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보미의 Girl in Tech] 킬러 콘텐츠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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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2017.05.29. 오후 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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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닷컴]
보이지 않지만 모두가 알고 있는 것

킬러 콘텐츠 없이 성공하는 사업이 있을까? "초창기 사업 핵심은 '킬러 콘텐츠'를 발견하느냐가 가장 중요하다"던 선배의 말이 떠오른다. 어떤 사업이든 그것을 연상케 하는 최초의 '무엇'이 있다. 애플의 매킨토시, 일론 머스크의 테슬라, 다음의 한메일, 네이버의 지식인, 아마존의 온라인 도서 배송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개념은 전혀 새롭지 않고 당연한 이야기일 수 있다. 전통적인 장사에도 흔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명동 을지로 지역으로 출근하면서 오래된 맛집을 새삼 많이 발견하는데, 요즘은 하동관의 곰탕 맛에 빠졌다. 옛부터 단골이라는 친구는 마치 하동관의 대변인처럼 이 곳의 역사적인 이야기들을 설파한다. 1939년에 생겨난 하동관은 70여 년의 역사를 지닌, 대한민국에 몇 안 되는 전통적인 맛집 중 하나라고. 이곳에는 맛있는 곰탕 외에도 몇 가지 흥미로운 특징이 있다. 그중 하나는 다채로운 주문법이다.

"스무공, 내포 많이, 넌둥만둥, 깍국, 통닭, 냉수 한 잔!"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을 이 주문은, 주문하는 사람과 받아가는 사람 모두 전혀 어색하지 않다.

< 하동관의 메뉴 >(출처=IT동아)

'스무공'은 2만 원짜리 곰탕을 뜻한다. 공은 곰탕의 고기양을 뜻하는 은어로 공 앞에 붙는 수가 커질수록 고기의 양이 늘어난다. '내포 많이'는 한우 내장을 더 넣어 달라는 뜻이고, '넌둥만둥'은 밥을 조금만 말아 달라는 뜻이며, '깍국'은 깍두기 국물을, '통닭 500원'은 계란을 뜻한다. '냉수'는 차가운 물이 아니라, 술을 막 파는 집이 아니었던 하동관 특유의 '암호'. 손님들 요청에 따라 1,000원을 홀 직원에게 주면 소주 반 병을 담은 물잔을 건네면서 생겼던 암호가 이제는 '정식 메뉴'에 올랐다. 이런 암호 같은 주문과 그걸 알아들으며 소통하는 직원의 하동관 풍경은 너무도 신선하다. 이 모습 자체가 하동관의 킬러 콘텐츠 역할을 담당한다.

IT 스타트업계에도 킬러콘텐츠를 잘 만들어내는 멋진 여성들이 많다. 특히, 온라인 의류 유통 쪽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포브스가 2016년 6월 선정한 대 자수성가형 부호 리스트에 남성 부호들이 주로 IT 등 테크 산업에서 부를 축적했다면, 여성은 '패션ㆍ리테일'분야에서 강했다. 국내도 '스타일난다', '임블리', '업타운걸스' 등 남다른 안목과 센스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여성 CEO들이 있다.

미국 사례 중 2013년 '세계에서 가장 섹시한 CEO' 1위 자리를 차지한 여성의 사례는 흥미롭다. 글로벌 온라인 쇼핑몰 '내스티 갤 Nasty Girl'을 창업한 소피아 아모루소(Sophia Amoruso)의 이야기로, 그녀는 '테크 신데렐라'라는 별명이 생길 정도로 라이징 스타로 주목받았다. 성공의 계단을 착실히 밟은 전형적인 CEO가 아니라는 것이 더 눈길을 끈다. 그녀의 10대는 비참했다. 히치하이킹(Hitchhiking)을 취미처럼 이용했으며, 도둑질과 쓰레기통 속 음식을 찾는 것을 생계수단으로 삼았을 정도.

그러다가 전자상거래 플랫폼 이베이에서 자신이 훔친 책부터 자기 옷까지 리폼해서 팔기 시작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후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온라인 판매를 시작한다. 초기 영업방식은 정상적이지 않았다. 동네에 죽은 사람의 옷을 사들여 이를 코디하고, 직접 사진을 찍어 올려 판매하는 방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력, 돈 어느 것 하나 가진 것 없는 평범한 주인공이 27세 나이에 수백만 달러 규모의 패션 기업 CEO로 성장했다. 이를 통해 유명 벤처캐피탈로부터 700억 원이 넘는 투자를 받았으며, 연 매출 1,000억원 이상을 기록했다. 그녀의 책 '걸보스(Girlboss)'는 더 유명해졌고, 그녀는 마치 영화 '인턴'에 나온 앤 해서웨이와 같았다.

