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티시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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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소용돌이파로 번역되며, 20세기 초 영국에서 일어난 예술운동으로 미래파 및 입체파의 영향 속에서 탄생했다. 1914년 영국의 화가이자 소설가인 윈덤 루이스(Wyndham Lewis)의 주도 하에 일어났고, 잡지 《질풍 Blast》의 창간과 동시에 발족되었다.

1914년 영국의 화가이자 소설가인 윈덤 루이스(Wyndham Lewis)는 잡지 《질풍: 위대한 영국의 소용돌이에 대한 리뷰 Blast: Review of Great English Vortex》를 통해 보티시즘을 공표했다. 보티시즘이라는 용어는 이 잡지의 부제인 ‘소용돌이(vortex)’에서 비롯되었고, 이 소용돌이를 에너지의 최고 정점이라고 본 시인 에즈라 파운드(Ezra Loomis Pound)의 정의에 기대어 기계문명을 수용하고 이에 내재된 힘과 문화적 역동성을 찬미했다.

보티시즘 운동에는 크리스토퍼 네빈슨(Christopher Nevinson), 에드워드 워즈워스(Edward Wadsworth), 프레데릭 에첼스(Frederick Etchells), 윌리엄 로버츠(William Roberts), 데이비드 봄버그(David Bomberg) 등의 화가와 앙리 고디에 브르제스카(Henri Gaudier-Brzeska), 야콥 엡스타인(Jacob Epstein), 로렌스 애킨스(Lawrence Atkinson) 등의 조각가가 참여했으며, 문인으로는 미국의 시인 에즈라 파운드, T.S. 엘리어트(T.S. Eliot) 등이 가담했다. 파운드는 이미지즘(Imagism)에 기초하여 이 운동의 이론적 토대를 마련했다.

보티시즘은 기하학적 추상을 발전시켰고, 기계주의에 대한 기대와 공포를 작품에 결합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 그룹의 작가들은 이탈리아의 미래파와 많은 공통점을 지녔지만, 미래파의 과격하고 극단적인 성향은 배격했다. 즉 빠른 속력이나 기계, 공장 등 근대사회를 대표하는 상징 요소를 작품 속에 등장시키되, 산업화의 역사적 배경과 그 부정적인 결과에 대한 분석을 빠뜨리지 않았다. 이들은 주로 속력이 지닌 중요성을 재정비하고 뚜렷한 윤곽선과 연속적이고 강한 색채를 강조했다.

첫 전시는 1915년 6월 런던의 도레 갤러리에서 열렸으나 전쟁이 일어난 직후라 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1917년 뉴욕의 펭귄 클럽에서 두 번째 전시가 열렸고, 이를 계기로 국외에도 알려졌다. 그러나 두 번의 전시로 이 운동은 끝이 났다. 이 운동에 가담했던 브르제스카는 1915년 6월 전투에서 사망했고, 루이스와 네빈슨은 사실주의로 회귀했다. 봄버그는 차츰 초상이나 풍경을 주제로 한 표현주의적인 구상작품을 제작했다.

비록 짧은 기간 번성하다 중단되었지만 보티시즘은 입체파의 기하학적 구성과 미래파의 역동성을 결합한 다이내믹한 추상미술을 선보여 빅토리아 왕조의 오랜 전통 속에 있던 영국미술을 각성케 하고 당시 문화의 혁신에 크게 공헌했다. 이 운동은 전후 찰스 기너(Charles Ginner), 프랭크 돕슨(Frank Dobson), 맥나이트 코퍼(Mcknight Kaufer) 등이 합류하면서 1920년 'X그룹'으로 계승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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