 단지 등 특정 시설에 속한 사람만 사용하는 '준공용 충전기', 개인만 쓰는 '비공용 충전기'로 나눠서 공용은 500만원, 준공용은 400만원, 단독주택 등을 위한 비공용은 300만원을 지원했다.

환경부는 2017년 사업 첫해 5개 업체를 선정했고, 그해 300억원을 투입해 전국에 9700기의 완속충전기를 보급했다. 사업은 주로 전국 아파트단지(관리소·입주민)을 대상으로 직·간접적인 영업을 통해 충전기가 설치될 충전부지(주차면)을 확보한 다음, 환경공단에 서류를 제출, 기본적인 서류 심사 이후 승인을 거쳐 보조금을 수령 받는 구조였다.

그해 4월부터 본격적인 민간 보급 사업이 시작됐고, 이후 5개월여 만인 9월 말 9700기의 보급이 완료됐다. 당시 전기차 보급 수는 약 7500대로 목표량(1만4100대)의 절반에 불과했지만, 충전기 보급 속도는 매우 빨랐다.

2018년 충전기 보조금 시장은 더욱 켜졌다. 환경부는 평가 공모를 통해 충전사업자 3곳을 추가로 선정했다. 그해 환경부가 정한 충전기 보급 물량도 지난해 보다 3000대 이상 늘어난 1만3000대였다.

공용충전기 보조금은 종전 500만원에서 400만원으로 줄었지만, 충전기 보급은 2017년 보다 약 한달 빠른 9월 초에 마감됐다.

이때부터 국가 보조금 선점 경쟁 과열로 일부 업체들의 환경부(환경공단) 사칭 △공용충전기 개인사유화 △영업브로커를 활용한 불공정 거래 등의 부정·불법 영업행위가 적발되기 시작했다.

2019년 충전기 보급 사업은 더욱 경쟁이 치열했다. 정부는 그해 완속 충전기 보급물량을 추경예산까지 합해 작년보다 두 배 많은 2만4000기로 확정했다. 공용 충전기 보조금은 다시 320만원으로 낮아졌다. 그해 추경예산이 반영되면서 1만2000대씩 두 차례 걸쳐 진행됐고, 여기에 투입된 예산은 역대 최고 금액인 640억원으로 역대 최고치였다. 올해 충전기 보급 물량을 지난해 3분의 1 수준인 8000대로 줄였다. 전기차가 늘어나는 상황임에도, 정부가 보급 예산을 줄인 건 보조금이 남용되고 있어 개선책을 모색하기 위해서다. 결국 2020년 충전기 보급 물량은 단 2주만에 마감됐다.

서울 종로구 KT광화문빌딩 주차장에 설치된 전기차용 완속충전기.

◇정부 보조금에 길들여진 민간 업계

충전기 보조금을 타내기 위해 정부 기관을 사칭하고, 개인 사업장에 충전기를 설치한 다음 공용충전기 보조금을 타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보급 사업 초반부터 보조금 물량을 선점하기 위해 아파트 외주 영업 비용은 2017년 충전기 당 10만~20만원에서 현재 40만원까지 뛰었다. 대당 보조금은 500만원에서 320만원으로 줄었지만, 영업비는 두 배 늘었다.

그러나 이렇게 설치된 충전기는 이용자 접근성을 고려하지 않고 마구 설치해 1년 내내 사용이 없는 시설이 허다하고, 부실 공사로 사용이 어려운 충전시설 사례도 종종 발생한다. 급기야 최근엔 이미 설치된 충전기를 떼어내고, 정부에 새 충전기를 신청하려는 사례까지 등장했다.

물론 일부 충전사업자 사례지만, 이 같은 일은 2017년부터 현재까지도 매년 반복된다.

충전기 보조금은 제품비·공사비·한전불입금 등 필요한 모든 비용을 충당하고도 보조금(320만원) 기준으로 최소 40만~50만원 이상 남는다. 업체는 이렇게 남는 비용으로 전국 지역별 영업 조직을 꾸리고, 이들에게 충전기 당 최대 40만원 영업비를 쓰고도 추가로 이익을 챙긴다.

이렇게 처음부터 정부 보조금에 길들여지다 보니 국내 충전사업자 중에는 정상적인 투자를 거쳐 충전서비스로 이익을 내는 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대부분이 충전기 설치로 남긴 이윤으로 사업체를 이끌고 있다.

박태준기자 gaius@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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