< 소피아 아모루소 내스티 걸의 창업자 >(출처=IT동아)

그러나 최근 몇 차례의 구조조정, CEO 교체, 소비자로부터의 소송, 매각 실패 등 사건·사고가 이어졌다. 결국, 2015년 1월 CEO에서 물러나 경영에서 손을 떼고, 책과 관련된 대외활동에 집중한다. 셀러브리티처럼 자신의 이름을 내건 라디오 프로그램을 운영하거, 여성 리더십 육성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등 경영 활동보다 외부활동에 치중한다. 현재 넷플릭스에서는 그녀의 드라마가 출시되어 방영 중이다.

이같은 위기에 대한 분석을 근본적인 패션의류 산업의 한계라고 지적하는 경우도 있지만, 가장 큰 원인은 킬러 콘텐츠 확대와 발전에 집중하지 못하고, 다른 대외활동 확장에 대한 것을 사업 시너지로 삼지 못했다는 평가다. 만약, 대외활동보다 경영에 좀 더 집중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킬러 콘텐츠는 하동관의 곰탕과 같다. 정의할 수 없는 맛이지만, 단 하나의 중요한 메뉴로 사람들에게 기쁨을 선사하고, 비용을 지불하게 하고, 줄을 서게 만들며, 시키지 않아도 다른 사람에게 소문낼 수 있는 그것. 이에 대한 중요성은 모두가 안다. 하지만, 실천은 어렵다. 필자조차 지금 쓰고 있는 글에도 킬러 콘텐츠로 독자를 감동시키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기억해야 할 것은 곰탕 하나를 기가 막히게 만들어내는 것에 집중하다 보면, 내부 인테리어나 비빔밥이나 스파게티 같은 신메뉴, 실력 좋은 요리사나 직원 등을 우선하지 않아도 된다. 핵심 사업, 핵심 콘텐츠가 흔들릴 때, 다른 사항들을 뜯어고치고 개선하는 것은 기업 자신을 위로하는 일임에 불과하다.

유자와 쓰요시 작가의 책 '어느날 400억원의 빚을 진 남자'를 보면, 그는 기울어가는 회사를 살리기 위해 제일 먼저 매장 컨셉과 인테리어를 바꿨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이후 고객 뒤를 쫓아다니며 실제 속마음을 이야기하는 것부터 뒷말까지 몰래 엿듣기 시작했다. 이를 통해 고객의 요구사항부터 개선하기 시작하고, 기업이 주는 핵심가치를 재정의해 매출과 수익 증대를 이뤘다. 특히, 한정된 자원의 스타트업이나 중소기업은 약점이나 자신에게 없는 부분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강점이나 이미 가지고 있는 부분에 집중해야 한다. 저자는 약한 자일수록 자신의 강점과 장점을 강화하는 게 중요한 깨달음이라고 전한다.

결국, 각자의 핵심역량 혹은 진짜 실력이라 할 수 있는 킬러 콘텐츠가 사람들의 반응을 이끈 것이다.

특히, 여성 사업가가 성공하거나 관심의 주제로 오를 경우 종종 미모를 무기로 운이 좋았다는 평한다. 운은 누구에게나 피할 수 없는 막중한 요소지만, 스스로 제어할 수 없다. 이를 차치하면, 남는 것은 실력이다. 운도 실력으로 잡을 수 있도록 진정성 있는 킬러 콘텐츠로, 사업의 결과로 승부할 수 있는 배짱 있는 여성들이 많기를 희망한다. 보이지 않지만, 모두가 인정할 수 있는, 능력 있는 낭중지추(囊中之錐)와 같은 여성들과 그들의 업이 늘어나기를, 그리고 이들을 대한민국의 많은 사람이 응원하고 박수를 보낼 수 있는 선진문화가 함께하기를 소망한다.

핀다 손보미 마케팅 이사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후 Johnson & Johnson에서 헬스케어 프로덕트 마케터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Project AA라는 문화예술 및스타트업 마케팅 회사를 창업하고, 핀테크 기업에 회사를 매각 후, 금융상품 마케터로 변신했다. 세계경제포럼 글로벌 쉐이퍼, 대한적십자사 현 홍보자문위원으로도 활동 중. 32개국에서 여행과 봉사활동을 했으며, 2권의 책을 출판한 바 있다.
*본 칼럼은 IT동아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글 / 핀다 손보미 마케팅 이사(bomi@find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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